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밤을 헤쳐 나오며 글썽이던 눈물이다풀잎의 구전에 의하면한때 공기층을 떠도는 바람이었다가투명한 액체로 진화했단다그 몸뚱이 같다면세상은 빛으로 가득하겠지만그냥 뜻 없이 맑은 거라고그것은 금방 사라질 한 때라고또 덧없음에 비유하지 마라여린 풀잎들을 다독거리며치열하게 살아온손가락 깨물어 쓴 풀잎 위 하얀 혈서-이윤승 전문- 이슬이 새벽 한 때 그 영롱함을 위하여 견디어 온 바람의 시간은 얼마였던가. 구전되던 이야기가 한 곳에 머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신의 유전자를 바꾸어 왔던가.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서도 정작 남들에게
빙점을 치르고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저들부채꼴 탑을 쌓는 나목들 관습에 따라제몫의 하늘을 섬기는 잔뼈들이 보인다한 곳에 이르기 위해 길 아홉을 버려야 하는뼈뿐인 잡목 숲은 그대 영혼의 사원이었네 선채로 참선을 마친 팔다리가 눈부셔눈을 뜨지 않았어도 이월은 참 귀가 밝아겨울과 봄 사이 뽀얀 빛이 감도는,“바스락” 은밀한 처소에 한 쌍 새를 앉힌다. -고정국 [이월의 숲] 전문-쌓인 눈이 녹으려면 아직은 먼 이월, 군더더기거나, 혹은 달콤한 그 무엇, 그런 것들을 뺀 삶의 모습으로 겨울나무들이 눈밭에 발을 담그고 서 있다. 보는 것만으
내 스마트폰 여는 길은 새발자국 쫓는 걸까몽골 건너 조선족, 태국 베트남 필리핀까지펼쳐든 지도를 따라 새을乙자 그려본다그렇게 그려보는 설날 아침 우리 이모지구촌 촌장이라며 너스레 세배를 받네통역관 없어도 좋을 다섯 나라 며느리들빙떡을 둘둘 말다 옆구리 툭 터졌네그것을 테이프로 살짝 붙인 몽골 며느리차례상 조상님네도 얼핏 한 눈 팔아줄까날아라 우리 이모 설빔 훌훌 나비처럼청주 한 잔에도 빙빙 도는 사돈 나라‘고시레’ 지붕을 향해 흩뿌린다 한 모금 안부- 송인영, [설날아침] 전문-이모의 설날 아침은 사돈들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로 시작
부유富裕나부유浮游보다바닥을신뢰한 나는가진 건 쥐뿔도 없는 바람 속을 떠돌다깡그리내려놓았다,남들이 밟는 자리아파트별 줄 세우는 세상 그쯤 다다르자먼 하늘 기웃대던 꿈들 그만 접고 누워죄 없는 땅바닥들에 송곳처럼 파고들었다허나 거긴실핏줄 참 우련한 삶이 뒹굴고비좁은 가난이 뭉텅, 갈빛으로 여위고바닥은서로 몸을 포개깊어지다따뜻했다-고은희 [바닥] 전문-내 발 밑에 천길 낭떠러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허공을 부유浮游 한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 몸을 싣고, 햇빛이 비치면 따뜻한 공기의 힘을 빌어 몸을 띄운다. 그 높이에서 아래로만 내려다보는
첫서리 내린 마당 누구의 발작처럼어디서 날아왔나 등 붉은 감잎 한 장고향집 노을이 되어 사뿐히 누워있네 지우고 고쳐 쓰다 확 불 지른 종장같이와와와 소리치면 금방 뚝 떨어질 듯우주 속 소행성 하나 발그라니 물이 든다. 굽 높은 그릇 위에 향기 놓은 전신 공양가만히 귀 기울면 실핏줄 삭는 소리말갛게 고인 저 투명 문득 훔쳐 갖고 싶다-유재영 [홍시를 두고] 전문-깊은 것들이 좋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밑바닥을 찾아 몸을 거꾸로 세우고 자맥질 쳐 보는 것,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태까지 버티다 순간 솟구
그가나를 보았을 때나는꽃을 향해 있고내가 그를 보았을 때그는꽃을 향해 있었지사랑도타이밍이란다상사화가 피었다김선 [사랑도 타이밍] -전문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면 나와 만났던 그 무수한 사람들과는 전생에 어느 만큼의 관계를 가졌던 것일까. 아무런 감정도, 미련도, 기억조차 남기지 않고 헤어지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전생에 나는 무엇이었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옷깃만을 스치면서 지나가는 것일까. 바람이었을까. 혹, 물이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나의 감정에 파문을 일으켰던 사람들을
가을볕에 익으면 상처도 떨어질까속에서 좌표 없이 흔들리는 그대 체취세상사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모를 일믿으려면 다 믿을 걸주려면 다 내줄 걸바람에 속사포로 부서지는 넋두리세상에 우리 사랑이 그뿐이더냐,빌어먹을늦가을 찬 서리에 나머지로 서 있는담쟁이 한 줄기가 별빛 향해 뻗는 손애인아나는 중독이다하늘인들 못 갈까- 이명숙 [파이 π] 전문단순함을 사랑한 적이 있다. 쨍한 햇빛에 제 본색을 드러내는 빨강 노랑 꽃들, 경계선 확실하게 그은 바다와 하늘, 단호하게 돌아선 그 사람의 뒷모습도 내가 사랑하는 한 부분이었던 때. 소나기 갑자기 내
아무래도 아버지가 한 번 다녀가신 거다한 생애 원망들을 누가 와서 지웠을까몇 방울 꼬순 기억만 뒤적뒤적 볶고 있다헌 냄비 바닥에서 까맣게 탄 날들도털고 또 떨어내며 남은 깨를 볶으시네그리운 노을 언저리 또 한 해가 저무네- 강영미 전문-예술가의 의무에 대해서 생각한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독창성이라거나 전위적이라거나, 혹은 ‘낯설게 하기’라는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다. 문학 작품을 읽는 목적 중 하나는 작품 속에 구현된 세계의 간접 경험이다. 그런 경험이 독자들
2017년 3월부터 약 1년여간 [제주의소리]에 '살며詩 한 편'을 연재했던 김연미 시인이 돌아왔습니다. '살며詩 한 편'은 김 시인이 직접 고른 시를 만나고, 여기에 담긴 통찰을 일상의 언어로 접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코너입니다. 시와 사진, 김 시인의 글이 어우러지는 '살며詩 한 편'은 2주에 한 번 토요일에 찾아옵니다. 김 시인의 글로 여러분의 주말이 더 풍성해지기를 기원합니다. [편집자 주]소도시 밭이던 땅에 세워진 팻말 하나‘출입금지 경작금지 아파트 짓습니다’어쩌나, 배추흰나비 밭담 훌쩍 넘는다바뀐 세상 못 읽는 건 나
2017년 3월부터 약 1년여간 [제주의소리]에 '살며詩 한 편'을 연재했던 김연미 시인이 돌아왔습니다. '살며詩 한 편'은 김 시인이 직접 고른 시를 만나고, 여기에 담긴 통찰을 일상의 언어로 접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코너입니다. 시와 사진, 김 시인의 글이 어우러지는 '살며詩 한 편'은 2주에 한 번 토요일에 찾아옵니다. 김 시인의 글로 여러분의 주말이 더 풍성해지기를 기원합니다. [편집자 주]간절한 게 참 많은 세상에 산다, 우린곧추선 기도 위에 돌멩이 얹으려다아니야, 손을 거둔다 욕심 하나 버린다-김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