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39) 또다시 크리스마스 / 들국화▲ Ⅱ / 들국화 (1986)김종길의 시 ‘성탄제’는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와 ‘산수유 붉은 알알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시구가 따뜻함을 준다. 그런데 이 시에는 크리스마스 가까운 도시에 겨울바람처럼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부분이 있다.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라고. 크...
[눈사람 레코드] (38) 마리 / 러피월드▲ Luppyworld / 러피월드 (2014)‘러피월드(Luppyworld)’의 노래 ‘마리’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마리’를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해요”라고 했다는데 이 말은 잘못된 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증오의 대상이 필요했던 민중들에게 그녀는 분풀이 대상이었던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꼴이 말이 아니겠지만/안부 한번 물어봅니다./정말로 안녕들 하신가요?/봄도 없고 가을도 없네요./그저 침묵하고만 있네...
[눈사람 레코드] (37) Overnight Sensation / Firehouse▲ FIREHOUSE - FIREHOUSE (1990)제주 청소년 ‘탑밴드 페스티벌’을 봤다. ‘Dream Theater’의 ‘Pull Me Under’나 ‘Firehouse’의 ‘Overnight Sensation’을 거의 똑같이 카피하는 고등학생들은 말 그대로 메탈 키드였다. 이러다 내년엔 ‘AC/DC'나 ‘Iron Maiden’의 연주와 노래를 재현해 내는 팀이 나올 수도 있겠다. 밴드부 연습실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찐따였던 나는 유유상종이...
[눈사람 레코드] (36) Jatuh / Liyana Fizi ▲ Between The Lines / Liyana Fizi (2011)부루기 대나무숲에 이는 바람 소리.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대나무활. 한라산에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무렵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맹꽁이를 찾기 힘들어지자 소리의 멸종에 대해서 생각했다. 황동규 시인이 이 세상에 두고 가고 싶다고 한 귀. 가령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앵콜 요청 금지’를 듣는 귀. 소리도 젖으면 슬프다. 멧비둘기 소리 그치면 아이가 젖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까. 사실 ...
[눈사람 레코드] (35) 그해 여름날 / 순이네담벼락 ▲ 한 개의 달 한 개의 마음 / 순이네담벼락 (2011)며칠 전에 새로 올라온, 친구 J의 카스를 봤더니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라는 한 문장 아래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노는 사진이 연이어 있다. 아이들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어 웃고 있다. 아이들이 어떻게 바다를 선택했는지 상상하면 흐뭇하다. 아빠는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닌다. 아이들이 먼저 바다 냄새를 맡았으리라. 눈 밝은 한 아이가 ‘돌고래를 보고 싶어’라고 발음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머리...
[눈사람 레코드] (34) Fatting Cat Girl / 해파리소년▲ everyday trouble / 해파리소년 (2005)우리는 하늘공원에서 낮잠을 잤는데 아직 그 낮잠 속에서 살고 있다. 사진 찍는 이재, 그림 그리는 유미진, 노래하는 홍성지, 시 쓰는 나. 홍대 프리사운드에 앉아 맥주를 마시다-이재는 콜라를 마시다-의기투합했다. 이름하야 시화사악. 자기 분야의 첫 글자를 모은 것인데 아방가르드라는 낱말을 좋아하는 이재가 연신 아방가르드하다며 좋아했다. 우리는 비주류를 자처했다. 자처하지 않아도 비주류로 분류가 되겠지...
[눈사람 레코드] (33) Dead Inside / The Caulfield Cult▲ the caulfield cult / godard split 7" / The Caulfield Cult (2014)내가 아이였을 때 거울 앞에서 아버지가 면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면도를 하고 싶어 했다. 비누 거품을 잔뜩 묻히고서 슥슥 면도를 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턱밑에 수염이 나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버지가 싫어졌다. 비료공장 일이 끝나고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탁상시계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런 다음...
[눈사람 레코드] (32)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 / 장기하와 얼굴들 ▲ 별 일 없이 산다 / 장기하와 얼굴들 (2009)그곳에 비파나무 한 그루 있었다. 그 나무는 말이 비파나무지 비파는 열리지 않고 회한만 잔뜩 열렸다. 해마다 가을이면 노란 후회가 탐스럽게 익었다. 지금은 비파나무 밑동 위로 자동차가 달린다. 밑동 위로 지나지 않는 게 없다. 일방통행도 아닌데 편도로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 자동차. 내가 자동차 속에 앉아있었거나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을 때였을 것이다. 공간이 곧 시간인 삼거리에서 나는 그 사람을 만났다. 정...
[눈사람 레코드] (31) 민물장어의 꿈 / 신해철▲ Homemade Cookies & 99 CROM LIVE / 신해철대마초를 합법화했다면 우리나라 음악은 얼마나 더 다양하고 아름다워졌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눈물이 너무 많아서, 대마초를 피워서라도 눈물 없는 나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마초 흡연을 이유로 음악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가짜 음악들의 시대가 펼쳐졌다. 조덕배가 대마초를 피우지 않았다면 우리
[눈사람 레코드] (30) 로쿠차 구다사이 / 이랑 & 진주조개잡이와 사람낚는어부▲ 스타워즈 프로젝트 컴필레이션 / 이랑 & 진주조개잡이와 사람낚는어부 (2008)배지근한 고기국수 한 그릇이면 헛헛했던 마음까지 부드럽게 풀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음식이 그저 배만 채우는 것이 다는 아니다. 음식 속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백석을 흠모하여 백석처럼 음식에 관한 시를 쓰고 싶었지만 맛깔스럽게 음식에 관한 시
[눈사람 레코드] (29) 녹두꽃 필 때에 / 블랙홀▲ Survive / 블랙홀 (1990)정부군의 진압으로 잠잠해졌지만 아스팔트 위에서 부릉부릉 거리며 언제 다시 들고일어날지 모르는 청년들이 있다. 일명 폭주족. ‘블랙홀’의 노래 ‘바람을 타고’가 전투가가 되겠지만 그전에 ‘블랙홀’의 ‘녹두꽃 필 때에’가 있었다. 역시 청춘의 박동소리는 헤비메틀이다.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
[눈사람 레코드] (28) 서쪽 하늘에 / 두 번째 달▲ 2nd moon / 두 번째 달 (2005)아시안 게임에서 스포츠 강대국 몇 나라를 뺀 나라의 금메달은 귀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딴 것이라 훈련하며 준비한 과정을 상상하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인도는 한때 아시안 게임의 강국이었으나 지금은 10위권에 들락말락한다. 여자 축구에서 한국은 인도를 상대로 10대0으로 이겼다. 인도 여자 축구선수들은 공을 잡지 못해 허둥댔다...
[눈사람 레코드] (27) Scars Into Stars / 뎁▲ Parallel Moons / 뎁 (2008)객원이라는 말이 좋다. 객원(客員)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에 직접적인 책임이나 상관이 없이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아무런 상관이 없으면서 참여할 수 있다니. 그 말은 유목, 제3세계, 여자 축구, 온두라스, 이슬람교를 닮았다. 무엇보다 객원이라는 말과 가장 동일시할 수 있는 말은 ‘히피’이다. 뎁
[눈사람 레코드] (26) 일강정 / 최상돈▲ 가수 최상돈.지난 겨울이었다. 김수열 시인과 시외버스 터미널 순옥식당에서 두루치기에 소주를 마셨다. 방학을 해서인지 김수열 시인은 수염이 덥수룩했다. 마치 산사람 같았다. 이러구러 술자리는 무근성 부근으로 이어졌다. 무근성으로 가자고 한 것은 김수열 시인의 제안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즉 무근성은 그가 유년기를 보낸 고향 동네였다. 인민유격대장 이덕구가 효수 당한
[눈사람 레코드] (25) 바보 버스 / 삐삐롱스타킹 ▲ One way ticket / 삐삐롱스타킹 (1997)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가면 사보(社報)가 꽤 있다. 사보는 기업의 이미지를 위한 것으로 도서관에 온 것들은 당연하게도 사외보들이다. 사보는 주로 대기업에서 발행한다. 돈이 있으니 홍보 비용으로 할애를 한다. 나는 스무 살 무렵에 도서관에서 사보를 읽으며 훗날 대기업 홍보과에서 사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
[눈사람 레코드] (24) 슬픈 노래 / 아마도이자람밴드▲ 데뷰 / 아마도이자람밴드 (2013)2000년 겨울, 제대를 하고서 레코드 가게를 열 생각으로 빈 점포를 보러 다녔다. 레코드 가게 주인이 되는 것은 내 오랜 꿈이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레코드 가게에서 음반을 정리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였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무소에서 빈축을 들어야 했다. 이제 더는 레코드 가게를 내는 사람이 없다는 것. 6년의 군 복
[눈사람 레코드] (23) 수면아래에서바라보는밤하늘 / 모임 별▲ mp3 / 모임 별 (2006)오은 시인은 꿈이 고양이인 여자아이를 만난 적 있다고 한다. 고양이를 꿈꾸는 그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나이였다. 나는 꿈이 해녀인 여중생을 만난 적이 있다. 중학교에 진학할 나이 정도 되면 조금 현실적으로 바뀐다. 해녀는 현실에 있는 직업이지만 여학생이 꿈꾸는 직업으로는 아름답다. 물질이 생업인 해녀에겐 바다가 힘든 ...
[눈사람 레코드] (22) 동화의 성 / 산울림▲ 제10집 / 산울림 (1984)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무력한 중년의 전형적 인물 케빈 스페이시가 대마초를 피우거나 근육 단련을 하며 듣는 음악은 핑크 플로이드였다. 대마초는 청년 시절부터 시작했다면 아직 끊지 못한 너절한 사랑 같은 거라고 말해도 되겠다. 영화 ‘골든 슬럼버’는 아예 ‘비틀즈’의 노래를 영화 제목으로 하고 있다. ‘'Once there was a way t...
[눈사람 레코드] (21) 맥주는 술이 아니야 / 바비빌▲ The Man Of The 3M / 바비빌 (2005)식당이나 술집에서 병맥주를 주문할 때 대개의 사람들은 카스를 시킨다. 이것은 거의 불문율에 가깝다. 그냥 맥주를 달라고 하면 카스가 나올 정도다. 사회생활에서 혼자만 다르게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은 고독한 바보가 되는 일이다. 회식 자리에서, 나는, 속으로는 하이트를 마시고 싶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눈사람 레코드 (20)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 3호선 버터플라이▲ Dreamtalk / 3호선 버터플라이 (2012)새벽 두 시 담배 연기 속에서 작은 병으로 맥주를 홀짝이며 뷔욕이나 의 빅토리아 리그랜드의 목소리에 빠져있는 사람도 김추자나 문주란의 노래를 들으면 술이 확 깰 것이다. 목소리가 주는 기운은 대단하다. 소리의 마성. 한영애를 일컫는 말이다. 목소리도 하나의 악기로 본다면, 참 좋은 악기인 셈이다. 임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