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이 끝난 1960년 70년대, 한국은 반공이 최우선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제일 꼭대기에는 반공만이 있을 뿐이었다. 당시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필자 머리 속에는 빨간색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파란색만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 있는 동포들은 그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못하는 전쟁을 일본에서 대리로 하고 있었다. 북한
조총련이 운영하는 학교를 일본에서는 보통 조선학교라고 부른다. 조총련은 열심히 교육사업을 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슬로건이 '총련의 자랑은 민족교육' 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조총련의 가장 큰 긍지가 민족 교육이다. 또 조선대학의 총장은 조총련 내부에서 상당히 서열이 높아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북한 정부로
해방 후 재일동포 최초의 민족 단체, 조련(朝連, 재일본조선인연맹 在日本朝鮮人連盟)은, 1949년9월8일 일본정부및 GHQ로 부터 해산명령, 재산도 몰수되고 만다. 또 민족학교도 폐교명령을 받는다.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은 1955년5월에 결성된다. 조련이 해산된 1949년9월부터 조총련이 결성된 1955년5월까지 약6년간, 북한계
조총련, 그 단체는 과연 어떤 단체일까? 어떤 단체이기에 우리 제주도 사람에게 그리도 많은 피해를 주었을까?사관학교 입학시험, 고시, 공무원 시험등등, 좋은 성적으로 2차 시험까지 합격해 놓고서 집안 누가 조총련이란 이유 때문에 신원조회에 걸려서 울어야만 했던 제주도 사람들 얼마나 될까?필자 친구도 고등학교때 신체도 좋았고 공부도 잘 했다. 꿈은 공군사관학
1945년8월15일, 일본은 전쟁에 졌다고 양손을 들고 말았다. 무조건 항복을 한 것이다. 무조건 항복이란 조건 없이 승전국의 말을 잘 듣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전쟁에서 지면서 바로 GHQ(General Headquarters, 連合國軍最高司令官總司令部)가 들어섰다. 連合國이란 승전국을 말하지만, 미국이 중심이었다. 미국, 즉 GHQ가 패전국 일본을 통치
츠루하시 역에서 동남쪽으로 10여 분 걸으면, 조선시장(朝鮮市場, Korea Town)이 나오고, 조선시장에서 동쪽으로 10여분을 걸으면 이마자토 신지(今里新地) 라는 동네가 나온다. 이 동네는 한국 사람들이 모여 술장사를 하는 '한국에서는 보지 못할 한국'이 일본에 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오사까시 이쿠노구(大阪市 生野區)이다.츠루하시(鶴橋)와 코
오사카 동쪽 교통요지 츠루하시역. 이 츠루하시역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10여분을 가면, 히라노 가와(平野川)가 있다. 폭이 20여 미터 정도의 좁은 개천이다. 이 개천이 우리 동포들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여기에 시장이 있다. 이 시장을 조선시장(朝鮮市場, 죠센 이찌바)라고 부르기도 하고, 코리아 타운(Korea Tow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입구에서 출구
일본 오사카(大阪)에는 오사카 시내를 도는 순환선, JR(Japan Railroad) 간죠센(環狀線)이라는 전차 노선이 있다. 오사카시의 중심 오사카 역에서 7번째 역이 츠루하시(鶴橋)이다. 'JR간죠센'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 및 사철 '긴테츠(近鐵)'가 츠루하시를 지나고 있어서, 전차 3개 노선의 교차점이다. 이 지하철 및 긴테츠는 오사카
제주도-오사카(大阪) 노선에는 군대환만 있었는가? 아니다.다른 배도 다녔다. 朝鮮郵船株式會社 라는 조선총독부와 아주 가까운 親日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日本郵船과 大阪郵船의 원조하에 1912년1월에 자본금 300만엔으로 설립된다. 1913년4월부터 제주-목포 노선, 1915년4월부터 제주-부산 노선을 만들지만 1932년3월까지는 총독부 명령노선으로서 보조
군대환(君が代丸 기미가요마루)무정한 군대환은 무사 날 태워 완, 이 추룩 고생만 시켬신고청천 하늘엔 별도 많치만, 내 몸위에는 고생만 많구나이 몸은 이 추룩 불쌍허게, 일본 어느 구석에 댁겨지고귀신은 이신건가 어신건가, 날 살리잰 올건가 말건가나신디 날개가 이서시문 나랑이라도 가구정 허건만,날개가 어신것이 원수로다옛날 재일동포들이 일에 힘들고 고향생각에 눈
고향 땅에서 경작하던 농토를 빼앗겨 못살게 된 사람들이 일본으로, 또 징용이란 제도를 만들어서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서 혹독한 환경의 탄광, 군대 작업장에 보내여진 우리 동포들. 어떻게 살았을까?일본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다. 자기들과 다른 문화를 이해 할려고 하지 않는다.지금도 마찬가지 이다. 또 우월하지도 못하면서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자기들은 1
1910년에 우리 한반도의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은, 1930년대가 되면서 전쟁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당시의 일본은 자본주의가 성숙이 되며 또 공업화에도 성공한 사회였다. 공장이 생기며 공장에서 일을 할 노동력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을 해야할 젊은이들이 군대에 소집되여 갔다. 그런 젊은이들도 필요했다.공장이 이익을 만들기 위해서는 값이
어떤 사람을 재일동포라고 불러야 될까?재일동포(在日同胞)란, 재일(在日) 즉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 단군의 자손이란 의미이다.사람에게는 국적(國籍)이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땅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이 애가 태어나면 호적에 올린다. 한국 호적에 올라있기 때문에 국적이 한국이며, 한국사람 한국인 한국국민이다. 만약 일본 호적에 올라 있
우리 한국사람에게 일본이란 어떤 나라일까? 우리 제주도사람에게 일본이란 어떤 나라일까?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란 표현이 있다."일본"학교 역사시간 속에도, 어제를 산 우리 부모님의 세대에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준 나라이고, 내일을 살아갈 우리 다음세대에도 큰 영향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도대체 우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