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고매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어릴 적 제 고향 서귀포 신효마을에서는 바다로 가려면 한참이나 걸어야 했습니다. 가끔 온 가족이 바다가 있는 보목리까지 두 시간 넘게 걸어갔습니다. 도착할 즈음이면 웅장한 섭섬이 저만치 모습을 드러냈고 소금기 머금은 비릿한 바다냄새가 코를 덮쳤습니다.텀벙텀벙 바다에 들었습니다. 고매기는 몸을 반쯤 적신 갯바위에 찰싹 달라
서귀포 매일시장 버들집에서 먹었던 첫 ‘짜장면’의 추억제가 자장면을 처음 먹었던 건 초등학교 4학년때였습니다.어머니와 서귀포 매일시장을 갔다 오는 길, 조르고 졸라 기어이 자장면 한 그릇을 먹었더랬습니다. 돼지머리와 순대가 잔뜩 쌓인 골목 귀퉁이 유리창에 “버들집”이라고 빨간 페인트로 쓰여 있었던 집, 늘어뜨린 발
정말 오랜만에 기사를 올립니다.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일어난 일이란 제가 생각하기엔 슬프고, 분노하고, 좋은 일들은 아니었나봅니다. 비단 제 밖에서 벌어진 일들 말고도 제 자신에게도 큰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기사를 올리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일이었습니다. 허나 궁금증 하나로 그동안 올리지 못한 미안함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기사는
어릴 적 내가 잡은 미꾸라지는 어이없이 떠나갔고...제 고향 효돈하고도, 신효마을 위쪽에는 저수지가 하나 있었습니다.(저수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을에서 한 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그 곳을 제 또래 아이들은 자주 갔었습니다. 미꾸라지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구멍 숭숭 뚫린 모기장만 있으면 준비는 끝이었습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야트막한 가장자리에 낡은 모
[강충민의 사람사는 세상] 김규린의 11년만의 두 번째 詩集 첫 시집 에 이은 두 번째 시집 김규린, 그녀는 제주도시인입니다. 서귀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제주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학위도 취득한 오롯한 제주시인입니다. 199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1994년 동아일보 신
하루에 거의 열세 시간을 가게에서 보냅니다. 아침밥을 먹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 지운이를 학교에 데려다 줍니다. 그리고는 오 분 정도 천천히 걸어서 가게 문을 엽니다. 집과 학교, 식당을 선으로 쭉 그린다면 직각삼각형으로 그릴 수 있겠습니다. 이 세 곳, 각각의 거리는 채 삼백 미터도 걸리지 않습니다. 올해 1월 15일 식당을 시작한 후, 제 활동영역
제가 만드는 몸국이야기 하겠습니다. 집 근처에 조그만 식당을 시작한 지도 이제 두 달째 접어듭니다. 올해 1월 15일, 개업을 했으니 지나보면 순간이란 말을 비로소 절감하게 됩니다. 5일 만에 직업병?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땐 집에서 즐기던 일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거다 각오는 했습니다. 당연히 힘도 들 것이라 마음도 잡았고요. 그런데 실제로 맞닥뜨린 강도
제 나이 마흔 넷, 가당찮게 사는 것에 욕심을 부린대도 이젠 살아온 날이 남은 날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생의 전반기는 끝났습니다(그러고 보니 작년에 생의 전반기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년에 아들 원재가 5학년, 딸 지운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이제 열심히 벌어야 한다는 말이 딱 맞는 그런 시기입니다. 정말 열심히 말이지요. 그런데 전 이제 직
▲ 선생님놀이 하는 지운이 지운이는 집에 오면 거의 매일 이렇게 선생님 놀이를 합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흉내를 아주 세밀하게 하길 좋아합니다. 어제 저녁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 강충민 선생님놀이 딸 지운이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제 아침에 일어나면서 목 아프고 열이 난다고 했습니다. 올해로 일곱 살인 우리 딸 지운이는 유치원생입니다
▲ 우리 동네 차부 차부라 부르는 정류소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서귀포시내로 나갔고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참 북적였던 곳입니다. 공중전화가 예전의 영화를 말해줍니다. ⓒ 강충민 동네 정류소 가끔 주말에 서귀포 집에 간다. 서귀포 집에는 아버지가 계신다. 찬거리 준비하고 만들어 아버지와 밥상에 같이 앉아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것이 주된 일이다(물
참 무기력한 요즘입니다.그러고 보니 이 무기력이라는 분은 요즘에 불쑥 찾아 온건 아닙니다. 분노가 허탈로 바뀌고, 또 허탈이 무기력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2년을 더 버텨야 한다 생각하니 한숨만 푹푹 쉬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제 친구 얘기 하겠습니다. 정확히는 제 친구의 술버릇 이야기지요. 요즘 같은 때 걷어 부친 소매에 힘찬 구호가 어울리는 그런 글보다는, 생뚱맞지만 어쩌면 잊고 사는, 잊어버리기 쉬운 하지만 제일 소중한 것은 바로 옆에 있다는 진리를 느껴보자고요.친구와 저는 20대의 첫 직
▲ 수술 자국 여섯살 난 우리 딸이 수술자국을 보고 "지네 같애"라고 했다가 "햇님 같애"라고 정정을 했습니다. 목욕탕에서 이런 자국이 있는 사람을 보면 왠지 반갑습니다. ⓒ 강충민 신장이식수술 누나는 오지 않았고, 나에겐 올 것이 왔다 인천에 사는 내 바로 위의 누나는 올해 설에 제주도에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매형도 바
여름입니다. 개인적으로 땀이 무척 많은 저로서는 이 여름이 무척이나 고역입니다.게다가 걸어서 출, 퇴근을 하는데, 특히나 출근길 따가운 햇볕을 맞고 걷다보면 바람 솔솔 통하는 대청마루가 간절합니다. 거기에다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물회 한 사발 들이켰으면 좋겠다고 아침부터 쩍쩍 입맛만 다십니다. 아침밥 배불리 잘 먹고 출근하는 길에 말이지요.그래서 결정했습
제주도엔 유달리 국수집이 많다. 골목어귀마다 국수라는 대표음식을 앞 혹은, 뒤로 넣고 상호를 달아 장사하는 것을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 한 끼 간단히 끼니 때우는 대체음식이 제주에선 도민음식으로 훌륭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내 고향 서귀포에선 상가(喪家)에서 손님 접대할 때도 거의 모두 국수다. 그러고 보면 먼 길 떠나보내는 고인에게
어디 모든 가축이 인간에게 이롭지 않은 게 있으랴 마는 닭은 더욱 그러하다. -적어도 내 생각엔- 계란 한 판을 새로 들여 놓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을 때도 왠지 부자가 된 것 같은 생각이 간혹 든다. 그리고 시장에서 실한 닭 한 마리 사서 삶아 온 가족 둘러 앉아 살점을 열심히 뜯은 다음, 쌀알 잘 퍼진 쫄깃한 죽을 한 그릇 비우면 우리 아들 강원재군의
어린 시절 동네에 큰일이 있으면 괜히 내가 설레었다. 우리 집안이든 그냥 이웃이든...마당 한 구석 혹은 우영팥이라고 부르는 텃밭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 넣고 돼지를 삶기 시작하면 괜히 그 주위를 기웃거리곤 했었다. 하루 세끼를 꼬박 그곳에서 해결하고도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 없이, 먹는 인심하나는 끝내주게 후한 터라 정작 많이 먹지 않고도 배가 부르는
봄볕이 따사롭다. 점심을 먹으면 꾸벅꾸벅 병아리마냥 졸린 것에서 봄이구나 하고 느껴진다. (표현이 참 무미건조하다)... 허나 조금 발품을 팔아 외곽으로 나가면 이제 막 파릇파릇함을 더하는 보리밭에 눈을 뺏기고, 따뜻한 봄기운에 해바라기도 한다면 참 좋을 일이다. 코피 터지게 치이고 만신창이 되게 두들겨 맞는 일상을 잠시 잊고서... 그러다 비로소 바라보게
주관식문제 하나 내겠다. 제주도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이 문제는 제주사람뿐이 아니라 육지사람들에게도 너무 쉬운 문제일 것이다.아주 간혹 다른 음식을 말하겠지만 열에 아홉은 흑돼지 아니면 싱싱한 회를 말할 것이다.그중에서도 흑돼지는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쫄깃한 육질의 제주산흑돼지를 지글지글 불판에 굽고 소주 한 잔 착 곁들이면 임금님
다들 한 번쯤 배는 고픈데 딱히 종목을 정하지 못했을 때 흔히들 정식 혹은 백반을 찾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대개가 집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형태를 기대했을 것이고, 이런 기대에 맞춰 식당에서는 가정식이라고 해서 강조하는 것일 것이다. 누구나 집에서 먹는 것만큼 맛깔난 것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 음식이 맛있든 혹은 그렇지 않든... 게다가 어머
곧 봄입니다. 나이가 들며 달라진 게 있다면, 계절이 바뀌는 것에 별로 감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른 계절과 달리 봄은, 온도의 변화만큼이나 저절로 '아 봄이구나' 하고 내뱉게 됩니다. 겨우내 입혔던 애들의 내복을 벗기고 밖에 내보낼 때, 두툼한 솜이불이 무겁다고 느껴질 때, 꼭꼭 여며두었던 베란다의 문을 활짝 열고 기분 좋게 볕을 쬘 때, 이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