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느 해보다도 다사다난했던 한해로 희비가 엇갈리며 저물어 가고 있다. 우선은 지난 6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위원회에서 한라산, 성산일출봉, 거문오름동굴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당당하게 등재 지구촌 보물섬 제주의 명품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러나 9월 16일에는 사상 유래 없는 집중호우로 인명과 엄청난 재산피해가
봄을 맞는 한라산 나목(裸木)의 줄탁동시(啐啄同時)가장귀 덮었던 눈꽃을 녹이는 게 햇살인줄로만 알았습니다.우듬지를 감쌌던 눈송이 떨치는 게 스쳐가는 바람인줄로만 여겼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나목(裸木)에도 체온이 있었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햇살 쏟아지고 바람 부는 날 겨울눈 꽁꽁 덮은 차가운 서리꽃 그 눈부신 아픔 떨쳐내려고 뿌리에서 가장귀
그동안 중단됐던 오희삼 님의 한라산 편지가 다시 연재됩니다. 독자들의 열렬한 성원에 못이겨... 한라산 봄소식과 함께 제주의소리에 새로운 편지가 도착했네요. 독자들의 성원 부탁드립니다.--------------------------------------------------------------------- 여여하셨는지요. 오랜 만에
10여년 전 구좌읍 송당리의 아부오름에 오월이 오면 원형 분화구의 사면으로 피뿌리리풀이 황홀하게 피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꽃들은 누군가 한송이 두송이 남획되어 이제는 몇 송이 남아있지 않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놓아두려는 마음이 아쉽다.
두릅나무 가시의 간절한 소망 봄이 오면 피워 내는 꽃처럼 아름다운 게 있을까요. 기나긴 겨울, 인고의 세월을 건너 황량한 숲속을 밝히는 호롱불처럼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리는 이른 봄의 꽃들을 보면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의 앙금도 아침햇살에 녹는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고들 하지만, 실상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혹독한 겨울
▲ 바람에 휩쓸리는 보랏빛의 억새풍경은 한폭의 수채화와 같다.ⓒ오희삼 가을녘의 들판엔 선홍빛 기억의 냄새가 스미어 있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옷자락에 휘감겨오는 바람의 길을 따라 내 유년의 발자국을 더듬어 갈 때, 억새들은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처럼 살랑거린다. 그들의 몸짓은 단지 바람결에만 기댄 채 너울처럼 온몸을 흔들어대는데, 흔들림은 속삭이는 밀어처럼
싱그럽고 무성하기만 하던 초록의 숲이 야위어가며 가을이 오시려나 봅니다. 안개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숲속의 조붓한 언덕길을 따라 어승생오름을 오르노라면, 몸속을 파고드는 한기에 한여름을 달구던 뙤약볕이 그립기도 합니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한라산은 제주의 여느 마을보다 항상 한 계절을 앞질러 갑니다. ▲ 여름의 끝자락으로 푸르기만 하던 담쟁이덩굴의 푸른 잎
▲ 고추잠자리의 성숙한 수컷은 가을날 잘익은 고추처럼 빨갛다.ⓒ오희삼 뜨거운 여름 볕이 연못 위의 수련 봉오리를 열어젖힐 때, 잠자리들은 떼 지어 연못 위 허공을 유영한다. 그들의 비행은 가볍고 날렵하다. 잠자리의 비행궤적은 종잡을 수 없이 빠르고 유추할 수 없이 복잡하다. 그들은 다만 날개 달린 동물의 자유를 만끽하듯, 풀잎 끝에 앉았다가 순식간에 사라지
▲ 산 안개에 휩싸인 한라산 화구벽.ⓒ오희삼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환상의 섬 제주도. 이 섬의 한 가운데 1950미터의 높이로 솟아오른 산이 바로 한라산(漢拏山)입니다. 망망대해 푸른 물결 위의 작은 섬에서 제주 땅 어디에서나 한라산은 올려다 보이게 마련입니다. 아득한 수평선 일출봉 너머 떠오는 첫 햇살이 한라산 머리에 닿고 고단한 하루를 건너와 수월봉
▲ 선작지왓의 물가에 피어난 설앵초.ⓒ오희삼 계절의 여왕 봄날입니다. 봄의 절정입니다. 연분홍 진달래의 향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한라산 선작지왓엔 꽃잔치가 한창입니다.물가엔 설앵초와 구슬붕이가 앙증맞게 귀여운 자태를 드러내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옥잠화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채 피어납니다. ▲ 해마다 오월이 오면 선작지왓은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만개하여
▲ 겨울잠에 잠긴 대지를 깨우는 듯 시원한 물소리가 계곡에 울려퍼지면 봄꽃들은 부시시 대지를 열고 꽃잎들을 내어보냅니다. 산은 높은 만큼 깊고, 그 깊은 계곡에선 때묻지 않은 수정같은 생명수가 솟아 나옵니다.ⓒ오희삼 콘트라베이스의 낮고 긴 음색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오면한라산 깊은 계곡에서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물소리 바위를 적시며 솟아납니다.현(弦)을 튕기는
맵고 차갑기만 하던 바람결이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입니다.아침저녁으로 제법 싸늘한 산 공기에 어깨가 움츠러들지만, 따스한 3월의 봄볕들이 나목의 숲속에 부서지는 한낮에는 봄기운에 만물이 꿈틀거리는 계절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온다고 했던가요.오롯이 양지바른 숲속엔 샛노란 복수초의 이슬 맺힌 꽃망울이 방긋방긋 미소 짓듯 피어나고 제비꽃이며 노루귀, 바람꽃
▲ 백록담 건너편 돌무더기가 쓸려내린 곳에 조정철의 마애각이 있다.ⓒ오희삼 한라산 정상에는 화산폭발로 형성된 바위들이 무덕져 있습니다. 검은 색의 바위들 중에 칼로 베어낸 듯 반반한 곳에는 정성스런 백공의 손길에 새겨진 글씨들이 있습니다. 마애각(磨崖刻)이라 합니다. ▲ 한라산 백록담에 남아 있는 조정철 목사의 마애각.ⓒ신용만 사진작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 영실기암은 먼 옛날 제 어미를 삶아 만든 죽을 먹고 슬픔에 복받쳐 석고대죄(席藁待罪)의 심정으로 울음 울다 바위로 굳어버린 오백 아들의 섧은 전설 서려 있는 곳이지요.ⓒ오희삼 신(神)들의 정원(庭園)에 벼랑이 있습니다.사람의 발길을 거부하고 절벽 한귀퉁이에 새들의 보금자리를 보듬고,지상과 천상을 잇는 하늘길이지요. 영실기암(靈室奇巖)은 그렇게 바라볼 순
▲ 폭설 내린 한라산의 겨울숲.ⓒ오희삼 며칠 째 폭설이 하염없이 쏟아집니다. 어렵사리 닦아놓은 겨울의 등산로가 밤새 쏟아 붓는 듯한 폭설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폭설이 멎은 오늘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푸른 설원(雪原)으로 습관처럼 길을 나섭니다.아직 채 마르지 않은 등산화 끈을 바짝 조이고, 스패츠로 발목을 감싸고 두터운 장갑으로 중무장하
폭설 내린 한라산이 온통 설국(雪國)입니다.사방을 둘러봐도 온 세상이 흰눈에 덮였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침묵에 잠기고,흐르는 시간 마저도 눈 속에 잠겨 잠시 멈추어 선 듯 싶습니다. 그 침묵의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만이 산자락을 휘감습니다.끊길 듯 멈추었다가 긴 호흡 끝에 터져나온 날숨처럼바람이 파도처럼 일렁입니다.지난 가을 낙엽을 모두 떨구어낸 겨울
▲ 2004년 일몰(한라산 오백장군에서)ⓒ오희삼 다시 겨울입니다. 올 한해 잘 보내셨는지요.행복한 미소로 연말을 보내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런지기분 좋은 뉴스보다 코끝을 아리게하고 가슴 미어지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아야 했던 소식들로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 2004년 일몰(한라산 오백장군에서).ⓒ오희삼 안개속에서 모든 것을 덮을 기세로 내리는 폭설이올
▲ ⓒ오희삼 눈이 내립니다.그토록 기다리던 함박눈이 송이송이 내리십니다.날씨가 따스해서 겨울 같지 않은 가을날씨가 이어지더니오늘 기어이 설레임의 끝자락 바람을 타고겨울의 전령이 오십니다. ▲ ⓒ오희삼 겨울은 역시 겨울 다워야 제맛이지요.오름의 양지바른 들녘에선철 모른 진달래와 철쭉이 피어나고한 겨울에도 서늘하다면그게 어디 겨울이라 하겠습니까.어딘지 서운할
▲ 꽃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화려했던 한 해를 접고 숙명처럼 닥쳐오는 겨울속으로 걸어가는 저 나무들의 담담(淡淡)함을 가슴에 담아봅니다.ⓒ오희삼 설(雪)님이 오시려나 봅니다.올겨울 첫눈이 마침내 오시려나 봅니다.가슴 졸이며 누군가를 조마조마 기다리는 설레임으로첫눈을 기다리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요.그저 응결된 빗방울이 굳어서 내리는 눈송이일 뿐인데 말입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바람 앞장 세우고 겨울이 오는 소리 세차게 달려옵니다.깊은 밤 지새우며 山이 울어예었는지, 지나던 바람이 흘리고간 회한(悔恨)처럼세상이 온통 은빛 물결입니다.나뭇가지며 잎새마다 바위마다 서리꽃 하얗게 하얗게 피었습니다.山이 흘린 눈물처럼 푸른 산에 돋아난 새하얀 꽃들이 왜이리도 눈이 부시는지요. 한갓진 선작지왓 초원에 저녁 어스름이 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