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3·10파업투쟁위원장에 이어 제주도지사로 임명된 임관호 친일행위에 이어 제주도청 간부로 ‘제주에 주둔하고 있는 경비대 제11연대장 박진경 대령(27) 피습 사건을 조사하고자 18일 정오 김포공항을 떠난 딘 군정장관은 당일 하오 7시 반 경 박대령의 유해를 싣고 귀임하였다. 저격 범인에 대하여서는 부내인의 행동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으나 아직 명확한 판단은 짓지 못한 채 현지에서 각 방면으로 엄중한 수사를 계속 중이라 한다. 그리고 과도정부 당국은 이번 제주도 일대의 소요사건의 수습책의 하나로 경찰책임자와 도지사의 경질...
(56) ‘귀신 잡는 해병’ 창설의 주역 친일군 출신 신현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신현준 ‘26일 귀성한 바 있는 시(市)선출 민의원 고담룡(민)씨는 30일 이도에 앞서 4․3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한계와 복안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6월 1일의 국회 본회의에 국회조사단을 초치토록 재경 김(金), 현(玄) 양 민의원과 합력(合力)하고 긴급동의를 할 계획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선 최고책임자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며 그런 자료로서 1949년 3월의 유재흥(劉載興) 계엄사령관 부임 이후를 하나의 한계로 선을 그어놓고자 한...
(55) ‘미국의 양심’ 세계적인 석학 노암 촘스키 MIT 교수 제주4·3, 미국이 직접 책임?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사진)는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의회를 방문해 4·3사건에 미국도 책임이 있다며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동참해달라고 요구했다. 강 주교는 이날 민주당 매지 히로노 상원의원과 마크 다카이 하원의원 사무실을 찾아 제주 4·3사건 정부 보고서 영문본을 전달하고 4·3사건 치유를 위한 한·미공동위원단 구성을 제안했다. 강 주교는 의원실 방문 후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정부가 2014년 4월3일을 국가추념일...
(54)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초대 제주법원장 최원순 친일인사 최원순의 생애‘오랫동안 심의 중이던 사법관 인사는 드디어 15일 군정청으로부터 발령되어 경성을 위시 지방도시의 전(全) 일본인 사법관이 파면되고 조선인 사법관 70여명이 임명되었다. 고등법원은 대법원으로, 동 판사는 대법관으로, 복심법원은 공소원으로, 지방법원 검사정을 검사장으로 개칭하였으며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을 각각 지방법원으로 승격시키며 각각 전 재직자로 판검사를 임명하였고 그 외에 법무국장이 위탁하는 문제에 관하여 경성재판소에서 심문 판...
(53) 제주4·3 초기부터 경찰에 적극 협조한 대동청년단 대동청년단 제주도지부 탄생 ‘서북청년 민족청년 대동청년 등은 미군과 경찰의 일심동체로써 인민의 생살여탈권을 한손에 틀어쥐고, 각 읍·면·리의 요소에는 인민의 주택과 공공건물을 탈취해서 거기에 사형비밀실을 설치하고 애국적인 인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길가로 지나가는 농어민마저 함부로 붙잡아다가 라고 소리지르며 구타 폭행 살해하는 죄악적인 만행을 서슴치 않고 감행하였을 뿐 아니라 낮이나 밤중이나 도시이거나 시골이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매일과 같이 자행하였다.’-金...
(52) 국군 최초로 별을 단 친일군 출신 육군참모총장 이응준 이응준, 친일에 앞장서다 ‘광복 후 혼란기에 국군창설의 대임을 맡았던 秋硏 李應俊옹은 평생을 군인정신으로 살아간 대한민국의 최초의 武人이었다. 8일밤 李옹의 빈소를 지켰던 李亨根 劉栽興 白善燁 金貞烈씨 등 원로 퇴역장군들은 한결같이 “고인은 일생생활을 통해 몸소 군인의 길을 실천하신 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1890년 平南安州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李옹은 16세때 상경, 대한제국 육군참령(소령) 출신으로 독립운동가인 秋汀 李甲 선생집에 기식하며 보성중학 1기생으...
(51) 계엄선포 당시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을 역임한 이범석 이승만과 이범석의 관계 ‘한국군은 굶주림을 초래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사주된 집단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서울발 3월 14일】 남한의 군대는 남한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공산게릴라에 대한 춘계공세를 시작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어제 군대 지휘관들에게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명령하에 촌락에서 식량을 빼앗고 마을을 불태우는 반도들을 사로잡거나 제거하라고 명령하였다. 동시에 이 대통령은 수천명의 폭도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기 위하여 남한에서 50마일 떨어져 있는 폐...
(50) 좌우대립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제주여성들 부녀동맹의 조직과 활동 ‘전일에 이어 9일 상오 10시 고진희(高眞姬)씨에 대한 3․1사건 포고령 2호, 군정법령 19호 위반죄의 판결언도가 심리원 법정에서 있었는데 최(崔)주심으로부터 체형 5개월, 벌금 2,000원(단, 3년 집행유예)형 언도가 있었다. 익(翌) 10일 오전 11시 방청 10여명의 한산한 심리원 법정에서 김영호 재판관 주심으로 진해생(秦亥生) 피고에 대해서 우선 사실심리로 들어가 주로 무허가 3회에 긍(亘)한 집회와 1회의 무허가 시위에 관한 청취서의 심리가 ...
(49) 제주4·3 연루자들이 주동한 목포형무소 탈옥사건형무소마다 집단탈옥사건 ‘야, 이 빨갱이 새끼들아/ 지금부터 내 말을 명심해서 잘 들어라/ 나는 너희들을 육지 형무소까지 압송할 책임자다/ 너희들은 국방경비법 제32조 제33조 위반으로/ 평생을 감방에서 썩을 것이다./ 중간에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수상한 짓을 하면/ 가차 없이 즉결처분할 것이다/ 아니 저 바다에 산 채로 던져버리겠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의 길로 향하는 배를 타게 되었네/ 배의 간판 아래 물칸에 쓰레기처럼 처박혀진 채// 구토와 설사와 멀미는 차라리 우리가...
(48) ‘5·5수뇌회의’를 이끈 제주도 군정관 맨스필드 제주, 미군정 실시되다 ‘이유는 없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적막이 오듯이/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 같기도 한 것이니// 이유는 없다/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
(47) 함덕해수욕장과 서우봉은 바로 학살터 ‘榮辱의 세월’을 견딘 마을주민들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3·1만세운동은 조천리를 시발로 함덕·신촌·신흥리로 확대되었다. 3차 시위는 3월 23일 함덕리에서 일어났다. 이 시위는 검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조천오일장터에서 백응선(白膺善)· 김년배(金年培)· 이문천(李文千) 등에 의해 주도되었다. 특히 이문천은 약 100명의 시위대를 지휘하여 함덕리로 행진했다. 함덕리에서는 청년들과 주민들이 합세를 하며 시위대가 800명까지 늘어나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시위대는 함덕국민...
(46)진압부대 소대장에서 주월한국군사령부 총사령관이 된 채명신 채명신은 누구인가?‘총사령부 특명 제38호 (1948년 3월 29일) 통위부/ 조선경비대 총사령부/조선 서울 특명 제38호/ 1948년 3월 29일/ 1. 하기명 장교의 조선경비대사령부로부터 전속지명을 포고함. 1948년 4월 16일 유효.(중략)/ 제주도 제9연대로/ 소위 김영직(金泳禝) 10811/ 소위 채명신(蔡命新) 10826/ 소위 조병홍(趙秉洪) 10848/ 소위 박노구(朴魯球) 10867/ 소위 김낙헌(金洛憲) 10887/ 소위 김준교(金俊敎) 109...
(45)해방공간에서 제주사회를 뒤흔든 인민해방군인민해방군, 항전을 시작하다 ‘제주의 인민위원회는 건준(建準) 이래 양심적인 반일제 투쟁의 선봉이었던 지도층으로써 구성되어 있으며, 최근에 분립된 한독(韓獨), 독촉국민회(獨促國民會) 등의 우익단체와도 격렬한 대립이 없이 무난히 자주적으로 도내를 지도하고 있다’ -『東亞日報』 1946년 12월 21일 “제주도는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완전한 인민위원회의 지배를 보여주었다. (중략) 1946년에 제주도인민위원회가 여전히 섬을 지배했음을 시사하는 여러 건의 보고가 있었다” -한...
(44) 전쟁경험 많은 제주지구사령관 로스웰 브라운 4·3항쟁 진압은 미군장교가 지휘 ‘제주4·3 당시 일부 미군 장교들이 사태 진압에 나선 한국 군·경을 직접 지휘했다는 증언이 당시 제주도에서 근무했던 미 고문관들한테서 나왔다. 지금까지 제주4·3 진압에 미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국내 생존자가 증언한 적은 있으나 제주도에서 근무했던 당시 미군 장교가 증언하기는 처음이다. 4·3이 발생한 1948년 6월과 9월 사이에 국방경비대 제11연대와 제9연대 고문관으로 두차례 근무했던 찰스 웨슬로스키(79·당시 중위)는 최근 미국 플로...
(43) 좌우대립으로 혼란에 빠진 도내 중등학교 해방공간, 좌우 학생운동의 대립‘친애하는 동포여, 우리들은 지금까지 온갖 모순된 환경 속에서 부자연한 경제혼란을 물리치고 오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정의와 자유를 사랑하고 암흑세계에서 탈출하지 못한 우리민족의 계몽투사가 되기 위한 학도이었었다. 연(然)이나 해방이란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이란 것은 일제시대와 무엇이 다르며 무엇이 해방이요? 특권권력은 날이 갈수록 학원의 연구와 발표의 자유란 것은 꿈꾸지도 못할 견지에 도달함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금반 3․1기념행사를 돌아보면...
김관후의 4·3칼럼>(42)치안국장을 역임하고 육군헌병대장으로 전역한 홍순봉 -홍순봉은 누구인가?‘제9경찰청(제주도)장 김봉호(金鳳昊)씨는 5일 부로 사임하고 그 후임에는 공안과장 홍순봉(洪淳鳳)씨가 임명되었다 한다.’-조선일보 1948년 10월 6일‘육본 특별명령 제131호(1949년 6월 29일) 국방부장관 신성모/ 1. 이익흥(李益興) 15111 임 육군 헌병 소령/ 홍순봉(洪淳鳳) 15112 임 육군 헌병 소령/ 안익조 15113 임 육군 헌병 소령/ 김정채 15114 임 육군 헌병 대위/ 김홍걸 15115 임 육군 헌...
(41) 조선공산당 재건에 노력하다 검거된 김정노 김정노는 누구인가‘제주공립보통학교(濟州公立普通學校) 맹휴사건으로 동교생 9명이 검속되어 이틀 동안이나 취조를 받고 8명만 석방되었다함은 별항 보도한 바와 같거니와 지난 22일 오후 2시에 제주경찰서(濟州警察署)에서는 죽삼(竹森) 경부가 경관 두 명과 함께 제주합동회관(濟州合同會館)에서 장시간 동안 문서를 조사하고 다수문서를 가져가는 동시에 제주청년회간부(濟州靑年會幹部) 김정노(金正魯) 윤석원(尹錫元) 양씨와 샛별소년회 지도자 송택원(宋澤元)씨를 인치하여 밤이 깊도록 취조하다가 ...
(40) 친일행위 이어 제주도감찰청장에 취임한 강인수 강인수는 누구인가?‘【서울 21일 발 합동】경무부에서는 제주도감찰청장 신우균씨를 경무부로 소환함에 따라 20일 경찰학교 감찰관 강인수(姜仁秀)씨를 동 청장 대리로 임명하였는데 제주도의 경비를 강화하기 위하여 충남, 충북 경찰청 관내에서 각 50명의 경찰을 21일 파견하였다 한다.’-제주신보 1947년 2월 20일강인수(姜仁秀 ~1948)는 전라남도 태생이다. 경찰권을 장악한 통감부는 1907년 군대해산을 계기로 일어난 마지막 의병 항쟁 중 호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병을 진압...
(39) 제2대 내무장관을 거쳐 국방장관을 역임한 신성모신성모는 누구인가 ‘제주도를 비롯하여 각 지방을 순시하고 돌아온 신성모 내무장관은 17일 제주도 사태와 지방행정 관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주도사태 : “제주도에 간 것은 경찰과 국군보다도 일반주민의 사상(死傷)이 많다는 정보를 보고 대통령을 대신하여 간 것이었다. 해방 후 만 3년간에 걸쳐 황폐된 제주도 도민의 실정이란 말할 수 없이 험한 것이었다. 현재 무장하고 있는 공산당원은 100명 내지 400명이라고 추산되는데 그들은 한라산 산중에 뚫어 논 16개 ...
(38) 한국군 총사령관 고문 제임스 하우스만 ‘한국통’ 제임스 하우스만‘조선인민에게 고함/....(중략)....일본천황의 명령에 의하여 나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중략),...1945년 9월 9일 태평양방면 미국육군부대 총사령관 미육군대장 더글라스 맥아더.’-맥아더 포고 제1호 ‘1949년 2월 21일/ 경비대 조사업무 개시/ 발신: 미군사고문단장/ 수신: 주한미군 사령관/ 미군사고문단 주간활동/ 작전: 제주도: 매우 적은 횟수의 활동보고. 게릴라에 대한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