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민의 사람사는 세상] 한가위 단상 봉숭아 꽃 해안초등학교 5학년 김예리오랜만에 외할머니 댁가보니안터졌던 봉숭아 꽃,퐁.터져있다.어쩐지 좋은 냄새나더라니내 귀에 퐁, 퐁소리울린다봉숭아 흔들리는 모습이꼭 우리 외할머니웃으시는 모습같다독서수업으로 아이들과 만나다 보면 제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위안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의 기발한 대답에 한바탕 웃기도 하고, 따뜻한 글에 무한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어른들
[강충민의 사람 사는 세상] 강충민이 읽은 책 1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철이 든다는 것은 슬픔을 알아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슬픔을 견뎌내면서 더욱 더 단단하게 철이 들어가는 것일지도요.
[강충민의 사람사는 세상] 김규린의 11년만의 두 번째 詩集 첫 시집 에 이은 두 번째 시집 김규린, 그녀는 제주도시인입니다. 서귀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제주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학위도 취득한 오롯한 제주시인입니다. 199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1994년 동아일보 신
하루에 거의 열세 시간을 가게에서 보냅니다. 아침밥을 먹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 지운이를 학교에 데려다 줍니다. 그리고는 오 분 정도 천천히 걸어서 가게 문을 엽니다. 집과 학교, 식당을 선으로 쭉 그린다면 직각삼각형으로 그릴 수 있겠습니다. 이 세 곳, 각각의 거리는 채 삼백 미터도 걸리지 않습니다. 올해 1월 15일 식당을 시작한 후, 제 활동영역
제가 만드는 몸국이야기 하겠습니다. 집 근처에 조그만 식당을 시작한 지도 이제 두 달째 접어듭니다. 올해 1월 15일, 개업을 했으니 지나보면 순간이란 말을 비로소 절감하게 됩니다. 5일 만에 직업병?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땐 집에서 즐기던 일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거다 각오는 했습니다. 당연히 힘도 들 것이라 마음도 잡았고요. 그런데 실제로 맞닥뜨린 강도
제 나이 마흔 넷, 가당찮게 사는 것에 욕심을 부린대도 이젠 살아온 날이 남은 날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생의 전반기는 끝났습니다(그러고 보니 작년에 생의 전반기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년에 아들 원재가 5학년, 딸 지운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이제 열심히 벌어야 한다는 말이 딱 맞는 그런 시기입니다. 정말 열심히 말이지요. 그런데 전 이제 직
▲ 선생님놀이 하는 지운이 지운이는 집에 오면 거의 매일 이렇게 선생님 놀이를 합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흉내를 아주 세밀하게 하길 좋아합니다. 어제 저녁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 강충민 선생님놀이 딸 지운이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제 아침에 일어나면서 목 아프고 열이 난다고 했습니다. 올해로 일곱 살인 우리 딸 지운이는 유치원생입니다
▲ 우리 동네 차부 차부라 부르는 정류소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서귀포시내로 나갔고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참 북적였던 곳입니다. 공중전화가 예전의 영화를 말해줍니다. ⓒ 강충민 동네 정류소 가끔 주말에 서귀포 집에 간다. 서귀포 집에는 아버지가 계신다. 찬거리 준비하고 만들어 아버지와 밥상에 같이 앉아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것이 주된 일이다(물
참 무기력한 요즘입니다.그러고 보니 이 무기력이라는 분은 요즘에 불쑥 찾아 온건 아닙니다. 분노가 허탈로 바뀌고, 또 허탈이 무기력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2년을 더 버텨야 한다 생각하니 한숨만 푹푹 쉬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제 친구 얘기 하겠습니다. 정확히는 제 친구의 술버릇 이야기지요. 요즘 같은 때 걷어 부친 소매에 힘찬 구호가 어울리는 그런 글보다는, 생뚱맞지만 어쩌면 잊고 사는, 잊어버리기 쉬운 하지만 제일 소중한 것은 바로 옆에 있다는 진리를 느껴보자고요.친구와 저는 20대의 첫 직
▲ 수술 자국 여섯살 난 우리 딸이 수술자국을 보고 "지네 같애"라고 했다가 "햇님 같애"라고 정정을 했습니다. 목욕탕에서 이런 자국이 있는 사람을 보면 왠지 반갑습니다. ⓒ 강충민 신장이식수술 누나는 오지 않았고, 나에겐 올 것이 왔다 인천에 사는 내 바로 위의 누나는 올해 설에 제주도에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매형도 바
▲ 산중 화장실 해발 1700고지 산중 화장실 ⓒ 김강임 대부분 사람들이 산에 오를 때 걱정하는 것은 화장실 문제다. 산에는 화장실 시설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산행 중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화장실이 있더라도 냄새가 고약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모기와 파리 때문에 산행 중 대소변을 꾹 참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테지만,
선생님. 이제 2009년이고, 그래서 제 나이 벌써 마흔 셋이네요.어릴 적엔 마흔이란, 뒷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지긋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나이라 어림짐작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 생각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을 살면서 그냥 깨닫게 되네요. 선생님도 가끔 그런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언젠가 같이 소주 마시면서 저의 이런 말에 선생님이 맞장구치시면서&hell
강정의 마을풍경은 제주도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 없이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마을로 들어서니 나무 가지마다 이제 수확을 기다리는 샛노란 감귤들이 탐스럽게 달려 있습니다. 얕은 지붕을 하고 담벼락을 서로 맞댄 이웃집과 먹을 것을 서로 나누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괜시리 정겨워지는 그런 곳입니다. ▲ 강동균 회장님 단식을 끝낸 후라 많이 야위었습니다. 제가
우리집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보다, 만들어 먹이는 즐거움이 더 큰 제가 식구들을 길들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재료로 만들었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지 않아도 되고, 외식비 지출이 없으니 당연히 가계절약도 되고요. 그래서 특별한 날이라고 해도 미리 재료를 구입했다가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이 일상화 되었습
어제(3월16일)는 봄볕 따사로운 일요일이었습니다. 우리 부부 워낙에 게을러터져 벼르고 별렀던 겨울옷 정리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더 게으른 저는 각시의 지시에 따라 옷 정리를 하다 묘수를 생각해 냈습니다. 저는 닭개장 끓이는 것으로 분담하자고요. 각시도 쾌히 승낙을 하더군요. 옷장 안을 일일이 뒤지며 정리하는 것보다는 주방에서 삶고 칼질하는 것이 저에겐
어릴 적 어머니는 겨울 따뜻한 날을 골라 이불호청을 뜯어냈습니다. 속살과 피부를 분리하듯 솜이불에서 호청을 뜯어내는 일은 어린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놀이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솜이불과 호청이 꼭꼭 여며지도록 기웠던 실을 군데군데 가위로 잘라놓고 한꺼번에 쫘악 찢듯이 벗기면 묘한 쾌감도 들었습니다. ▲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이제 바늘귀에
"아빠! 누드김밥 만들 수 있어?"지난 수요일(24일) 원재가 저녁 식사 후 혼자 샤워를 하고 와서 저에게 물었습니다."응 김에 밥 펼친 걸 뒤집어서 말면 되지… 왜 누드김밥으로 만들어 줄까?"그러고 보니 아들 원재가 완전 누드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 했습니다. "지금 니가 누드야"새벽
저는 고등학교 시절 '빵돌이'었습니다. 빵을 판다고 붙여진 별명이었는데 비단 빵만을 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매점에서 식권과 빵, 과자 ,아이스크림등을 파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일종의 아르바이트였던 셈이지요.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올해 제 나이 마흔하나, 그러고 보니 벌써 23년 전 일입니다.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리 학교에는 학
▲ 어머니 병원가는 날. 어머니 병원가는 날을 달력에 표시해 둡니다. 하루에 두 차례 오전엔 채혈, 오후엔 진료를 받고 약을 한 달치 받아옵니다. ⓒ 강충민 나이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 잔병치레 때문에 걱정이 참 많습니다. '잔병'자체야 나이든 노인네의 일상이려니 해서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데, 우리 어머니는 도통 당신의 상태에 대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빠! 명절 우울증이 뭐야?"딸 지운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내고 다시 집에 돌아오니 원재가 저에게 묻습니다.아침에 배달된 신문에서 그 단어를 봤답니다.각시는 제가 지운이를 데리고 나간 사이 서둘러 출근을 하고 없었고 원재는 저와 같이 학교까지 걸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중 이었습니다.저는 서둘러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원재의 물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