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상호에 이름을 넣는 집은 대체 어떤 곳일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런 곳은 대개 그 이름이란 사장 본인 이름이나 자식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상호에 이름을 넣게 되면 웬만한 강심장이나 음식에 자신 있지 않고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왜냐. 음식 맛이 없다거나 무언가 불만이 있는 경우에 그 이름에 쏟아지는 후환에 어디 견뎌낼 재
요즘 대학생들은 MT혹은 모꼬지를 가서 무엇을 하며 노는지 모르겠다.아니면 그런 것을 가는지 조차 잘 모르겠다. 허나 아무리 취업이 힘들고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입학 때부터 갖는다고 해도 그런 것이 아예 없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종종 TV광고에 MT 혹은 모꼬지를 소재로 나오는 내용도 있었으니까.그러면 나의 대학시절 MT라 불
지금이야 지천에 깔린 것이 양념이고 요리비법이라지만 내 어릴 적 제주음식엔 그런 것이 거의 없었다. 물론 어려운 시절이라 양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유도 있었겠지만...나만 해도 고등학교 때 육지로 시집간 누나가 시댁에서 배웠다며, 젓갈을 푸짐하게 넣고 담근 김치를 도통 먹지 못했던 기억이 있으니까...양념을 가급적 많이 사용하지 않고 단순한 조리방법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불현듯 외롭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 올 때 어떻게 하는지.혹은 오래된 친구와 만나 커가면서 조금씩 분실해 간 옛날 꿈들을 되새기고 싶을 땐 어디서 만나고 싶은지.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아니다. 괜히 길게 얘기할 것 없이 편하고 맛있게 한 그릇 뚝딱 해결하고자 할 때 바로 생각나는 음식은? 그렇다. 단연코 다들 순대국밥을 떠
선생님. 이제 2009년이고, 그래서 제 나이 벌써 마흔 셋이네요.어릴 적엔 마흔이란, 뒷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지긋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나이라 어림짐작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 생각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을 살면서 그냥 깨닫게 되네요. 선생님도 가끔 그런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언젠가 같이 소주 마시면서 저의 이런 말에 선생님이 맞장구치시면서&hell
강정의 마을풍경은 제주도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 없이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마을로 들어서니 나무 가지마다 이제 수확을 기다리는 샛노란 감귤들이 탐스럽게 달려 있습니다. 얕은 지붕을 하고 담벼락을 서로 맞댄 이웃집과 먹을 것을 서로 나누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괜시리 정겨워지는 그런 곳입니다. ▲ 강동균 회장님 단식을 끝낸 후라 많이 야위었습니다. 제가
전복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식재료라고 하는 것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예전부터 제주도 특산물로 임금께 진상을 했다고 하는데,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때에 상하지 않고 어떻게 수랏상에 올랐을까 뜬금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 전복 전복을 깨끗이 씻어서 껍질에서 떼어냅니다. 게웃도 따로 떼어냅니다. ⓒ 강충민 전복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날 것으로
우리집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보다, 만들어 먹이는 즐거움이 더 큰 제가 식구들을 길들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재료로 만들었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지 않아도 되고, 외식비 지출이 없으니 당연히 가계절약도 되고요. 그래서 특별한 날이라고 해도 미리 재료를 구입했다가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이 일상화 되었습
어제(8월15일)저녁 민박집 마루에 앉아 소주를 늦게까지 꽤 마셨다.평소 같으면 어제 저녁의 술 마신 속도라면 금방 취기가 올랐을 텐데 밖에 비오는 소리를 들으며, 얘기를 나누며 마시는 술이라 달기만 했다. 꽤 마신 술인데도 기분 좋게 알딸딸하기만 했다.여자 둘은 미리 잠들고 추자에서의 첫 밤을 그냥 잠들기 아쉬운 두 명의 남자는 비가 갠 틈을 타 추자항
밤잠을 설쳤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 이틀 밤을 잔다는 것은 분명 여행임에 틀림없고 그렇다면 여행에 대한 막연한 설레임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일기예보에는 광복절부터 일요일까지 제주는 계속 비소식이었다.아무리 요즘 일기예보가 중계수준이기는 하더라도 요 며칠간 계속 내리는 빗방울이 연휴기간동안 내릴 비의 양을 미리 짐작할 수도 있기에 과연 이 짧은 여행이 성사될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저희 집에서는 밭을 하나 샀습니다.사실 밭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개간해서 귤나무를 심을 목적으로 촐왓(풀밭의 제주사투리)을 산 것이었지요.부모님은 매일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셨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은 정말 밭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 봄 귤나무묘목을 사서 간격을 맞추어서 심었고 정성껏 그 나무들을
▲ 제주도 제삿상 차림 저희 집 제삿상 차림입니다. 제주도에도 지역마다 상차림 풍습이 많이 다릅니다. 이를테면 옥돔머리 방향, 등부분의 위치가 다르던가 하는 것은 많이 있습니다. ⓒ 강충민 제가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제주에서 하얀 쌀밥을 먹는 것, 그것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 둘인 제 기억 속 하얀 쌀밥은 제사나 명절, 혹은
어제(3월16일)는 봄볕 따사로운 일요일이었습니다. 우리 부부 워낙에 게을러터져 벼르고 별렀던 겨울옷 정리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더 게으른 저는 각시의 지시에 따라 옷 정리를 하다 묘수를 생각해 냈습니다. 저는 닭개장 끓이는 것으로 분담하자고요. 각시도 쾌히 승낙을 하더군요. 옷장 안을 일일이 뒤지며 정리하는 것보다는 주방에서 삶고 칼질하는 것이 저에겐
▲ 신구간 주소이전 안내문 신구간에 이사가 집중되나 보니 우체국앞에도 이렇게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한동안 반송되는 우편물이 꽤 많겠지요. ⓒ 강충민 “아, 정말 집구하기 힘들더라고요. '신구간'이란 게 있다는 건 제주 와서 처음 알았어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지난 달 새로 이사 온 아저씨가 한
어릴 적 어머니는 겨울 따뜻한 날을 골라 이불호청을 뜯어냈습니다. 속살과 피부를 분리하듯 솜이불에서 호청을 뜯어내는 일은 어린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놀이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솜이불과 호청이 꼭꼭 여며지도록 기웠던 실을 군데군데 가위로 잘라놓고 한꺼번에 쫘악 찢듯이 벗기면 묘한 쾌감도 들었습니다. ▲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이제 바늘귀에
"아빠! 누드김밥 만들 수 있어?"지난 수요일(24일) 원재가 저녁 식사 후 혼자 샤워를 하고 와서 저에게 물었습니다."응 김에 밥 펼친 걸 뒤집어서 말면 되지… 왜 누드김밥으로 만들어 줄까?"그러고 보니 아들 원재가 완전 누드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 했습니다. "지금 니가 누드야"새벽
저는 고등학교 시절 '빵돌이'었습니다. 빵을 판다고 붙여진 별명이었는데 비단 빵만을 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매점에서 식권과 빵, 과자 ,아이스크림등을 파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일종의 아르바이트였던 셈이지요.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올해 제 나이 마흔하나, 그러고 보니 벌써 23년 전 일입니다.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리 학교에는 학
▲ 어머니 병원가는 날. 어머니 병원가는 날을 달력에 표시해 둡니다. 하루에 두 차례 오전엔 채혈, 오후엔 진료를 받고 약을 한 달치 받아옵니다. ⓒ 강충민 나이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 잔병치레 때문에 걱정이 참 많습니다. '잔병'자체야 나이든 노인네의 일상이려니 해서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데, 우리 어머니는 도통 당신의 상태에 대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빠! 명절 우울증이 뭐야?"딸 지운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내고 다시 집에 돌아오니 원재가 저에게 묻습니다.아침에 배달된 신문에서 그 단어를 봤답니다.각시는 제가 지운이를 데리고 나간 사이 서둘러 출근을 하고 없었고 원재는 저와 같이 학교까지 걸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중 이었습니다.저는 서둘러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원재의 물음에
제주시 연동배드민턴 클럽(회장 김석종)에서는 지난 일요일(24일) 월례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클럽회원들만의 자체 대회여서 배드민턴의 구력과 실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같이 즐기는 취지에서 마련한 행사였습니다. ▲ 회원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 강충민 이런 월례대회 행사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연동클럽에서는 매주 네 번째 토요일 북제주군 함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