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음식 준비하고 만드는 게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우리 집은 별 스트레스는 없는 듯 합니다. 명절 음식 준비는 제가 도맡아 합니다. 사실 굳이 명절뿐만 아니라 음식 만들기는, 간헐적으로 각시가 만들 때도 있지만 결혼 초기부터 거의 제 담당입니다. 그래서 명절 음식이라고 특별하게 각시가 두 팔 걷어 붙여 하는 일은 없습니다. 각시는 충실한 제 보조 역할이지요. 아버지 추석 상에 올릴 전복적갈 만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 제주에서는 제사, 명절 차례상에 올리는 산적을 적갈이라고 합니다. 제주도 차례상에는 돼지고기, 소고기
고희영 누나.대학 1학년 1986년에 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시를 잘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 입학하면 시 잘 쓰는 선배와 친해지면, 더불어 나도 시를 쓸 수 있으리라 순진한 생각을 했습니다. 시창작 동인 활동보다 훨씬 진도가 빠른 방법이 그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문학과 선배 중에서 시를 잘 쓰는 사람을 은밀하게 탐색하기 시작했어요. 시(詩)는 어느 날 불쑥 써지지 않아!그 해 4월 초, 서귀포 돈내코 청소년 수련원에 MT를 갔습니다. 밤에 조별로 텐트 안에 빙 둘러 앉아 국문학과에 걸맞게 주제를 설정해서 소설을
엄마는 1932년 생입니다. 본인은 아흔 셋이라고 당신의 나이를 말하는데, 만 나이 통일 덕분에 이제 엄마는 아흔 한 살입니다. 두 살이 줄어드니 엄마가 젊어진 것 같습니다. 나이를 줄여준 현 정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심리적 위안이지만 말입니다.엄마는 앞이 안 보입니다. 전맹인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1983년에 갑자기 실명하셔서 그 이후로 영영 세상의 밝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엄마의 힘든 세월을 얘기하자면, 어쩌면 그동안 엄마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필요할 터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필자의 기억을 소환해 전하는 편지 글입니다. 새하얀 편지봉투 앞면의 아래위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칸에 볼펜을 꾹꾹 눌러 누군가와 나의 이름을 써 넣던 ‘우리 시대의 편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공유하게 하는 코너입니다. 편지는 모바일 메신저나 인터넷 이메일로 소통하는 요즘엔 경험할 수 없는 공감의 통로입니다.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풀이 없어 밥풀을 이용해 편지봉투를 붙여본 적 있는 세대들에게 바치는 연서(戀書)이기도 합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그립습니다. / 편집자어제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필자의 기억을 소환해 전하는 편지 글입니다. 새하얀 편지봉투 앞면의 아래위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칸에 볼펜을 꾹꾹 눌러 누군가와 나의 이름을 써 넣던 ‘우리 시대의 편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공유하게 하는 코너입니다. 편지는 모바일 메신저나 인터넷 이메일로 소통하는 요즘엔 경험할 수 없는 공감의 통로입니다.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풀이 없어 밥풀을 이용해 편지봉투를 붙여본 적 있는 세대들에게 바치는 연서(戀書)이기도 합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그립습니다. / 편집자고백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필자의 기억을 소환해 전하는 편지 글입니다. 새하얀 편지봉투 앞면의 아래위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칸에 볼펜을 꾹꾹 눌러 누군가와 나의 이름을 써 넣던 ‘우리 시대의 편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공유하게 하는 코너입니다. 편지는 모바일 메신저나 인터넷 이메일로 소통하는 요즘엔 경험할 수 없는 공감의 통로입니다.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풀이 없어 밥풀을 이용해 편지봉투를 붙여본 적 있는 세대들에게 바치는 연서(戀書)이기도 합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그립습니다. / 편집자 1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필자의 기억을 소환해 전하는 편지 글입니다. 새하얀 편지봉투 앞면의 아래위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칸에 볼펜을 꾹꾹 눌러 누군가와 나의 이름을 써 넣던 ‘우리 시대의 편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공유하게 하는 코너입니다. 편지는 모바일 메신저나 인터넷 이메일로 소통하는 요즘엔 경험할 수 없는 공감의 통로입니다.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풀이 없어 밥풀을 이용해 편지봉투를 붙여본 적 있는 세대들에게 바치는 연서(戀書)이기도 합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그립습니다. / 편집자 효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필자의 기억을 소환해 전하는 편지 글입니다. 새하얀 편지봉투 앞면의 아래위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칸에 볼펜을 꾹꾹 눌러 누군가와 나의 이름을 써 넣던 ‘우리 시대의 편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공유하게 하는 코너입니다. 편지는 모바일 메신저나 인터넷 이메일로 소통하는 요즘엔 경험할 수 없는 공감의 통로입니다.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풀이 없어 밥풀을 이용해 편지봉투를 붙여본 적 있는 세대들에게 바치는 연서(戀書)이기도 합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그립습니다. / 편집자 덥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필자의 기억을 소환해 전하는 편지 글입니다. 새하얀 편지봉투 앞면의 아래위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칸에 볼펜을 꾹꾹 눌러 누군가와 나의 이름을 써 넣던 ‘우리 시대의 편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공유하게 하는 코너입니다. 편지는 모바일 메신저나 인터넷 이메일로 소통하는 요즘엔 경험할 수 없는 공감의 통로입니다. ‘강충민의 보·받는 사람’은 풀이 없어 밥풀을 이용해 편지봉투를 붙여본 적 있는 세대들에게 바치는 연서(戀書)이기도 합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그립습니다. / 편집자 이
눈부시도록 하얗던 벚꽃도, 꽃비로 흩어지더니 이젠 그마저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요즘처럼 때 이른 더위가 찾아와 이렇듯 봄이 쉬이 가버리면 어쩌나 발을 동동 구르고 싶어집니다. 소풍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코로나로 학교에서는 아예 소풍을 가지 않고 있을 터입니다. 고3인 제 딸만 해도 고등학교 내내 야외활동 한 번 못 했습니다. 맘 놓고 소풍 갈 수 있는 날, 언제일지 사뭇 기다려집니다. 원보훈련이었던 효돈초등학교 소풍제가 이제 50대 중반, 초등학교 때는 박정희 집권기였습니다. 소풍을 원보훈련이라고 했습니다. 일 년에 두
창범아너를 처음 본 건, 1991년 그랜드호텔(지금 메종글래드호텔)에 입사하고 아마 두 달 정도 지났을 때였던 것 같아. 그때 나는 지하 3층 하우스키핑에서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야간근무를 하고 있었어. 퇴근하면 그 날은 하루 쉬고, 또 다음날 오후 6시 출근하는 스케쥴이라 같은 사무실 직원들 말고는 친해질 일이 없었지. 게다가 사무실이 지하 3층에 떨어져 있던 터라 다른 직원들하고 잘 마주칠 기회도 많지 않았고 말이야. 너는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주었다. 지하 3층 하우스키핑 사무실 옆에는 아주 큰 세탁소가 있
아버지 보십시오.작년(2021년) 12월22일 수요일 동짓날이었습니다. 오후 2시가 넘어 여느 때처럼 수업을 시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한 아이가 늦게 와서 막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계신 요양병원 간호사선생님의 전화였습니다. 2시7분이었습니다. “아드님 어디 계세요?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어르신 위독하세요.”5일전, 폐렴 증상이 다시 도졌다는 얘기를 듣고, 그 후 아침, 저녁으로 전화로 당신 증세를 체크했었고, 22일 날 아침에는 상태가 나아졌다고 담당 과장님께 전해 들어 안도하고 있던
설 명절이 지났습니다이제 나이도 한 살씩 더 먹고, 시간은 바삐 흐르고 있습니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꺼려지는 시기인지라 정다운 덕담도 비대면으로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편지에는 아버지 이야기를 써서 다소 무거웠습니다. 오늘 편지는 분위기 바꿔봅니다. 아 그리고, 제 편지 받아보시는 여러분들에게 늦었지만, 새해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계획은 눈치 못 채게 아주 일상적으로...제가 어릴 때는 목욕을 하고 이발을 하는 게 설 명절맞이 낯익은 풍경이었습니다. 동네 이발소에는 사람들이 낡은 쇼파에 빼곡하게 차례를 기다
지난 편지에는 한 달 전 12월 22일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썼습니다. 누구나 겪는 아버지의 죽음을 많은 분들이 내 일처럼 같이 슬퍼하시고 메일로도 많은 위로를 전해주셨습니다. ‘경사(慶事)보다, 애사(哀事)를 먼저 챙기고 슬픔을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느꼈습니다. 슬픔을 같이 해 주신 분들께 거듭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미루고 있었던 아버지 사망신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요양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받았습니다. 담당과장님께 그 동안 아버지 잘 돌봐주셔서 고마웠다고 말씀 드렸습
아버지를 겨울 들판에 묻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돈내코 선영 장지에서 내려와 아버지가 병원으로 가시면서 비어있던 집을 정리하다 보니, 이미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각시가 운전하는 차에 설핏 졸았던지, 뒷좌석에 탔던 아들이 창문을 내린 탓에 찬 눈바람이 쏴악 하고 들어 온 다음이었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다 치르고 난 뒤 차가운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수요일(12월 22일)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정신없이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모시느라 미처 감정을 느낄 틈이
벌써 10월 끝자락 가을이 한창 깊어지고 있습니다. 시간 참 빠르지요. 10월 이라니…. 이 편지를 쓰며 무심코 “참 시간 빨리도 간다”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중얼거렸습니다. 10월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것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잠시 떠올려보시지요. 홍시, 단풍, 가을 소풍, 그리고 가을 운동회가 떠오릅니다. 이맘때 마을 초등학교마다 가을 운동회를 했습니다. 제가 다닌 효돈초등학교에서도 어김없이 가을 운동회가 열렸습니다.카바를 신고 간 운동날가을 운동회를 그때 40여 년 전 우리들은 ‘운동날’이라고 불렀습니다. 운동날이라고 발음
멩질 떡허는 날 오늘은 팔월대보름 추석 멩질입니다. 어제는 ‘멩질 떡허는 날’이었지요. 추석이나 설날 전날은 ‘멩질 떡허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멩질 떡 허는 날에는 서귀포 효돈, 고향 집에서 음식 준비를 합니다.제주도 여느 집에서든 마찬가지로 멩질 전날, 떡허는 날은 다들 분주하겠지요. 올해 각시와 저는 음식의 양을 대폭 줄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마음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도로 예전처럼 됩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남으면 여기저기 나누어 먹으면 되고요. 그런게 멩질이니까요.멩질 떡허는 날, 음식 준비
[제주의소리] 시민기자로서 소식을 전하지 않은 지, 염치없이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6년 전 이맘때 마지막 글을 썼습니다. 그 동안 온전한 게으름으로 살았습니다. 책은 멀리하였고, 주말 연속극에 심취해서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 선택해서 현실감 있는 대사에 낄낄대고 웃으면 참 재미있어 했습니다. 검색어 몇 번으로 너무도 쉽게 순식간에 눈으로 훑고 얻은 지식, 정보가 온전한 저의 시간, 경제적 노력의 산물인 것처럼 착각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지요. 올해 초, 서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