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굿바이 트럼프드디어 미국의 대선 투표가 끝났다. 투표는 끝났지만 미국이 다시 정상(?) 국가로 되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국제무대에 데뷔시킴으로써 한 때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네티즌들은 트럼프에게 ‘트황상’이라는 애칭까지 부여했지만 트럼프는 결국 우리에게 별 소득을 가져다주지 못한 채 물러나게 되었다. 트럼프의 재직기간 동안 미국의 흑백 갈등은 심화되었고, 이민자나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도 심해졌다. 혐오를 부추기는 트럼프의 발언이 SNS
“어떤 이는 ‘다 죽게 생겼는데 그림을 그리냐’, ‘그깟 그림이 밥 먹여주느냐’라고 한 소리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 유화가 불이 잘 붙고 캔버스가 오래 탄다며 추위에 불쏘시개로 사라진 그림도 상당했다. 그럼에도 화가들에게 그림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는 대수로운 존재였다. 그림이 밥보다 중했고 목숨만큼 귀했다.”21세기 한국사회에서 그림은 밥먹여주는 일이다. 일부의 일이지만, 예술작품은 수천, 수억, 수십억 원의 화폐와 교환 가능한 재화로 자리잡았으며, 큰돈은 못벌어도 어쨌거나 경제활동의 기본이 되는 직업으로도 자리를 잡았다.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 시대의 스타 철학자이다. 라깡 정신분석학과 헤겔,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며 해석한다. 대중문화와 친화력 있는 철학자라 비평가들의 비평가로 군림한지 오래다. 정신분석학이 아니라 인지신경과학이 주류 과학이 된지 오래인 현대 심리학의 시대에 그의 이론이 낡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다. 그리고 때로는 그의 장황한 궤변이나 과장된 주장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대 사회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그의 빼어난 솜씨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피로사회》로 이름을 널리 알
1.중국을 떠올릴 때마다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중국은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서 세계 동서문화 교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몫을 담당해왔음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옛 소련 중심으로 양극화된 냉전체제 질서에 균열을 내면서 중국식 사회주의(수정 자본주의)를 표방하더니, 현재 이른바 G2국가로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은 군사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강국을 실현시키기 위한 중국몽(中國夢)으로서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야심차게 기획하여 실현하고 있다. 그렇다. 중국이 보여주는
1. 계획할 수 없는 삶질병관리본부는 얼마 전 ‘흩어지는 것’을 신종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연대 방식으로 제안했다. 몇 달 전에 아프면 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뉴노멀을 제시한 것에 비하면 이번 제안은 파격적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쌍팔년도식 구호에 익숙한 나로서는 흩어지는 것이 연대의 방식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제 나 자신과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흩어져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친구들과 우정을 돈독히 하려면 만나지 말고 거리를 두어야 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려면 명절에 귀향하지 말고 집에 있어야 한다.
1.책 표지에 시선이 한참 사로잡혔다. 표지 디자인은 단촐하다. 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떠 있는 제주도와 그 위에 놓인 한 송이 동백꽃이 피어 있는 가지 하나가 전부다. 검정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루는 바다와 섬, 그리고 섬 위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선홍색의 동백꽃으로 어우러진 이미지의 책 표지는 ‘바람섬이 전하는 이야기’란 책의 부제목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켜준다. 여기에는 과작(寡作)의 작가 한림화(1950~)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림화가 《The Islander》에서 들려주고 싶은 ‘바람섬이 전하는 이야기’
“노동, 복지, 도시재생, 시간, 검열, 행동, 기술, 거버넌스”사회학 저서에 등장할 법한 이 단어들은 ‘우리 시대 예술을 이해하는 8가지 키워드’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 의 뼈대를 구축하는 말들이다. 학제적 관점에서 보면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인접학문은 미학이나 예술사 정도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예술학이나 예술비평으로 확장한다. 이 책은 영문학과 문화이론을 전공한 저자가 예술창작과 예술정책 현장에서의 임상을 토대로 하여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밝혀낸 노착이다. 그것은 예술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전형적인
1. 무엇이 ‘나’를 무너뜨리는가신종 코로나는 보편적인 재앙 속에서도 개별적으로 자행되는 악은 멈추지 않고 일어난다. 최근에도 한 어린이가 부모에 의해 여행용 가방 안에 갇혀 사망했다. 심한 고문에 시달리던 한 여자 어린이는 부모의 학대를 피해 옆집 발코니를 통해 다행히도 도피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어린이의 삶은 학대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사건은 잊을 만하면 다시금 사회면에 등장한다. 한 택시 기사는 응급 환자를 태운 차를 막고 시비를 벌여 끝내 환자를 숨지게 했다. 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던
책을 읽는 일은 즐겁다. 서평을 쓰는 일은 힘겹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책읽기는 여가고, 서평 쓰기는 노동이다. 읽고 쓰기가 말 그대로 ‘일’이 되는, 엄살 많은 평론가에게만 서평 쓰기가 고된 것은 아닐 터. (당신이 여유롭게 읽는 이 글 역시 늦은 밤에 원고 마감에 쫓긴 다급한 누군가의 안타까운 흔적이다.) 더 많은 이들이 독자에서 작가로 변신하는 이 과정을 괴로워한다. 그 원인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독후감은 언제나 우리의 ‘숙제’였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독서에 언제나 따라붙는 독후감은 비단 독후감 쓰기뿐만 아니라 책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 세월이 흘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가족과 집을 잃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수사조차 전쟁의 상처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해보인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다룬 연구서이지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지만, 필자의 내공이 담긴 이 책은 깊이와 대중적인 설득력을 동시에 지닌 보기 드문 연구이다. 저자는 전쟁의 배경과 원인, 미국과 소련의 책임, 내부 정치세력의 문제 등 전쟁의 배경과 원인을 살펴보고, 1950년 6월에 시작된 전쟁의
1.인간의 감각 기관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현실이 있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운 채 일어나는 일들의 낱낱을 보고 들으려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압도함으로써 감각 자체를 동결시켜버린다. 그 순간,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은 분명 현실이되, 현실의 실감을 상실하고 현실의 경계를 훌쩍 넘어버린 ‘비현실’과 뒤섞인다. 현실·비현실이 혼재된 세계를 어떻게 감각하고 인식하며, 그 세계 속에서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2.정도상의 장편 《꽃잎처럼》은 이와 같은 물음을 묻는다. 이 소설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
“정선에겐 한 풍경이고 자연이지만, 김윤겸에겐 바로 할아버지의 자취가 남아 있는 역사이자 가문의 흔적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풍경 속에 담겼다.”저자 최열은 같은 대상을 담은 두 화가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뚝섬에서 송파나루 건너 멀리 보이는 남한산성을 바라본 풍경을 담은 두 화가 이야기다. 녹청색의 여름날 송파나루를 그려낸 정선과 잔설에 칼바람 부는 쓸쓸한 풍경을 그려낸 김윤겸을 비교한 것이다. 김윤겸은 병자호란(1636년) 당시 결사항전론을 펼친 김상헌의 손자이니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같은 풍경 속에 다른 듯이 담겨
1. ‘줌짠’으로 달래는 하루소고기를 사 먹었다. 정부에서 준 재난 지원금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소고기를 먹으며 지금은 망해버린 코미디 프로그램의 옛 코너가 생각났다. 한 개그맨이 돈을 벌면 무엇을 할꺼냐고 묻는 질문에 ‘소고기 사먹어야지’라고 대답하는 코너였다. 그 당시에는 그 대답이 왜 우스운 대답인지 몰랐다. 그런데 막상 돈이 생기니 소고기를 사 먹고 있는 자신이 우습게 여겨졌다. 그는 아마 오늘날의 상황을 예견했나보다.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한우 값은 폭등했고, 가계는 역설적으로 흑자를 기록
“배고파 못 살겠다, 쌀을 달라!”1946년 10월 1일 오전 10시 반경, 대구부청 앞에서는 여성과 아이들이 중심이 된 시민 1천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일제의 공출과 비슷한 식량 배급제를 실시한 미군정 아래에서 식량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권 문제였다. 1946년 가을에 전국을 휩쓴 10월 항쟁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1946년 10월 항쟁을 포함하여 1945~1950년 사이 대구·경북 지역의 사회운동사와 민간인 학살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대구 경북지역의 진보적 사회운동을 담고 있다. 구술 자료를 통해 경북 농촌 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이, 우리 일상이 달라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보잘것없이 작은 것들이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로 높여 부르는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우리 인간이 세상의 왕이고 지배자라는 생각은 그만 둬야할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들, 알지 못하던 작은 것들이 인간을 비웃듯 세상을 휘젓고 다니고 있으니까. 어쩌면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그들 쪽이 아닌가 되돌아 봐야할 지도 모르겠다. 은 ‘작지만 큰 세계’를 다루는 만화책이다. 개념 예술가 브라이오니 바와 미생물 생태학
1.서재에 삐뚤빼뚤 꽂혀 있는 책들을 물끄러미 쳐다볼 때가 있다. 필요에 따라 구입한 책이 있는가 하면, 문학평론가의 직업을 구실 삼아 저자들이 보내온 책도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렇듯 어느 책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그 중 내 경우 자꾸만 눈에 밟히는 이론 서적이 있는데, 그것은 세 명의 마르크시스트 문예비평가들 각 한 편의 글을 묶은 비교적 얇은 책이다. 그들의 명성은 이 분야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테리 이글턴(영국), 프레드릭 제임슨(미국), 에드워드 사이드(팔레스타인계 미
예술은 언제부터 상품이 되었을까? 이렇듯 우매한 질문에 대한 가장 현명한 답변은 당연히 ‘자본주의의 태동기부터’이다. 수천 년 인류 문명사에서 자본주의 사회처럼 거의 모든 노동 과정과 그 결과물을 상품으로 전환한 시대는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인간의 노동마저 상품으로 살고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 접어들어, 인간 노동의 최고로 평가받는 예술 또한 상품화의 논리에 포섭되었다. 예술 노동이라는 창작 행위가 결과한 물건, 즉 예술 작품이라는 재화는 다소간의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여지없이 자본주의 시장 체제의 상품으로 전환함으로써 근
1. 선거 이후의 삶최인훈은 을 통해 ‘광장’과 ‘밀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삶이 온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불과 며칠 후면 선거가 끝나고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은 다시 자기만의 ‘밀실’로 돌아갈 것이다. 그나마 신종코로나 때문에 거리는 예전처럼 소란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선거 때면 늘 등장했던 ‘북풍’도 없었고, 정치인에 대한 심각한 ‘테러’도 없었으며, ‘공작’이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유권자들은 집에서 정당의 공보물을 훑어볼 여유가 생겼다. 선거의 결과를 떠나
저는 다른 이야기보다 질병을 다루는 소설들을 찾아 읽은 적이 많습니다. 문학 연구 가운데서도 특히 ‘문학과 의학’(literature and medicine)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학은 인간 곤경의 기록이다’라는 가오싱젠의 말”(5쪽)처럼 삶의 여러 고통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질병을 예외로 두지 않기도 해서입니다. 인간의 삶이 생노병사(生老病死)로 이루어지는 만큼 질병은 이야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죠. 그런데 질병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직접 몸이 아프거나 병에 걸릴 때만큼은 아닐지라도 읽는 것
제노사이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는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정권에 의해 자행된 대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2014)을 우연히 보았다. 피해자 가족인 남성의 아버지는 그가 아주 어렸을 적 같은 동네 한 무리의 마을 사람들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했고, 그는 아버지의 죽음과 연루된 사람들을 찾아가 그 시절을 마주하도록 함으로써 좁게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과 그 죽음의 충격으로부터 미처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고, 넓게는 아버지의 죽음과 흡사한 학살이 일어난 구체적 실상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도저히 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