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에 시작한 “마을 책방을 찾아書”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여기까지 왔는데, 뒤돌아보니 아득하다. 연재 마지막은 이밤수지와 맨드라미최로 불리는 이의선⸱최영재 씨 부부의 책방 “밤수지맨드라미”에 다녀왔다. 어쩌면 가장 먼 곳, 그러나 한번 다녀오고 나면 가장 가까운 곳처럼 여겨지는 밤수지맨드라미는 우도에 있는 책방이다. 우도로 가는 길은 하귀일초에 다니는 충영, 서윤 남매와 함께했다.밤수지맨드라미란 제주 바닷속에 사는 멸종위기의 분홍색 산호를 말한다. 부부는 우리 삶에서 멀어져만 가는 책의 모습과
커피동굴플랜트,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휙, 휙, 눈앞에선 선사시대 석기인들의 모습이 스쳐 간다. 밤사이 눈이 쌓이면 어쩌나, 운전이 걱정되었다. 다행히도 눈은 쌓이지 않았다. 오전 9시, 간간이 날리는 눈발과 함께 집을 나섰다.이번엔 예비 중학생 2학년인 시원이와 함께했다. 책방 문화도 경험하게 할 겸, 청소년기에 찾아올 기회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렘을 안고 찾아간 곳, 책방 “커피동굴플랜트”는 사라봉으로 가는 길 입구에 있었다. 책방지기 박선정 씨는 얘기를 나누는 동안 시원이가 무료하지 않도록
을씨년스런 하늘에 쌀쌀한 기운, 제법 겨울 날씨답다. 겨울 무 수확 철이라는 걸 알리듯 간혹 휘어진 길엔 트럭에서 쏟아진 무가 뒹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랗게 핀 배추꽃이 계절을 의심하게도 한다. 책방을 찾아가는 동안 난 잠시 추리소설 속 인물이 되어 사건의 클라이맥스 한 부분으로 들어서는 것도 같았다. 책방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길로 안내하는 내비 속에 찍힌 ‘수상한 소금밭’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내비를 설정했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이상하다 여기면서 따라갔더니
커피 향이 유난히 더 좋은 날이 있다. 여기엔 날씨도 따르지만 널따랗고 숲속 같은 분위기도 한 몫 한다. 이번에 내가 찾은 곳, “독립서점 북덕북덕”에서 마시는 커피가 그랬다. 책방지기 박장현 씨가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자 너울너울 흐르는 드립 커피 향이 내게로 와 안겼다. 커피 향이 유난히 더 좋은 날이었다. “처음엔 북스테이로”처음 봤을 때, 책방지기는 제주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부산이 고향이란다. 2015년에 제주로 와서 7년 차가 된 그는 이제 막 40대로 접어든 잘생긴 청년이었다.딱히 목표나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제주에
‘가게’란 작은 규모로 물건을 파는 집이다. let's go에서의 ‘~가자’ 또한 제주에서는 ‘~가게’로 표현할 수 있다. 처음 여행가게를 떠올렸을 때, 난 이 둘을 뜻하는 이중적인 의미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행가게에서의 ‘가게’는 단지 ‘shop’일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 남원읍 태흥리 ‘여행가게’에서 만난 정양미 씨의 목소리는 티끌조차 없이 맑았다. 봄날 깊은 산속에서 노래하는 새와 같았다.“여행가게의 출발”결혼 전에는 물론 2008년 결혼 후에도 쉬지 않고 일하던 부부는 지쳐 있었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 하얀 구름과 귤빛이 어우러진 제주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최고의 계절이다. 그 설렘을 안고 샛노란 귤밭에 동그마니 숨어 있는 책방 “키라네 책부엌”을 찾았다. 키라는 책방지기 이금영 씨가 사용하던 영어 이름이다. 깊은 산 속 새소리처럼 통통 튀어 오르는 키라 님의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는 날이다. 앉으니 영영 일어서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말은 씨가 되어”인연인지 운명인지 참 묘하다. 그가 운영하는 책방은 여행에서 만난 언니의 집을 지켜주기 위해 임시 머무르던 집이다. 여기엔 기막힌 스토리가 있다. 키라 씨는
‘풀무질’ 하면 대장간의 담금질이 먼저 떠오른다. 서울에서 풀무질이란 이름을 내걸고 28세 때부터 54세까지 26년 2개월 11일, 지금은 구좌읍 세화리에서 제주풀무질이란 이름을 내걸고 동네책방을 꾸려가고 있는 은종복 씨를 만났다.그가 운영하는 책방 이름 풀무질에는 1970~80년대 잘못된 군사정권에 불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이 숨어 있다. 책방을 방문하기 전, 문의하는 과정에서 꼬박꼬박 대꾸해주는 그의 문자에선 따뜻함이 묻어났다. “서울풀무질을 떠나다”약 1억 5000만 원, 서울풀무질을 그만두면서 남은 건 빚뿐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구름마다 제각각 개성을 드러내며 마실 나온 10월 중순, 쌀쌀한 기운이 오히려 청량감을 더해준다. 줄다리기하듯 기다랗게 늘어선 구름이 나랑 함께 달린다. 마을 책방을 핑계 삼아 나선 길이 즐겁다. 평야라고 해도 좋을 듯싶은 초록 물결이 피울음 삭히며 모래땅에서 뿌리를 살찌운다. 이번엔 당근의 고장 구좌읍 상도리 삼춘책방을 찾았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책방지기 권귀현 씨에게선 가을하늘만큼이나 해맑음이 돋보였다.경상남도 함양이 고향인 50대 중반의 책방지기 권귀현 씨,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학교 다녔고, 졸업 후 줄
숲속 작은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섰는데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나 좀 살려주세요 나 좀 살려주세요날 살려주지 않으면 포수가 총으로 나를 빵 쏜대요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동요 “숲속 작은 집 창가에”구좌읍 송당리 제주살롱 창가에 앉았다. 비자 향이 솔솔 코로 스며드는 것 같다. 어디선가 “숲속 작은집 창가에”란 동요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북카페 겸 책방을 하리라는 목표로”2017년, 이재호 씨는 북카페 겸 책방을 하리라는 다짐으로 내려왔다. 전에 왔을 때나 북카페 겸 책방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내려왔을
14호 태풍 찬투가 막 지나갔다. 제주시 애월읍 우리 집에서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로 직접 가는 건 처음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하나, 내비게이션에 맡기기로 했다. 제기랄, 하필이면 남편이 다니지 말라고 하는 5.16도로다. 별수 없다. 그냥 갔다. 그런데 아뿔싸! 안개가 자욱하다. 오금이 저리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손에는 땀이 흥건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찾아간 곳, 책방 북타임은 평화로웠다.“책으로 묶인 인생”올해 쉰여덟 살의 임기수 책방지기, 그는 국내에서도 꽤 초창기에 생겨난 설문대어린이도서관 2대 관장이었다. 그곳에서 10
책가방, 생각만 해도 아련하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땐 책가방이라기보다 '책보'였다. 언제부터인가 책가방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잊지 못할 흥분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 기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오간 데 없다.고교 시절 등교할 때 만원 버스, 책가방이 사람에 걸려 낑낑대던 기억만이 얼굴을 붉어지게 할 뿐이다. 빨리 내리라고 소리 지르던 차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동초등학교 맞은편 골목에서 김미화 씨가 운영하는 ‘책가방’을 찾았다. ‘책방은 작지만, 의식은 크다’졸업 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제주
그림이란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낸 것으로 회도(繪圖) 또는 회소(繪素)라고도 한다. 사람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글자를 발명한 것보다 훨씬 오래전이다. 글자의 발명도 그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탐방에서 이 같은 책방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번엔 ‘캔버스’와 ‘북’을 더하여 만든 예술 전문서점 ‘캔북스’를 찾았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때에 따라선 미술사도 강의하고, 어른들을 대상으로 미술수업도 하는 해요 작가 이행석 씨를 만났다. 조금은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도 그의 목소리에선
오후 2시의 만남을 향하여 동쪽으로 달린다. 덥다. 그래도 눈은 즐겁다. 어느 장인이 틀어 놓은 목화솜처럼 뽀송뽀송한 구름이 하늘 가득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책방으로 들어가는 골목은 시골의 정서가 가득 담긴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마당에 들어서자 칠변화 향기가 콧구멍을 톡 때렸다.우리 앞엔 다양한 길이 있다. 그 많고 많은 길 중에는 원해도 갈 수 없는 길이 있고, 원하지 않아도 가야 하는 길이 있다. 처음엔 안전하고 편한 길이라 여겼는데 낭떠러지가 될 수도 있다. 앞이 탁 막힌 것 같았는데 오히려 탄탄대로의 길일 수도 있다. 길
구좌읍 월정리,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제주시에서 약 35분 거리란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낯선 만큼 정신적 거리는 멀었다. 섣불리 나서기가 주저해졌다. 마침 남편이 쉬는 날이라 운전을 부탁했다. 한 시간이 더 걸렸다. 구좌읍 월정리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84호로 지정된 ‘당처물동굴’이 있고, 서쪽으로는 3분 거리에 김녕해수욕장, 남서쪽으로는 5분 거리에 만장굴이 있다. 김녕해수욕장과 모래사장이 연결된 해안선을 즐기는 하이킹과 야경은 마을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구좌읍 월정리 홈페이지 마을 소개 참조). 이처럼 아름
마음의 본바탕에 이르는 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마도 일심(一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 일심에 머무르는 길은 우선 호흡에 집중하고 지금에 머무르며, 내면에 흐르는 기억과 감정들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 지금에 머무른다. 이를 통해 내면의 물결이 가라앉을 때 마음의 본바탕은 저절로 드러난다. 여행 중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자신의 본바탕을 발견한 권혜진 씨, 그는 2016년부터 제주에서 바라나시란 간판을 내걸고 북카페 겸 책방카페를 운영하고 있다.“진짜 원하던 일”바라나시책골목에서는 순차적으로 맞이하는 향기가
한 시대를 주름잡던 헌책방, 헌책방은 말 그대로 헌책을 사거나 파는 가게이다. 하지만 이제 새 책이 넘치는 시대, 헌책방이 사라져가는 이유다. 책방지기의 색깔이 곧 책방의 색깔이라고 했던가. 책 읽는 이가 드물어가는 요즘, 책이 너무 좋아서, 책을 모으다가 책에 파묻힐 것 같아서, 결국은 제주에 와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 송재웅 씨를 만나보았다. 헌책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털털하고도 편안했다.“미치도록 헌책이 좋아”서울이 고향인 송재웅 씨는 석사 과정은 한일관계사를, 박사과정은 한중관계
장마를 불러들이며 앞다퉈 피어나는 수국과 치자꽃, 6월은 땡볕에서 여름꽃을 밀어 올리느라 연일 바쁘다. 훤칠한 키를 자랑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접시꽃도 6월의 가운데에서 슬슬 그 빛을 잃어간다. 오로지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책방을 찾아가는 중산간 길이 낯설다. 아직 산중에 있는가 싶었는데 웬걸, 난 이미 금능해수욕장에 도착해 있었다. 쪽빛을 노래하는 금능해수욕장 옆에서 “북스토어 아베끄”를 운영하는 책방지기이자 방송작가인 강수희 씨를 만났다.“제주에 머무르다”책방지기 강수희 씨 고향은 서울, 하지만 제주라고 해야 옳을 듯도 싶다.
구름의 그림자와 달리기를 한다. 초등학교 시절 100m를 24초에 달리던 나는 운전도 느리다. 하늘을 보면 구름은 뒷짐 지고 딴청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바삐 움직인다. 땅 위를 스치는 그림자는 더 빠르다. 난 차를 몰면서도 구름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메밀꽃이 즐비한 마을, 어디선가 막 부화한 꿩병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들판이다. 내가 만난 사람 그림책카페노란우산(이하 노란우산으로 칭함) 1호점의 책방지기 김종원 씨, 제주에 내려와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자분자분 풀어놓는 그는 작은 거인이었다. “아들을 위하
작은 책방으로 스며드는 한줄기 햇볕, 이는 어쩌면 소외된 자들의 삶을 향한 가능성인지도 모른다. 지구시민책방 “어나더페이지”는 약소국의 인권을 위한 책과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고, 후세대를 위해 제로 플라스틱을 지향한다. 나 역시 이번을 계기로 공정무역 커피를 맛보았다. 기분 탓이었을까, 커피라면 그저 ‘커피인가 보다.’ 하고 마시는 나로서도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들”미모의 책방지기 신의주 씨는 내 아들과 똑같은 나이로 30대 초반을 넘어서고 있다. 자식 세대인지라 어리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생각과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나무에 불면녹색 바람이 되고 꽃에 불면꽃바람이 된다 방금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어떤 바람이 됐을까 - 호시노 도미히로, 어떤 바람 전문5월 초입의 소리가 어떤 바람을 타고 맴돈다. 맴돌다가 어느 집 문 앞에서 멈춘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는 치렁치렁 늘어진 담쟁이를 흔든다. 그리고 슬며시 문을 민다. 안에서는 돋을볕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한 송이 꽃인 양 반기는 사람이 있다. 책방지기 김세희, 이용관 부부다.“제주의 소리”바람, 이 어휘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