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잠들지 않는 남도 / 3호선 버터플라이▲ 3호선 버터플라이/산 들 바다의 노래 (2014)마타요시 에이키의 오키나와 문학이 갖는 의의는 그의 소설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에 잘 나타난다. 피해자-가해자의 도식화가 아니라 조지라는 미군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영화 ‘지슬’의 인물 중에서 신병 ‘정길’은 학살자 김 상사를 죽인다. 1948년 8월 인민유격대장 김달삼이 해주에서 열린 인민대표자대회에 참가한 것은 토벌대가 비극의 소용돌이로 가속도를 붙이는 빌미가 되었다. 무장대를 잡겠다고 산에 숨어 있는 사람들과 ...
(46) 서라벌 호프 / 이아립▲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이아립(2013)이아립의 목소리는 처음 ‘스웨터’의 ‘별똥별’로 반짝였다. 그녀라는 음악이 건국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예쁜 가방 속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같았다. ‘우리 비 그치면 산책할까?’하며 ‘나나나’ 거리는 허밍은 미선나무 나뭇잎에 떨어진 빗방울이 되어 귓속에서 삼투압을 했다. 작은 섬나라 ‘스웨터’는 아주 두껍고 텁텁한 겨울 스웨터보다는 봄가을에 입을 수 있는 얇은 스웨터에 가깝다. 십 년이라는 시간을 미리 예견한 목소리는 영화 ‘버스...
(45)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 오석준▲ DREAM & LOVE / 오석준 (1988)우리에게 ‘내일이 찾아오면’으로 잘 알려진 오석준은 목소리가 친근하면서도 멀리 있는 듯하다. 그의 목소리는 중학교 때 까까머리 친구 목소리 같다. 별명은 깐돌이. 공부도 잘 하는데 기타도 잘 쳐서 얄미웠지만 좋았던 친구. ‘작은 돛배에 새하얀 나만의 새하얀 돛을 달고서’(‘꿈을 찾아서’) 우리는 꿈을 향해 항해를 하는 줄 알았는데 바다는 세월의 바다였다. 지금은 없어진 동양극장. 그곳에서 우리는 동시상영 영화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중학생...
(44) 네가 오던 밤 / 좋아서 하는 밴드 ▲ 우리가 계절이라면 / 좋아서 하는 밴드 (2013).소라로 만든 향초에 불을 켠다. 향기가 음악처럼 퍼진다. 누가 내게 그런데 선물한 것인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꽤 신경 써서 준 것 같은데 추정되는 몇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그것을 잊어버렸다고 하면 얼마나 서운할 것인가. 밤이니까 그래도 소라 향초가 생각난다. 소라의 후생은 불꽃으로 타오른다. 밤에 기대는 정도가 점점 심해질수록 늙고 있다는 증거일까. 밤이 되어야만 그나마 생각이 정리되고 음악에 취할 수 있다. 소란...
(43) 21세기 어떤 날 / 페퍼톤스▲ Beginner's Luck / 페퍼톤스 (2012)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고모부와 고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군에 있던 외사촌 형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년은 365일이니까 10년이면……. 70을 한 평생으로 하면……. 계산기를 두드리다 턱을 괸다. 10년이면 3650일. 많은 날 같지만 한 편으로 생각하면 금방 지나간 것 같다. 오랫동안 함께 한 것 같지만 10년을 함께 한 물건이 거의 없다. 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다. 3650일의 밤 ...
(42) 3월의 마른 모래 / 가을방학▲ 선명 / 가을방학 (2013).‘여행스케치’의 노래 ‘별이 진다네’ 앞부분에선 기타 소리와 함께 개구리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여행스케치’의 ‘여행스케치’도 그렇고 ‘여행스케치’는 여행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앨범이 아니라 음악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이어온 밴드나 가수가 또 있을까. ‘국민학교 동창회 가는 길’은 어린시절로 여행하게 만들고, ‘막내의 첫느낌’은 첫사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행이라는 감성은 하모니카 소리처럼 은은하게 녹아있다. 최근에는 ‘가을방학’이 그 자...
(41) 청춘21 / 원더버드▲ Cold Moon / 원더버드(2002).아내의 무덤에서 런닝 바람으로 벌초를 하는 국민가수 조용필의 모습을 아침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원래 아침 텔레비전은 이문재의 시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처럼 아침에 나오면 슬픈 영상들이 있다. 열병을 앓던 청춘을 지나 중년의 어느 선술집에서 그저 푸념이 아닌 한 층 고양된 심정으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라고 별리를 말하는 노래. 하지만 여전히 그러지 못하는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나는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걸 알았’으나 ‘소중한 건 옆...
(40) 지붕 위의 별 - 동물원▲ 거리에서/변해가네 - 동물원(1988)연말이면 아버지는 집 근처 새마을금고에 가서 달력을 받아 오신다. 몇 해 동안 마루 한쪽 벽에는 새마을금고 달력이 걸려 있었다. 은행 달력에는 거의 그림이 없다. 숫자가 크게 표시되어 있다. 그림 감상할 겨를 없이 일만 하라는 명령서를 보는 느낌도 든다. 예전에는 멋들어진 그림이 있는 달력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요즘 달력들은 숫자만 있는 것들이 많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모델 사진으로 된 달력이 최고이긴 하지만 그런 달력을 버젓이 벽에 걸어놓기는 민...
[눈사람 레코드] (39) 또다시 크리스마스 / 들국화▲ Ⅱ / 들국화 (1986)김종길의 시 ‘성탄제’는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와 ‘산수유 붉은 알알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시구가 따뜻함을 준다. 그런데 이 시에는 크리스마스 가까운 도시에 겨울바람처럼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부분이 있다.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라고. 크...
[눈사람 레코드] (38) 마리 / 러피월드▲ Luppyworld / 러피월드 (2014)‘러피월드(Luppyworld)’의 노래 ‘마리’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마리’를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해요”라고 했다는데 이 말은 잘못된 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증오의 대상이 필요했던 민중들에게 그녀는 분풀이 대상이었던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꼴이 말이 아니겠지만/안부 한번 물어봅니다./정말로 안녕들 하신가요?/봄도 없고 가을도 없네요./그저 침묵하고만 있네...
[눈사람 레코드] (37) Overnight Sensation / Firehouse▲ FIREHOUSE - FIREHOUSE (1990)제주 청소년 ‘탑밴드 페스티벌’을 봤다. ‘Dream Theater’의 ‘Pull Me Under’나 ‘Firehouse’의 ‘Overnight Sensation’을 거의 똑같이 카피하는 고등학생들은 말 그대로 메탈 키드였다. 이러다 내년엔 ‘AC/DC'나 ‘Iron Maiden’의 연주와 노래를 재현해 내는 팀이 나올 수도 있겠다. 밴드부 연습실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찐따였던 나는 유유상종이...
[눈사람 레코드] (36) Jatuh / Liyana Fizi ▲ Between The Lines / Liyana Fizi (2011)부루기 대나무숲에 이는 바람 소리.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대나무활. 한라산에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무렵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맹꽁이를 찾기 힘들어지자 소리의 멸종에 대해서 생각했다. 황동규 시인이 이 세상에 두고 가고 싶다고 한 귀. 가령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앵콜 요청 금지’를 듣는 귀. 소리도 젖으면 슬프다. 멧비둘기 소리 그치면 아이가 젖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까. 사실 ...
[눈사람 레코드] (35) 그해 여름날 / 순이네담벼락 ▲ 한 개의 달 한 개의 마음 / 순이네담벼락 (2011)며칠 전에 새로 올라온, 친구 J의 카스를 봤더니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라는 한 문장 아래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노는 사진이 연이어 있다. 아이들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어 웃고 있다. 아이들이 어떻게 바다를 선택했는지 상상하면 흐뭇하다. 아빠는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닌다. 아이들이 먼저 바다 냄새를 맡았으리라. 눈 밝은 한 아이가 ‘돌고래를 보고 싶어’라고 발음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머리...
[눈사람 레코드] (34) Fatting Cat Girl / 해파리소년▲ everyday trouble / 해파리소년 (2005)우리는 하늘공원에서 낮잠을 잤는데 아직 그 낮잠 속에서 살고 있다. 사진 찍는 이재, 그림 그리는 유미진, 노래하는 홍성지, 시 쓰는 나. 홍대 프리사운드에 앉아 맥주를 마시다-이재는 콜라를 마시다-의기투합했다. 이름하야 시화사악. 자기 분야의 첫 글자를 모은 것인데 아방가르드라는 낱말을 좋아하는 이재가 연신 아방가르드하다며 좋아했다. 우리는 비주류를 자처했다. 자처하지 않아도 비주류로 분류가 되겠지...
[눈사람 레코드] (33) Dead Inside / The Caulfield Cult▲ the caulfield cult / godard split 7" / The Caulfield Cult (2014)내가 아이였을 때 거울 앞에서 아버지가 면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면도를 하고 싶어 했다. 비누 거품을 잔뜩 묻히고서 슥슥 면도를 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턱밑에 수염이 나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버지가 싫어졌다. 비료공장 일이 끝나고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탁상시계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런 다음...
[눈사람 레코드] (32)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 / 장기하와 얼굴들 ▲ 별 일 없이 산다 / 장기하와 얼굴들 (2009)그곳에 비파나무 한 그루 있었다. 그 나무는 말이 비파나무지 비파는 열리지 않고 회한만 잔뜩 열렸다. 해마다 가을이면 노란 후회가 탐스럽게 익었다. 지금은 비파나무 밑동 위로 자동차가 달린다. 밑동 위로 지나지 않는 게 없다. 일방통행도 아닌데 편도로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 자동차. 내가 자동차 속에 앉아있었거나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을 때였을 것이다. 공간이 곧 시간인 삼거리에서 나는 그 사람을 만났다. 정...
[눈사람 레코드] (31) 민물장어의 꿈 / 신해철▲ Homemade Cookies & 99 CROM LIVE / 신해철대마초를 합법화했다면 우리나라 음악은 얼마나 더 다양하고 아름다워졌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눈물이 너무 많아서, 대마초를 피워서라도 눈물 없는 나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마초 흡연을 이유로 음악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가짜 음악들의 시대가 펼쳐졌다. 조덕배가 대마초를 피우지 않았다면 우리
[눈사람 레코드] (30) 로쿠차 구다사이 / 이랑 & 진주조개잡이와 사람낚는어부▲ 스타워즈 프로젝트 컴필레이션 / 이랑 & 진주조개잡이와 사람낚는어부 (2008)배지근한 고기국수 한 그릇이면 헛헛했던 마음까지 부드럽게 풀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음식이 그저 배만 채우는 것이 다는 아니다. 음식 속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백석을 흠모하여 백석처럼 음식에 관한 시를 쓰고 싶었지만 맛깔스럽게 음식에 관한 시
[눈사람 레코드] (29) 녹두꽃 필 때에 / 블랙홀▲ Survive / 블랙홀 (1990)정부군의 진압으로 잠잠해졌지만 아스팔트 위에서 부릉부릉 거리며 언제 다시 들고일어날지 모르는 청년들이 있다. 일명 폭주족. ‘블랙홀’의 노래 ‘바람을 타고’가 전투가가 되겠지만 그전에 ‘블랙홀’의 ‘녹두꽃 필 때에’가 있었다. 역시 청춘의 박동소리는 헤비메틀이다.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
[눈사람 레코드] (28) 서쪽 하늘에 / 두 번째 달▲ 2nd moon / 두 번째 달 (2005)아시안 게임에서 스포츠 강대국 몇 나라를 뺀 나라의 금메달은 귀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딴 것이라 훈련하며 준비한 과정을 상상하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인도는 한때 아시안 게임의 강국이었으나 지금은 10위권에 들락말락한다. 여자 축구에서 한국은 인도를 상대로 10대0으로 이겼다. 인도 여자 축구선수들은 공을 잡지 못해 허둥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