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제주 4.3 당시 국제 정세는 제주를 ‘레드 아일랜드’로 명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면서, 상호 증오에 기반한 진영 대결, 냉전의 시대는 제주도를 피로 휩쓸어버렸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사람들의 순진한 기대가 금세 피의 학살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평화롭게 생존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피의 생존을 위해 4.3 토성 안에서, 다랑쉬 오름의 깜깜한 굴 안에서 숨죽여 생존해야만 했다.그리고 제주 4.3의 잔혹한 학살은 침묵을 강요받았고, 세상은 상대에 대한 비난과 위협을 극으로 끌어올리며,
꽤 오래전 고교 시절, 필자도 백호기에서 열정적으로 응원을 했다. 뭔가 모르게 가슴 벅찼다. 그리고 패배에 대한 절망감에 흘린 눈물을 다스리느라 친구들과 목이 터져라 교가를 수없이 반복해 불렀다. 왜 그렇게 감정이 차올랐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요즘 설왕설래 말이 생기기 시작한 백호기 응원전을 보면서 필자가 예전을 떠올려 봤다. 어른이 되고, 조직이라는 집단에 조금 떨어져 살펴보니 멋있게 조직된 응원전이 큰 구경거리였던 것 같다. 학교 동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그 학교의 구성원으로 정체성이 심어졌
한 중앙일간지에 출생률과 관련된 기사가 게재되었다. 한국의 출생률(0.72명, 2023년)이 역사상 최저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충격적이라며 연신 보도되는 시기에, 그 기사는 한국의 출생률을 걱정하면서 자발적으로 출산을 지원하려는 한 사업가의 선의를 보도했다. “찔끔찔끔 준다고 애를 낳나, 1억원은 줘야 낳지”라는 기업가의 말이 기사 제목이었다. 한 기업가의 선의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다만 기사의 제목, 표현된 문장 그 자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정말로 재정적 지원이 모자라서 출생률이 떨어지는 것일까? 그래서 더 과감한 재정지
선거 국면이다. 서귀포 지역에서 한 국회의원 후보가 제주제2공항 건립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제주제2공항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서귀포지역의 선거 여론이 불리할 듯하니, 얼른 자신의 신념이나 사회적 맥락은 건너뛰고, 찬성 입장을 발표하는 듯한 그 후보의 모습이 참 비루해 보인다. 그러자 상대당에서는 소속 도의원들 모아놓고, 그 후보를 위선자로 비난하며, 제주제2공항 건립의 진정한 찬성 세력은 자신들만이라며 강변한다. 누가누가 더 대중에 영합을 잘 하나 대결하는 듯하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의 행위는 제주도민들을 찬성과
요즈음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능이 거의 마비 지경이다.2008년 이명박 정권 이후부터 국가인권위원회는 정권에 따라 여러 부침을 거쳐왔다. 이명박 정권 때 조직이 대폭 축소되었고, 이후 보수정권은 집요한 공격을 통해 국가인권기구의 권위를 점차 축소 시켰다. 그리고 지금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인권위는 더욱더 근본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여당인 ‘국민의힘’이 추천하고 현 대통령이 임명한 이충상 위원은 “인권위가 더불어민주당 법안에 대해서는 몇 년에 한 번이라도 반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온전한 인권 관점이 아니라 어느 정당의 발의안인지
제주도내 모 고등학교에서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여성에 대한 불법적인 촬영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여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성 교사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촬영한 사건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는 수십 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학교는 여교사를 가해 학생 집으로 보내는 등 2차 피해에 대해 무심한 대응을 자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2학년 여학생들은 남은 학창 시절을 그 공간 그대로, 그 트라우마를 가지고 지내야 하는 등 거의 방치되어있다.올 12월 첫날에 제주인권포럼에서 제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점점 막장으로 흐르고 있다. 서구 언론을 비롯한 우리 언론들도 이를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라 명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넘어, 또다시 ‘중동전쟁’, 이스라엘과 범이슬람 국가 간 전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어떻게든 이 전쟁을 확장시켜보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이스라엘의 막장 전투로 전쟁은 점차 확산일로다. 이 전쟁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중동에서 분쟁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보기도 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정치적 상황을 놓고 이래저래 분석하기도 한다. 그 고통스러운 역사를 헤
요즘 뉴스를 보면 국회에서 한창 이런저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의 거의 모든 공적 기관이 그동안 처리했던 행정 행위에 대한 국정 감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한 국정 감사는 행정기관이 기록한 행정정보에 근거한다. 국회의원들은 제출된 자료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국가의 행정에 대해 평가하고 이러저러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은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의 책무이며,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대의적 방식이다. 이는 우리나라 헌법에 보장된 알권리에 기반한다. 국민 주권주의, 인권의 존엄과 가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도 연결된다. 헌법
올해 제주특별자치도는 제3차 인권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8월 이후 인권기본계획 초안을 제시하고 도내 시민인권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 있다. 필자도 인권기본계획 초안을 검토하였는데, 세부적인 내용들은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해 조정되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안전권 확보를 위한 과제 중에 CCTV 설치를 제시하고 있었다. CCTV가 과연 인권정책일까? 왜 CCTV 설치가 인권정책의 과제로 등장할까? 필자의 생각으로 CCTV는 인권정책이 될 수 없다.일단 CCTV는 사회에 대한 감시 도구이다. 사회의 안전
얼마 전 제주에서도 한 선생님이 생을 내려 놓으셨다. 전쟁 같은 교육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모든 선생님께 깊은 조의를 표한다. 지구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은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으로 불리는 전쟁이다. 이 참호전이 참혹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참호 안 상황이 최악이었다. 빗발치는 총탄을 피하기 위한 참호 안은 비만 오면 물이 차고, 질퍽거리는 진창이 되기 일쑤였고, 온갖 전염병과 벌레와 쥐들이 득시글득시글했다. 그런 곳에서 인간이 수개월씩 버티다 목숨을 잃어 갔다. 적군 참호로 돌격하다 사망한 병사보다 참호 안
“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으니 그중에 선한 사람을 가려서는 그를 따르고 선하지 못한 사람을 가려서는 (자기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논어(論語) 중 술이(述而) 21장사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고, 거의 모든 이가 한두 번도 아니고 수백 번 배웠을 만한 말이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거의 늘상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수해도 괜찮아! 다시 그러지 않으면 되니까!’라고 스승은 제자들에게 늘 가르친다. 제자가 잘한 일이 있다면 ‘잘했어! 그래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주민의사결정권 존중이 되고 있는가? 지난 도정에서 공론화 작업, 도와 도의회 합의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인정으로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는 존중해야 한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의 여론을 확인하고 싶다면, 실제 공항부지에 편입된 주민들에게만 의견을 물어보라? 그러면 과연 그렇게 찬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전도민의 의견은 반대의견이었다. 이를 존중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선거이지 제2공항 건설 찬반 투표가 아니다.그런데도 다시 확인이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주민투표를 시행하면 된다. 대통령이나 그 수하인 국토부 장관, 또는 제주
제주도 내 모 여중에 인권교육을 갔을 때 일이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교장 선생님이 된다고 하면 무엇을 하고 싶든가요?” 또래 여중생이면 관심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학생들이 머리를 길게 기를 수 있게 하겠다”, “공부하지 않게 하겠다”, “남녀공학으로 만들겠다” 등등. 어떤 학생은 “아예 학교를 없애겠다”라는 말까지 했다. 허튼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참 고달파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창가 쪽에 있던, 조금은 시크해 보이는 한 학생이 심드렁하게 이야기
지난달, 제주 모 초등학교에서 성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을 받은 학생이 집으로 돌아가서 학부모에게 털어놓은 교육 내용은 충격적이다.이 학생의 전언을 통해 살펴보면, 당시 성교육은 ‘특정 종교’의 윤리에 기반한 성윤리 의식이 공적 교육의 장에서 객관화되지 못한 채, 마치 그것이 성윤리의 기준인 것처럼 교육되었다. 특정 종교의 이념에 편향되었다는 의혹이 든다. 또한 학교 성교육에서는 남녀의 성을 가르고 이성교제를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분법적 성별 구별은 성평등이 강조되고 있는 현재 흐름에 한참 뒤떨어져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작년 어느 기관에서 갑질 및 괴롭힘 문제가 발생했다. 인권활동가로서 외부전문가의 역할로 조사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덕분에 필자는 몇몇 기관이나 조직의 갑질, 직장내 괴롭힘 조사에 참여하고, 사례도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지금도 직장내 갑질 및 괴롭힘 문제에 대한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갑질, 괴롭힘 문제에 대해 알아가게 되면서 필자는 그것이 결국 인간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직장내 괴롭힘 문제에 있어서, ‘단체 회식’과 같이 극단적 강요 행위가 큰 문제처럼 비치나, 그처럼 극단적 사례가 이제는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
얼마 전 어버이날이 지났다. 그리고 이젠 스승의 날이다. 어버이의 날은 자녀들이 부모들을 생각하는 날이고, 스승의 날은 제자들이 스승님을 생각하는 날이다. 붉은 카네이션은 ‘건강을 비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두 날의 상징 꽃이 된 듯하다. 아무래도 먼저 태어나 얻은 지식과 경험을 나눠주는 어른들이기에 우선은 건강을 기원하는 듯하다. 며칠 전 우리 막내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학교에서 만들어서 내민 얼기설기 성긴 카네이션은 부모인 내 가슴에서 뜻깊게 달렸다. 필자도 어머니에게 꽃을 드렸다. 중학생인 큰 아이가 학교
‘노동은 거룩하다’가톨릭 교회에 아주 오래된 수도공동체가 있다. 성 베네딕도(480~547)에 형성된 베네딕도회이다. 이 수도공동체의 수도 규칙으로서 자신들의 영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있다. “일하며 기도하라 (ora et labora)”. 1500여 년이 넘어가는 공동체의 영성에서 ‘일하며’라는 노동이 적극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종교는 자신의 신념을 확신하고 드러내며, 자신의 신념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그 신념으로 다시 단련한다. 그런데 종교적 행위와 전혀 별개일 것 같은 ‘노동’이 수도공동체의 핵심 문구의 절반을 차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집단이든 간에 어떠한 일이든 반드시 토론과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 시민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부분과 일치하지 않고 또 어느 부분은 자신의 자유로운 욕구와 맞지도 않으며, 어떤 부분은 불만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타인을 비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타인을 배려하고 모두가 좋고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데 동참하고자 하기에, 대략의 큰 공감의 영역에서 동의를 표하고 합의를 이뤄나간다. 그렇게 만들어나가는 세상이 자기 자신에게도 좋은 세상이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오늘은 제주4.3 75주년 추념일이다. 세계인권선언도 역시 75주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상의 한편 작은 섬에서 학살이 시작될 즈음, 세상의 어느 다른 한편에서는 온갖 비인간적인 역사를 반성하면서 무엇이 진정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고민하고 모두의 고민을 담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속’을 공표하고 있었다. 제주4.3은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자 최대 인권침해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75주년이 되도록 우리는 아직도 4.3을 정의롭게 추념하고 있지 못하다.이번 4.3 추념식을 겨냥한 혐오와 역사 왜곡 주장을 담을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온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대통령의 언급도 있었다. “학교폭력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서라도 학교폭력 문제를 엄단하겠다는 말이다. 검찰 출신다운 대통령의 법치주의 중심의 사고이다. 여러 정치적 논쟁은 차치하고, 불거진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 없이 가해자는 처벌, 피해자는 보호라는 단순한 논리만 제시하는 대통령의 언급은 그래서 단선적이라고 비판받는다. 문제는 그러한 단선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실행하려고 이 정부 관계자들이 노력한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진지한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