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
2009년 와산리 불돗당에 칠월칠석굿을 보러 갔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서둘러 갔지만 굿은 이미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집집마다 마련해 온 제물(메1기, 채소, 술, 생선, 떡, 3종류 과일)을 올리고, 지전, 실, 쌀과 돈을 따로 올리고, 굿은 소박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신석(神石) 앞에 놓인 제물과 촛불들은 신석을 더욱 신비롭고 아름답게 비춰
낙선동 4·3성은 조천읍 선흘리 낙선동에 위치해 있다. 제주4·3사건이 발생하고 1948년 8월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10월부터 제주도에는 해안에서 5km 이상 된 중산간마을 초토화 작전이 실시되었다. 중산간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군인들에 의해 소개되었고, 집들은 불태워졌다. 그런 후에 해안마을이든 중산간마을이든 사람들을 통제하고,
김시숙(金時淑)은 1880년 음력 2월 24일 신좌면 조천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며, 여성운동가이다. 두 번의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숙부 김문주를 찾아가 물으니, "책 속에 세계가 있고 글 속에 개화 문명이 있다."라고 했다.이 말을 들은 김시숙은 40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매진하게 된다. 1919년 3월
제주도에 관광지 바람이 일면서 한없이 길게 펼쳐진 모래밭은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의 해안마을에서 모래밭은 불모지요, 바다의 사막에 불과했다. 제주의 아이들은 수영을 모래밭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용암바위가 얼기설기한 바위와 바위틈에서 배웠다. 얼마나 멀리, 빠르게 헤엄쳐 나가느냐보다는 잠수하여 얼마나 많은
제주특별자치도는 건입동에 있는 동자복과 서자복을 하나로 묶어 복신미륵이라는 명칭으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하고 있다. 이 두 석불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탐라시대 제주성의 동쪽과 서쪽에 우뚝 서서 오고가는 선박과 뱃사람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수호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동자복이 있는 자리에는 만수사(萬壽寺), 서자복이 있던 자리에는 해륜사(海輪寺
관덕정 맞은 편 길을 건너가면 향사당이 있다. 이 건물은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향사당은 봄과 가을에 온 고을 사람들이 모여 예악덕행(禮樂德行)을 세우는 향사음례(鄕射飮禮)를 행하던 곳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활쏘기는 단순한 무예가 아니라 정신집중의 한 방편이었다. 젊은이들의 술 마시는 법도 또한 어른의 지도를 받으며
가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를 연재한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역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