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배움터
“정부, ‘사회적 기업’ 육성 의지 이해하지만 ‘돈’만으론 안돼”

 “지역과 현장 중심의 연구로 ‘살아있는 대안’을 만들겠다” 희망제작소가 첫 발을 내딛으며 내건 포부다. 올해로 5주년을 맞은 희망제작소가 첫 뜻을 되새기는 전국 순례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하여 ‘박원순의 희망열차’. 박원순 상임이사와 연구원들이 지난 3월부터 각 지역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제주에선 30일부터 3일까지 닷새간 19개 기관 및 단체를 방문한다. 이들의 만남을 <제주의소리>가 매일 1~2꼭지 취재하며 <박원순과 함께하는 제주 희망열차>로 묶는다. 제주의소리가 담지 못한 만남은 희망제작소 자체 취재팀의 기사로 보충한다. / 편집자주

“겉으론 불가능해 보여도 세상엔 계속해서 불합리한 일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변호사) 기관사가 이끄는 ‘희망열차’가 제주에 도착했다. 전라도-경상도-충청도-강원도를 3개월간 내달려온 ‘박원순 희망열차’는 30일 마지막 지역인 제주에서 5일간의 일정을 힘차게 시작했다.

'박원순의 희망열차'는 희망제작소가 5주년 기념 희망나눔 프로젝트의 하나다. 박 이사와 연구원들이 지역의 사회단체, 비영리기관, 사회적기업 등을 방문해 지역 공동체, 마을만들기,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30일 제주시 일배움터를 방문해 간담회를 가졌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제주에선 30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5일간 총 19곳에서 간담회와 좌담 등의 형식으로 만남이 진행된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9시가 넘는 시간까지 4~5군데 씩 도는 강행군이 이뤄진다.

박 이사는 첫 날 일정으로 사회적기업 일배움터를 방문해 관련 사업장을 둘러본 뒤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일배움터는 사회복지법인 제주가톨릭사회복지회가 중증장애인에게 직업 재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05년 설립됐다. 2008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됐으며 현재 ‘푸른세상’ 원예사업단과 ‘푸른제주’ 농산물사업단이 운영되며 꾸준한 매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설립 첫 해 매출액이 560만원에 불과하다가 2010년 3억 원을 달성한 일배움터에 대해 “뭐든 첫 시작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일배움터는 첫 단계를 잘 지나온 것 같다”고 평했다.

‘공공의 이익과 수익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사회적기업’은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사회적기업 아름다운가게를 만든 박 이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박 이사는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일배움터 사업을 벌인다고 해도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하물며 지적장애인과 함께 지속가능한 수익성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겉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상엔 불합리한 일들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박 이사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상상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상에 어떤 일도 상상력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과는 다른 길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를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기업이란 게 바로 그거다. 수익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민도 하지만 사회적기업의 최종 목적은 결국 공공의 이익이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사회적기업 육성 정책에 대해선 불만이 많다. 특히 ‘돈’을 투입하면 ‘사회적기업’이 ‘뚝딱’ 나온다는 식의 접근이다.

제주도가 지사 임기 내에 사회적기업 100개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것에 대한 생각을 묻는 간담회 참석자의 질문에 박 이사는 “일배움터에 1000억 원을 가져다 부은들 이만큼 되나. 원장 등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정성과 땀방울, 고민들이 쌓여 된 것이다. 돈으로 된 것이 아니다. 공장, 제방 만들고 다리 놓는 것은 돈 투입하면 되겠지만 사회적기업은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군사작전’하듯 하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인증 뒤 '3년 지원'이 끝남과 동시에 상황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일배움터는 지원이 끝난 뒤에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모범적인 사회적기업 모델이 되고 있다.

사회적기업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박 이사는 “사회적기업이 일어날 수 있도록 인프라, 중간지원기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기업 육성학교, 사회적기업 펀드 및 은행, 컨설팅 기관, 마케팅 기관들을 키우는 것이다. 이들이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상품을 제대로 팔아주게 된다면 사회적기업은 지속가능한 영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란 것.

그는 “가난한 이웃에 돈을 나눠주는 것 못지않게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름다운 가게’와 ‘희망제작소’ 작명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박 이사는 “‘알뜰 가게’, ‘수상한 가게’ 등 수십 개의 이름들을 놓고 고민하다 고른 것이 ‘아름다운 가게’다. 희망제작소 역시 ‘21세기 연구소’라고 했을 수도 있다. 희망제작소로 지어놓으니 진짜 희망을 제작해 주는 줄 알고 찾아온 사람도 있다. 와서는 ‘희망’ 내놓으라는 거다. 브랜드 이름과 디자인이 그만큼 중요하다. 홈페이지에 뜬 카피(Copy) 하나에도 모든 것을 건다”고 말했다.

▲ 일배움터 관계자들이 30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간담회를 가졌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연 매출액 250억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가게’가 성장한 이유는 ‘명분’이었다고 말했다. 명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다. 직원들에게 ‘수익률 20%’를 강조한다는 박 이사는 살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업적 거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필요한 비품은 회원 ‘기증’을 통해 구한다.

수익을 내는 데 씀씀이를 줄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상품’을 잘 만드는 것이다. ‘아이디어 맨’으로 소문난 박 이사는 제주의 사회적기업들에도 제안을 쏟아냈다.

그는 “일배움터에서 파는 ‘꽃 화분’도 ‘장애인이 만들었다’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제주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에서만 나는 난(蘭)으로 만든 화분을 제안했다. 박 이사는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사회적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남들이 아무도 시작하지 않은 것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신규’는 하늘에서서 떨어지지 않고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사회적기업의 성공 포인트도 ‘가장 제주도적인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가 제주다우려면 공항에서부터 헤매게 해야 한다. 말도 글자도 달라야 제주만의 경쟁력이 생긴다”면서 전라북도 완주군의 예를 들었다. “전라북도 완주군은 4-5년 만에 시찰 한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하는 곳으로 변했다. 완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특별한 여행사가 생겼을 정도다. 완주만이 가진 자산을 활용해 사업을 일으켰기에 가능했다”

박 이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현실이 된다고 믿어야 한다.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 세상의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수익을 내는 사회적기업이 가능한 이유”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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