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귤 따는 날입니다. 귤을 따기 전에 일꾼들에게 국수를 먹여야 합니다. 나이 들어 무거운 거 하나 들지 못하는 어머니는 국수를 삶고 씻는 게 걱정입니다. 아침에 삶자고 해도 걱정이 되어 주무시지 못합니다. 그 걱정 덜어 드리자면 어차피 밤에 삶아 드려야만 합니다. 김치찌개를 얹혀놓고 사진작업을 하고 있자니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지금 삶아놓고 일찍 자
산에 곰취꽃 지고 나면 해안가엔 털머위 피기 시작합니다. 비록 인위적으로 꾸며진 길이긴 하지만 지금 제주의 거리는 황홀 그 자체입니다. 길가 바위틈에 털머위 노랗게, 인도블렄을 따라 다소곳이 앉은 해국은 가는 이 오는 이에게 정겨운 인사를 건넵니다. 그야말로 진풍경입니다.봄나물인 머위와 비슷한 잎 모양을 가졌지만, 꽃의 모
진득찰과 털진득찰은 꽃을 비롯한 전초가 비슷한데, 진득찰은 이름 그대로 털이 없거나 누운 털이 아주 드물게 있으며, 털진득찰은 전초에 흰털이 빽빽하게 나 있습니다. 제주의 가을 오름 어디에든 가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질병에 약재로 사용되는 유용한 식물자원이기도 하지요. 한방에서 진득찰은 전초를 희첨, 털진득찰은 전초를 모희첨이라 하여 각종 중요한
날마다 갯쑥부쟁이는 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서울의 그 청년, 행여 쑥부쟁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음인지도 모릅니다. 해맑게 웃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측은한 표정. 왜일까? 가까이 다가가서 눈빛으로 물어보지만 말똥거리기만 할 뿐 갯쑥부쟁이는 끝내 속내를 밝히지 않습니다. 쑥을 캐러 다니던 불쟁이(대
평화로를 달렸습니다.고속도로에 설치해 놓은 화단에 털머위가 피었습니다. 좋은 날, 햇살을 가득 안은 털머위꽃 등 뒤가 눈이 부셨습니다. ' 털머위 제법 피었네!''귀엽게 피었네!''진짜 예쁘네!''우리집 털머위는 언제 필 거냐고!'혼자 감탄하고 궁시렁거려봅니다. 참 행복합니다. 들판은 온통 억새 세상, 신이 난 억새무리
월을 넘어가다 뒤처진 꼬리 스르르 마저 통과하는 토요일, 행여 갯쑥부쟁이 피었을까 섭지코지를 찾았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음인지 처음 돋아난 배냇니이듯 몇 송이만 드문드문 피어서는 옹알이 하고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금불초 무리지어 피었고, 섭지코지 전체를 점령한 무릇은 아예 마을을 이뤘습니다다. 하지만, 독선을 부리지도 않았으며 모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엘 다녀왔습니다. 1957년 부여에서 나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작업을 하던 중, 이곳에 매료되어 1985년 아예 정착했습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구하여 초석을 다질 무렵 오십견인가 보다고 친구들에게 우스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길어야 3년을 산다는 진단…. 루게릭…. 점점
구태여 꽃을 피우지 않더라도 서러울 일 하나 없습니다.꽃을 피운다 한들 이보다 더 고울 수 있을까요? 자주사철란입니다.일주일치의 잠을 한꺼번에 모아뒀다가 일요일에 해결하는 나로선 피곤을 이기지 못해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간밤 당직이었던 남편이 퇴근하고 와선 산에 안 갈 거냐고 부릅니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으랴 화들짝 일어나선 챙겼
야고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이다. 무조건 억새를 찾아간다는 게 하필이면 쓰레기처리장 옆이다. 억새포기 하나하나 제치다 보니 어렸을 때도 가끔은 보았다 싶은 요상스런 이 녀석. 마치도 지나던 들쥐가 억새에 포섭당한 모습이다. 한둘이 아니다. 억새의 날카로운 잎은 그래도 하늘거린다. 어렸을 적엔, 소가 먹을 건초가 없을 즈음 들에 나가
아마도 난 전생에 남자였나 보다, 때가 되면 이들의 부름에 안달이 나 못 견딜 지경이니 말이다. 지난 토요일, 수정란풀을 찾아 나섰다. 몇 해 전에 갔던 곳이라 여기며 열심히 찾았으나, 조릿대만 무성할 뿐 수정란풀은 만날 수 없었다. 알고 봤더니 엉뚱한 곳이었다. 일요일, 다행스럽게도 남편의 휴가 기간이다. 휴일이라 있는 늑장 다 부
오래전, 산길을 가다 노랗게 피어 있는 곰취를 보며 '털머위다!'라고 외쳤던 기억이 선하다.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곰취와 털머위를 아는 사람이라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터인데도 난 그러지 못했다. 곰취를 몰랐던 그때의 내 눈엔, 꽃의 색깔도 이파리의 모습도 영락없는 털머위였던 것이다. 곰취와 털머위는 어딘가 분명히 비슷한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무슨 꽃잎이 피어 있을까 밤이 오면은 해가 지면은 꽃은 외로워 울지 않을까 차례를 마치고 산으로 가야지 했던 계획은 내리는 빗물에 녹아 흘러가고 말았다. 어둡기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래도 미련이 남아 천백도로로 달리는 길이다. 지난주에 주렁주렁 열렸던 다래는 익어서 떨어졌는지 몇 알 없었다. 보랏빛 휘파람 소리가 4분의
8월의 마지막 토요일, 미령씨와 그의 동서 그리고 아이들이랑 어리목에 갔다. 널따란 공그리 주차장에 또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현장을 바라보자니 때아닌 물난리가 퍼뜩 뇌리를 스쳐갔다. 차라리 ‘송이 흙을 깔아준다면 지하로 물도 흡수되고 좋잖을까?’ 하는 아쉬움의 발만 동동 가슴으로 굴렸다. 연못가에 자리 잡고 앉
울적한 마음 달래려고♬ 산길로 접어 섰다가♪~ 나는 정말 반했다오 정말 멋있는 산아가씨♩~구두도 못 신고요♬ 의복은 낡았어도♪~ 맑고 밝은 그 눈동자 정말 멋있는 산아가씨♩~생각지도 않았던 날 생각지도 않았던 그 만남은 퍼뜩 이 노래를 떠올리게 했으며 나를 폴짝폴짝 뛰게 했다.야고를 만난다는 목적 하나를 달성하고 다시 찾은 습지대에서 몰봉선 무리를 만나고
제주의 억새에 기생하는 식물 야고. 난 언제부터인가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이를 만나서 불륜을 저질러야만 하는 관계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남편은 행여 그 불륜의 시기를 놓칠까, 이제 지고 있을 거라 보내는 염려에 난 안절부절못했다. 조금은 미치광이(?)다운 나의 행위를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 남편. 나와 휴일을 맞추려는 마음과 달리 상황은 늘
잔뜩 화가 났지만 꾹 참았습니다. 터트려 봐야 좋을 거 하나 없다는 게 지금껏 살아오며 겪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진리 실천이란 게 알면서도 영 쉽지가 않습니다. 퇴근도 안 하고 책만 읽었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란 아동문학인데 쓰레기 처리장에 사는 아이들과 고다니 선생님, 아다치 선생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말 정말 가슴 따뜻해지는
사진기술에 관하여는 전혀 지식이 없는 나로서 이 작은 식물의 얼굴을 담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이미 노안에 접어든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셔터를 누르고 컴퓨터에 올리고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드러난다. 이네들의 숨겨진 그 모습이 하도 고와 멈출래야 멈출 수 없는 나의 행진(?)
아침엔 네 발, 점심엔 두 발, 저녁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있는데 사람이라지요. 그렇다면, 네발짐승은 어떨까요? 물론, 아침 점심 저녁 변함없이 네발이겠지요. 그러나 호랑이는 아니었나 봅니다. 늙어 기력을 다한 호랑이에게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팡이가 필요했던가 봅니다. 아주 옛날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말이어요. 걷기가 어려
토끼섬은, 제주시 하도리 굴동포구 150m 지점에 있는 난도는 천연기념물 제182-3호로 지정된 문주란 자생지이다. 나지막한 오름형의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난도의 면적은 960평. 원래는 난들여(바깥쪽의 여)라 불렸는데 1927년에 주민 윤석후 氏가 토끼를 이곳에 방사한 뒤로는 '토끼섬'으로도 불린다고도 하며, 문주란이 필 때면 마치도 토끼가 뛰어노는 모
난, 식물의 이름을 익히는데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늘 보아오던 꽃, 그래서 자연스레 이름을 익히게 되고 사진으로 혹은 그림으로만 접하며 그 모양을 익히다 어느 날 발견하고는 '이게 그 꽃이구나' 반가울 뿐입니다. 해녀콩은, 재작년에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어느 섬에서 발견하고는 '응, 바닷가에 있으며 이파리가 꼭 칡을 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