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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케이드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은 강동균 전 강정마을회장. ⓒ제주의소리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힌 강동균 전 강정마을회장,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성토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된 채 강행된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지난 10여년 간 이어져 온 억울하고 지리한 싸움. 마침내 국가 원수의 공식적인 사과가 이뤄졌지만 강동균 전 강정마을회 회장은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자기 편인 사람들만 데려다놓고 하는 사과가 진정한 사과입니까? 이게 진정한 정의로운 나라, 소통하는 정부란 말입니까?"

강 전 회장은 해군기지를 둘러 싼 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다. 지난 2006년 4월26일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마을주민 단 87명만이 모여, 그것도 박수로 결정한 것에 반발해 당시 마을회장이었던 윤 모씨를 주민들이 마을총회에서 탄핵하고 새로운 마을회장에 그를 선출해 그동안 제주해군기지 건설반대 운동의 중심에는 항상 강동균, 그가 있었다. 
 
이로 인해 공권력에 의한 숱한 연행과 사법적 판단 앞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정부의 사과가 이뤄진다면 응당 가장 먼저 기쁨을 만끽해야 할 인물인 셈이다.

그러나, 그토록 바랐던 순간이 다가왔음에도 그는 지척에 온 대통령과 대화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당초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여할 마을대표 6인에 강 전 회장도 참석을 제안 받았지만 청와대가 관함식 거부 결정을 내린 강정마을회의 결정을 번복하도록 했다며 반발해 본인이 참석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뒤늦게 이날 문대통령과의 대화 장소 앞에서라도 반대 주민들의 입장을 항변이라도 하려 했지만 경찰 바리케이트에 막혀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과 강정마을회의 간담회가 이뤄지는 강정마을 커뮤니티센터를 잇는 길은 골목골목마다 죄다 철제 바리케이드가 설치됐고, 수십여명의 경찰이 동원돼 전면 차단됐다.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은 일주도로를 우회해 간담회장에 도착했다.

"면담 장소 안에 참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면담 장소 앞에서 피켓 시위를 통해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이마저도 막아서고 찬성하는 주민들만 참가한 자리가 11년 간의 강정 주민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강 전 회장은 현장에서 경찰들을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내 체념한 듯 바리케이드에 등을 기대고 털썩 주저 앉았다. 곧 담배 한 개비를 집어든 그는 허공을 응시하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뽑은 내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다"며 격한 심경도 서슴치 않고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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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균 전 강정마을회 회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제주의소리

현장을 취재하던 인근의 기자들을 모아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강 전 회장.

그는 "이것이 문재인식 강정 주민에 대한 사과다. 청와대는 저를 비롯해 반대 주민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싶었겠지만, 관함식을 찬성하면 사과를 하고, 반대하면 사과를 안하는 것이 대체 어디서 나온 발상이냐. 이건 그간의 10년 갈등을 100년 갈등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강 전 회장은 "왜 꼭 관함식이어야 하나. 여긴 해군기지가 아니라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다. 굳이 사과를 하겠다면 먼저 약속을 이행해 민항을 만들고, 민군복합항 준공식 등을 통해 했어도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군기지 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강 전 회장에 이어 마을회장을 역임한 조경철 전 회장도 거침 없는 심경을 쏟아냈다.

조 전 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하는 짓이 이명박근혜와 똑같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래도 이명박근혜는 주민들 간 이간질 시키지는 않았다"며 "사람의 기본 도리,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조차 짓밟고, 주민들끼리 이간질시켜 자신의 인지도를 높인 것이 이 정부"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규탄했다.

강 전 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진정으로 강정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싶으면 11년 간의 불법공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이것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령으로 강정마을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행해서 잘못된 점이 나오면 그때 진정으로 사과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는 "해군은 앞으로 여러 행사들을 하려 하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힘이 없지만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워 나가고 정부를 규탄할 것"이라고 끝까지 투쟁 의지를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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