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 절기는 이미 가을입니다. 너른 품의 후박나무 아래 모여 앉은 어른들의 부채질도 사라졌습니다. 한낮 막바지 뙤약볕을 뚫는 매미 울음도 곧 정적으로 남겠지요. 사람은 나무를 닮는다고 했습니다. 어느 마을이든 정자나무 아래엔 그 나무를 닮은 사람들의 역사가 구구절절 쌓여 있습니다. 누구라도 이 그늘에 등을 기대고 쉬어가면 사람이 보이고 마을이 보일 겁니다. 이미 가을입니다. / 김봉현 기자
여름 꽃 수국. 일주문 건너 푸름 짙은 절 입구는 온통 청보라 빛이다. 한조각 바람과 질긴 까마귀 울음. 벙그려진 수국꽃은 그래도 웃으며 살라 한다. 소나기 기다리다 거북 등처럼 메말라진 세상. 웃기는 세상이니 더 웃으며 살라는건가. 장맛비 기다리는 수국이 시퍼렇게 멍든 가슴을 감추며 웃는다. / 글=김봉현 기자
흡사 초록빛 바다 같다. 하얀 포말이 일렁이는. 연약하기만 한 줄기는 서로 엇대듯 기대었다. 붉은 핏줄 드러낸채 거친 바람을 온몸으로 이겨낸다. 생명의 경이로움이다. 언뜻 슴슴할뻔한 모멀밭 풍경은 생명을 간구하는 핏줄이 이어지며 살아있는 모든 것을 정화한다. 모멀밭, 모밀밭, 제주 사람은 메밀밭을 그렇게 불렀다. 이모작이 가능한 제주는 지금이 모멀꽃 필 무렵이다. / 글=김봉현 기자
잠시 머뭇거리는 찰나가 쌓여 흐르니 시간이 된다. 시간이 흐르니 사람도 익어간다. 나이 먹고 익어가는 게 어찌 사람뿐이랴. 저 들판의 생명에도 새로운 서사가 익어간다. 볶은 보리 맷돌에 갈아 개역 한 숟가락 입에 털어 넣던 유년의 기억도, 저 누런 들판에서 윤회하며 익어간다. 익어가는 너, 아름답구나 / 글=김봉현 기자
찻잎 따는 이 차 덖는 수행자찻잎 따는 잰 손울력 걸음에 들뜬 운수납자풀어헤친 안개비 사이로푸름이 너울거린다. 저마다 혓바닥 내민 아침 차밭에서문득, 화두를 틀고 섰다.이뭣꼬?/ 글 = 김봉현 기자
올해도 어김없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습니다. 오색영롱한 저기 저 꽃밭. 저 꽃밭을 따라가니 거기엔 연꽃이 피었습니다. 달 같고, 해 같고, 꽃 같은 연등이 찬란히 피었습니다. 줄줄이 꿴 상념들이 해탈의 길 끝에 다다르면 진리의 연꽃으로, 꺼지지 않는 연등으로 피어 오릅니다. 가난한 여인이 바친 꺼지지 않는 등불. ‘빈자일등(貧者一燈)’으로. / 글=김봉현 기자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1920년대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앞에 놓인 어느 형제의 우애와 갈등을 묘사한 비극의 서사시. 영국 출신의 명장, 켄 로치 감독의 영화다. 영화 전편을 수놓는 푸른 초원, 북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쉴새없이 일렁이는 보리밭. 그 흐트러짐은 역설적이게도 슬프도록 강인하다. 형제의 비극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묻힌 지 오래다. 허나, 쓰러진 보리는 죽지 않고 피고 또 자란다. 역사는 그처럼 지울 수 없는 흔적이다
봄 햇볕에 바람에 오감(五感)이 싱싱하게 자랍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저곳엔 묻혀 있는 게 있습니다. 4월이 짓누르는 잔인한 기억, 살고 싶어 무작정 기어오르던 산행길, 걸음을 옮길 때마다 구멍 난 고무신 밑창에 달라붙어 질척거리던 삶의 무게, 아버지 어머니 누이 바짓단 붙잡고 새끼줄처럼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흔적…. 그것들이 묻힌 곳입니다. 이제 그 들판이 푸르름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4월 햇볕도 바람도 좋습니다. 여전히 슬픈 고요를 위로합니다. / 글=김봉현 기자
흙, 바람, 나무, 4월 제주섬에 있는 모든 것들은 진혼곡을 부른다. 한 살배기 어린 생명도 죽였고, 아흔 살 노인도 맥없이 고개를 떨궜던 폭력의 역사다. 살과 뼈가 녹아있는 저 표석 아래, 무릎 꿇어 오열하는 한낮의 풍경은 아무 말이 없다. 이따금 지나는 바람과 새들이 그저 오늘을 잊지 말라 할 뿐이다. 부디 잊지 말라고. / 글=김봉현 기자
사실, 탐라에서 제주로 이어진 역사시대의 몽골과 고려는 그 어느 쪽도 반갑지 않은 외세(外勢)였습니다. 제주 섬사람들에겐 수탈만 해가는 ‘육지것’들이었습니다. 천년 탐라가 고려에 복속되면서 바다 건너 큰 마을이란 낯선 새 이름을 받은 제주(濟州)로선 탐라인이 아니라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은 여전히 불편했고 몽골은 완전한 침입자였던 것이지요. 고려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을 정벌했다는 저 ‘범섬’. 외세들의 전쟁으로 무고한 피해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제주 섬사람들에게 범섬은 들숨과 날숨 같은 포말로 숨비소리를 들려줍니다. 나, 살아
문득, 제주 동녘 하늘에서 제주를 내려다 본다. 예외없이 제 자리를 지켜온 오름들. 저마다의 몸짓으로 서있다. 어느 하나 저만의 것 아닌 것이 없다. 거친 바람도 오름에 닿으니 한없이 부드러운 어머니 품안이다. 그 이름은 용눈이오름, 손지오름, 높은오름, 동검은이오름, 문석이오름, 백약이오름, 아부오름, 안돌오름…, 이게 제주지. 그래, 제주가 보인다. / 글=김봉현 기자
산방산 가까이 봄이 왔노라고노란 손들이 끝없이 흔들어댑니다. 3월 어느 날, 노랗게 물든 바람이산방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다시 유채꽃 곁을 스칩니다. 산방산 가까이 봄이 왔노라고 노란 손들이 얼었던 가슴을 데웁니다.잊었던 노란 리본의 기억을 깨웁니다. / 글=김봉현 기자
하필, 서쪽 하늘에 눈을 뒀을까. 망설임 없이 저문다. 두려움 없이 기운다. 한낮 황홀했던 불덩이, 깊고 캄캄한 곳을 향하고 있다. 누구든 저물고 기운다. 그걸 알면서도 오늘 서쪽 하늘은 유난히 서운하다. 그래, 괜찮다. 삭이고 나면 다시 저 열정으로 아침을 맞을것 아닌가. 해는 졌지만 열정은 지지 않는다. 졌지만 지지 않았다. / 글=김봉현 기자
추사가 그토록 흠모했던 수선화. 3월 봄볕을 벗삼은 수선화가 제주 대정읍 추사 적거지 인근의 대정향교에도 만개해 있습니다. 추사가 바람코지 대정(大靜) 마을에서 세한(歲寒)의 8년 유배인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지천으로 널린 수선화를 보는 뜻밖의 낙이 컸습니다. 그러나 척박한 삶이 현실인 제주 민초들에겐 소나 말에게 먹일 ‘몰마농’이었거나, 농사에 방해되는 검질쯤이었겠지요. 환경이 시선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백옥 같은 잔대 위에 황금 찻잔을 올려 놓은 듯 자태와 기상이 남다른 금잔옥대(金盞玉帶) 수선화. 추사도 그
봄이 오시는구려봄의 길목, 짙은 미련으로 흔들리는 북풍한설에도 홍매화 가지 끝에 찾아온 봄은 언제나 그렇듯 살풀이춤을 추나니,부끄러운 새색시마냥붉은 저고리 소매에 스치는 바람소리마저 끝없어라홍매화 가지 끝, 미친 춤사위봄이 춤 추며 오시는구려 / 글=김봉현 기자
곧고 반듯한 길과 구불구불한 길이 있습니다. 어떤 길을 가겠습니까? 고단함과 부족함 없이 살아온 인생과 구부러진 길에서 울퉁불퉁 부대끼며 살아온 삶이 같을 수 없겠지요. 힘들더라도 희로애락이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가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오늘처럼 왕벚꽃 숲 같은 눈꽃 핀 길도 만나겠지요. 겨울에서 봄으로 향하는 한라산 5.16도로, 어쩌자고 이리 아름다울까요. / 글=김봉현 기자
아직 시린 바람 사이로, 아직 잔설(殘雪)이 남은 땅 위로, 손톱만 한 매화들 서로의 뺨을 부비고 있습니다. 두 송이, 세 송이, 열 송이, 스무 송이…. 수런수런하지만, 새색시처럼 단정합니다. 바람 따라 흰 소매 흔들고 새하얀 이 드러낸 단아한 미소로 새봄을 맞습니다. 문득 내다 본 봄 뜰에 매화가 서럽도록 곱습니다. / 글=김봉현 기자
일강정(一江汀) 마을의 자랑, 제주 ‘강정천’의 주인은 백년가약의 상징인 원앙이다. 천연기념물 327호 원앙새가 떼 지어 강정천을 찾았다. 강정천은 원앙들의 낙원이자 보금자리가 된 지 오래다. 누가 그랬던가. 신선은 부럽지 않으나 원앙은 부럽다고. 무리 지어 짝을 찾고 추파를 던지듯 물을 튀기며 여기저기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이 작은 냇가에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다만, 좋은 것만 보라 한다. 원앙금침(鴛鴦衾枕)에 누운 듯 설레는 마음으로 새봄과 연애하라. / 글 = 김봉현 기자
겨울 한라산을 올라본 적 있는가. 중산간 들판의 고수목마(古藪牧馬)를 본 적 있는가. 오래전부터 몸과 눈에 익숙한 풍경이나 이토록 소중한 것인줄 몰랐다. 말이 필요없다. 눈덮힌 한라산에서, 겨울을 이겨낸 들판에서 시인이 되어보라. 투박하고 성글지라도 겨울 시인의 되어보라. 뜨스운 겨울 시인이 되어 보라. / 글=김봉현 기자
태초의 숲도 필시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절물’, 너처럼.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숲의 바람도 까마귀 울음따라 흘러들어 절로 맑아지는구나. 마치 숲의 정령을 수호하는 듯 모든 생명들의 잡담(雜談)까지도 거슬림없는 다라니(陀羅尼)가 된다. 대롱 낙수 아래에서 한 평생 햇볕을 쐬지 않고도 질긴 숨을 지키는 초록의 이끼마저 가끔씩 날아와 목축이고 가는 모든 생명들을 품는다.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의 ‘절물’, 너는 절로 맑구나. / 글=김봉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