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이층에서 본 거리 / 다섯손가락▲ Golden Hit / 다섯손가락 (1992)어렸을 때는, 이층을 동경했다. 단층집에 살면서 이층집에 사는 부잣집 아이가 부러웠다. 교실은 2층이 좋았다. 창밖 풍경이 좋았다. 2층은, 현실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고층 빌딩 제한법이 있었던 내가 살던 도시에는 높은 건물이 흔치 않아서 2층에만 올라가도 동네가 다 보일 정도였다. ‘다섯손가락’의 이두헌은 노래한다.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 적 내 친구는 외면을 하고, 길거리 약국에서 담배를 팔듯 세상은 ...
(57) 낮잠 / 코스모스 사운드▲ 서정적 농담 / 코스모스 사운드 (2012)‘코스모스 사운드’는 처음엔 윤석(보컬, 기타) 혼자 시작했다가 지금은 병우(기타), 경(퍼커션, 코러스)과 함께 사운드를 내고 있다. 2011년에 ‘스무살’이라는 EP를 발매했다. 타이틀곡 ‘스무살’은 그 나이의 정서를 토로한다. ‘일몰 다섯 시 반에 눈을 감아 좀 울고 못 믿겠지만 한다고 한’ 그 나이의 일기 같다. 자신이 어떤 음악을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우연에 기대는 것을 좋아한다는 윤석은 사람들이 ‘코스모스 사운드’를 포크라고 규정하자 순...
(56) See Emily Play / Pink Floyd ▲ Relics / Pink Floyd (1971)‘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김지희의 소설 제목이다. 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소설은 이미지로 점철된 소설이다. 서사성이 약하고 서정성이 짙다. 한유주의 소설 ‘달로’가 있긴 했지만 느낌만으로 쓴 듯한 소설이 주는 힘은 새로우면서 강했다. ‘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는 한유주가 말하는 ‘지옥은 어디일까’ 같은 서정의 지옥을 보여준다. 건조하고 까끌까끌하다. 소설에도 맛이 있다면 이 작품의 맛은 텁텁한 무 맛 같...
앨범 자켓을 보면, 우광훈의 소설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 생활'이 떠오른다. 다소 허무맹랑한 진실 같은 것. 자칭 무명 소설가인 우광훈은 뜬금없이 2011년에 신춘문예 시로 재등단을 한다. 그의 유쾌한 소설을 생각하면 미소 짓게 만드는 유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디의 사람들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실험'을 계속 한다. 노이즈와 우울의 못을 못으로 판 ‘못’의 이이언이 솔로 음반을 낸 그해 겨울의 끝. 팬들은 이이언에 열광해 무표정에서 입술이 조금 실룩거렸다. 잉여의 시대에 귀는 이이언보다 ‘바비빌’로 자꾸 귀를 기울이...
(55) Rebirth Edge / kazuna hirose with ECHO▲ 19’s trip / kazuna hirose with ECHO (2013)마츠모토에서 도래인 축제를 한다고 해서 따라갔다. 도래인의 후손은 찾을 수 없었지만, 재일동포 후손들이 우리를 반겨 맞이해 주었다. 한국인 유학생이 통역 봉사를 맡아줬다. 넓게 생각하면, 재일동포나 유학생 모두 도래인 아닌가. 교류를 위해 간 것 또한 도래인과 같다. 숙소에서 만난 일본인 관리인은 한국에서 온 시인이라고 하자 반가워하면서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왔다. 일본어...
(54) 두꺼비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입술이 달빛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2010).‘동그라미 땡 동그라미 땡 완두콩이 싹이 나서 화분이 한 개 화분이 두 개 6월 또 6일에 유에프오가 이쪽으로 저쪽으로 떨어지네 작은 연못 두개가 생겼습니다 연못위에 조각배를 띄어봤더니 저 하늘에 초승달이 떠올랐네요 수염을 그려주면 도라에몽’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노트에 그림을 그린다. 문득 어렸을 때 불렀던 ‘아침 먹고 땡’ 노래가 생각난다. 구전이라서 지역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그 노래를 부르면 누구나 해...
(53) 꼬마 저글러를 위한 왈츠 / 캐비넷 싱얼롱즈▲ Little Fanfare / 캐비넷 싱얼로즈 (2006)제주도에 이주한 한 영화감독의 시나리오 초고를 보게 되었다. 시인이 주인공이라며 보여준 시나리오를 읽다가 한 장면에서 영상을 눈앞에 보는 듯 환하게 켜지는 느낌을 받았다. 크리스피 크림 도넛 가게가 눈앞에 나타난 장면인데 지문에 ‘비현실적으로 환한’이라는 표현이 내 마음의 불을 켰다. 이것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 시나리오에서 표현된 ‘슬픈 엉덩이’ 같은 강한 느낌을 준다. 영상은 현실보다 과잉되거나 왜곡되...
(52) 강의 노래 / 조동진▲ 강의 노래-penicillin(2015)도시에서 살다가 귀농을 해 시골에 새로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젊은 부부. 아기가 생기지 않아 점집에 가니까 무당이 당장 이사를 하라 했다고 한다. 그 집에서 살면 평생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도시는 집값이 비싸고 귀농의 뜻도 있었기에 그들이 찾은 땅은 애월읍 상가리. 부부는 도망치듯 부랴부랴 이사를 했다. 조립식 건물이긴 하지만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니 초원의 집 느낌이 난다. 마당에는 잔디도 깔고 고기 굽는 도구도 마련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소박하고 ...
(51) Garota / Erlend Øye▲ LEGAO-Erlend Øye(2014)나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지도 어디쯤에서 한쪽 눈을 감고 이곳 장면을 저장해 간다 - 윤성택의 시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중에서여행자의 카메라는 당신이 없는 곳에서는 오지 밖에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여행자는 그곳에서 기타를 치거나 시를 쓴다. 앨런드 오여(Erlend Oye)는 ‘Kings Of Convenience’라는 돛단배를 타고 가다 기타로 만든 카누를 타고 여기까지 온 여행자이다. 사랑의 오독(Misread)을 밥 먹듯 하여...
(50) 청춘파도 / 치즈스테레오▲ 화성 로맨스-치즈스테레오(2010)음악은 여기에서 다른 어딘가로 간다. 걸어가든 자전거를 타든 궁극엔 그곳으로 간다. 모두 한 곳에서 만나 서로의 교통수단에 대해서 물으며 커피나 맥주를 마신다. 헤비메틀은 초음속 비행기, 얼터너티브 락은 시애틀 공항으로 달리는 낡은 폭스바겐, 브릿팝은 맨홀 뚜껑에 걸려 공중으로 뜨는 배기량 낮은 모터사이클, 사이키델릭은 마약 같은 달빛에 취하며 절정에 다다른 펠라티오 반쯤 열린 차창의 캐딜락, ‘버스커버스커’는 혜화동을 달리는 분홍빛 자전거, ‘브로콜리너마저...
(48) 오딧세이의 항해 / 김광진▲ 김광진 / 솔베이지(2002)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한 항해를 한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에 의해 동굴에 갇히기도 하고, 라이스트뤼고네스라는 식인 거인족을 만나 전우들을 잃기도 한다. 요정 키르케의 마술에 걸려들어 일행이 모두 돼지로 변하는 위기도 겪고, 포세이돈이 풍랑을 일으켜 난파를 당하기도 한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고향에 가야 하는데 지옥에 가기도 한다. 자청비가 서천꽃밭에 가는 길도 험난하다. 우리의 삶이 가시밭길이다. ...
(48) I Am The Man / Czars▲ Czars / Good bye (2005)올가는 러시아 마지막 짜르의 맏딸이다. 올가라는 이름은 푸시킨의 소설에서 따왔다. 그녀는 춤추는 것과 소설 읽기를 좋아했다. 고양이를 좋아해 그녀 옆에는 언제나 러시안블루 고양이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러시아의 상황을 알게 된 올가는 아버지가 암살당할까봐 두려워했다. 부모 몰래 돈을 기부하기도 했다. 열여섯 살에 루마니아 황태자와의 혼담이 오갔지만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며 응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모와 함께 간호원으로 ...
(47) 잠들지 않는 남도 / 3호선 버터플라이▲ 3호선 버터플라이/산 들 바다의 노래 (2014)마타요시 에이키의 오키나와 문학이 갖는 의의는 그의 소설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에 잘 나타난다. 피해자-가해자의 도식화가 아니라 조지라는 미군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영화 ‘지슬’의 인물 중에서 신병 ‘정길’은 학살자 김 상사를 죽인다. 1948년 8월 인민유격대장 김달삼이 해주에서 열린 인민대표자대회에 참가한 것은 토벌대가 비극의 소용돌이로 가속도를 붙이는 빌미가 되었다. 무장대를 잡겠다고 산에 숨어 있는 사람들과 ...
(46) 서라벌 호프 / 이아립▲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이아립(2013)이아립의 목소리는 처음 ‘스웨터’의 ‘별똥별’로 반짝였다. 그녀라는 음악이 건국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예쁜 가방 속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같았다. ‘우리 비 그치면 산책할까?’하며 ‘나나나’ 거리는 허밍은 미선나무 나뭇잎에 떨어진 빗방울이 되어 귓속에서 삼투압을 했다. 작은 섬나라 ‘스웨터’는 아주 두껍고 텁텁한 겨울 스웨터보다는 봄가을에 입을 수 있는 얇은 스웨터에 가깝다. 십 년이라는 시간을 미리 예견한 목소리는 영화 ‘버스...
(45)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 오석준▲ DREAM & LOVE / 오석준 (1988)우리에게 ‘내일이 찾아오면’으로 잘 알려진 오석준은 목소리가 친근하면서도 멀리 있는 듯하다. 그의 목소리는 중학교 때 까까머리 친구 목소리 같다. 별명은 깐돌이. 공부도 잘 하는데 기타도 잘 쳐서 얄미웠지만 좋았던 친구. ‘작은 돛배에 새하얀 나만의 새하얀 돛을 달고서’(‘꿈을 찾아서’) 우리는 꿈을 향해 항해를 하는 줄 알았는데 바다는 세월의 바다였다. 지금은 없어진 동양극장. 그곳에서 우리는 동시상영 영화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중학생...
(44) 네가 오던 밤 / 좋아서 하는 밴드 ▲ 우리가 계절이라면 / 좋아서 하는 밴드 (2013).소라로 만든 향초에 불을 켠다. 향기가 음악처럼 퍼진다. 누가 내게 그런데 선물한 것인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꽤 신경 써서 준 것 같은데 추정되는 몇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그것을 잊어버렸다고 하면 얼마나 서운할 것인가. 밤이니까 그래도 소라 향초가 생각난다. 소라의 후생은 불꽃으로 타오른다. 밤에 기대는 정도가 점점 심해질수록 늙고 있다는 증거일까. 밤이 되어야만 그나마 생각이 정리되고 음악에 취할 수 있다. 소란...
(43) 21세기 어떤 날 / 페퍼톤스▲ Beginner's Luck / 페퍼톤스 (2012)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고모부와 고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군에 있던 외사촌 형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년은 365일이니까 10년이면……. 70을 한 평생으로 하면……. 계산기를 두드리다 턱을 괸다. 10년이면 3650일. 많은 날 같지만 한 편으로 생각하면 금방 지나간 것 같다. 오랫동안 함께 한 것 같지만 10년을 함께 한 물건이 거의 없다. 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다. 3650일의 밤 ...
(42) 3월의 마른 모래 / 가을방학▲ 선명 / 가을방학 (2013).‘여행스케치’의 노래 ‘별이 진다네’ 앞부분에선 기타 소리와 함께 개구리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여행스케치’의 ‘여행스케치’도 그렇고 ‘여행스케치’는 여행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앨범이 아니라 음악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이어온 밴드나 가수가 또 있을까. ‘국민학교 동창회 가는 길’은 어린시절로 여행하게 만들고, ‘막내의 첫느낌’은 첫사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행이라는 감성은 하모니카 소리처럼 은은하게 녹아있다. 최근에는 ‘가을방학’이 그 자...
(41) 청춘21 / 원더버드▲ Cold Moon / 원더버드(2002).아내의 무덤에서 런닝 바람으로 벌초를 하는 국민가수 조용필의 모습을 아침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원래 아침 텔레비전은 이문재의 시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처럼 아침에 나오면 슬픈 영상들이 있다. 열병을 앓던 청춘을 지나 중년의 어느 선술집에서 그저 푸념이 아닌 한 층 고양된 심정으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라고 별리를 말하는 노래. 하지만 여전히 그러지 못하는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나는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걸 알았’으나 ‘소중한 건 옆...
(40) 지붕 위의 별 - 동물원▲ 거리에서/변해가네 - 동물원(1988)연말이면 아버지는 집 근처 새마을금고에 가서 달력을 받아 오신다. 몇 해 동안 마루 한쪽 벽에는 새마을금고 달력이 걸려 있었다. 은행 달력에는 거의 그림이 없다. 숫자가 크게 표시되어 있다. 그림 감상할 겨를 없이 일만 하라는 명령서를 보는 느낌도 든다. 예전에는 멋들어진 그림이 있는 달력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요즘 달력들은 숫자만 있는 것들이 많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모델 사진으로 된 달력이 최고이긴 하지만 그런 달력을 버젓이 벽에 걸어놓기는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