제주에서 3대 발명은 1234년경에 나온 김구판관의 돌담과 밭담, 정낭, 그리고 1406년경 문방귀의 ‘墓의 神門’ 등을 들 수 있는데, 요즘 불고있는 4차-6차산업혁명이 모태가 된다.이것은 한마디로 공유경제(Sharing Economy)가 원리이다. 답은 ‘수눌음’(노동공유, Labor Sharing)에 있다.

제주에서 돌담은 밭이나 집 울타리 경계를 표시하면서 소나 말의 침범을 막고 바람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제주에서 “돌(石)”의 삼촌(Uncle)은 ‘바람’이다. 바람이 돌을 쌓았다. 제주 바람은 연평균 초속 4.8m/s로 늘 분다. 돌담은 불규칙(Random)하게 얼키설키 쌓아지고 돌 사이의 틈새 돌트멍(Window)로 인해 바람이 불고 지나지만 돌담은 끄떡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돌 각자가 제자리를 지키면서 돌이 이웃과 의지하면서 서로 버티는 상생(Reciprocal Cooperation)과 돌담이 연결체의 대칭(Symmetry)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돌과 돌이 ‘수눌음’(Networks)인데, 제주 특유의 사회관습 괸당(Social Custom Family Networks)도 돌의 수눌음에서 왔다. 수눌음(手積)은 ‘손들을 눌다’의 뜻이고 눌다는 ‘쌓다’로 손들을 쌓아 서로 도와 가면서 농사일을 하는 ‘노동의 공유’이다. ‘눌’은 보리눌, 촐 눌 등으로 쓰이며 보리나 소꼴을 원기둥으로 쌓아 바람과 비를 피했다.

한편, ‘괸돌’은 고인돌에서 비롯됐는데, 순수 우리말인 고인돌은 고대 부족국가 지배계층의 무덤 또는 제단을 의미하며, 이 단어의 유래는 큰 돌을 받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괸돌(支石)’ 또는 ‘고인’돌에서 왔는데, 돌을 쌓으면 ‘돌담’이 되고, 밑받침 되는 돌은 ‘괸돌’이 된다. 그리고 그 위에 다음 돌을 다시 얹으면 ‘괸담(礎墻)’이 되고, 돌과 돌의 ‘수눌음’(Neighbor Cooperation Culture)이다. ‘괸담’은 제주인의 관습상 발음 변화(口語体)가 되면 괸당이 되며, 괸당은 제주인의 돌담문화에서 꽃 핀 제주특유의 수눌음, 즉 ‘노동 공유문화의 연결 Networks’이다.

제주둘레 삼백여리 환해장성도 방어공유이고, 제주 한달살기도 부동산 공유경제다. 물론, 제주밭담은 이웃밭끼리 한번 담을 쌓아놓으면 오랜세월 동안 공유되므로 한계비용 제로인 4차산업혁명이 좋은 예이다.

제주 사람들이 괸당에 그렇게 집착하는 까닭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부로부터의 온갖 위협과 어려움들을 이겨내기 위해선 이웃간 촌락내혼(村落內婚)으로 연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괸당의 탄생배경은 제주의 자연환경과 국가 사회적 현상 때문으로 제주는 삼재도(三災島)로 수재(水災), 풍재(風災), 한재(旱災)로 흉년이 지속됐다. 특히 조선 영조(1739년) 정조 때가 심했다. 김만덕은 굶어 죽는 백성을 위해 구휼을 했다. 흉년을 이기지 못해 뭍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제주도민 출륙금지령이 200년간(1629~1823) 내려졌고, 몽고 원나라 제주지배 100년(1273~1373)과 1948년 4.3사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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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호. ⓒ제주의소리

따라서 항상 바람 부는 제주에서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돕는 괸당문화 탄생 배경이 됐다. 괸당이 초상을 당했을 때는 슬픔을 서로 공유하기 위해 ‘고적’(쌀을 얼마씩 할당, 장부(Codebook)작성)을 한다. 오늘날 블록체인코드의 원형이다. / 전북대 전자공학부 명예교수 이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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