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장애인들, 희망열차 타고 '함께 꿈 꾸다'"

▲ 6월 2일 오후, 희망제작소 박워순 이사가 제주 칼호텔에서 척수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6월 1일과 2일, 제주칼호텔 무궁화룸에서는 (사)척수장애인협회 주관으로 지도자 연수가 열렸다. 행사 마지막 순서에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강연 제목이 '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됩니다'란다. 오래 전에 박노해 시인이 장기 복역 후에 감옥에서 나올 때 했던 말이었는데, 얼마 후에 박원순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텔레비전 대담에서 하던 걸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박노해 시인은 '더 민주화된 사회'를, 박원순 처장은 '시민운동이 더 활짝 꽃이 피는 사회'를 꿈꿨을 게다.

박원순 이사의 원래 직업은 검사와 변호사였다. 이전에 사람들은 그를 박원순 변호사라고 불렀는데, 그는 본인인 '원순씨'라 불러주는 것을 좋아한다.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 수많은 분야에서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업적을 남겼던 원순씨가 다시 장애인 앞에서 꿈을 꿈을 이야기 하겠단다.

강연 예정시간이 오후 한 시가 되어도 원순씨가 도착하지 않았다. 강연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은 참석자들의 표정이 밝을 수많은 없다. 10분쯤 지나자, 희망제작소 팀들이 늦어서 미안하다며 행사장에 들어왔다. 희망열차의 일정이 너무나 빡빡하고, 외부인들 주차가 다소 불편한 제주칼호텔의 구조가 원순씨로 하여금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게 하는 다소 어색한 상황.

▲ 희망열차의 바쁜 일정하에서도 박원순 이사의 강의는 매순간 진지하다.

이렇게 시작한 강연이니, 다소 분위기가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불편과 차별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원순씨가 과원 무슨 말로 용기를 줄 수 있을까? 

원순씨가 자신이 만난 장애인들 얘기를 꺼내 들었다. 시각장애인이면서 사회사업을 하는 장애인들 만나서 감동을 받았다는 말도 했고, 외발자전거를 비장애인보다도 더 멋있게 타는 자폐아동의 얘기도 꺼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이면서 오지마라톤에 도전해서 세상을 놀라게하는 전주시의회 송경태 전 의원의 의지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원순씨의 강연을 듣는 장애인들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불편한 육체로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남의 성공 사례가 그리 쉽게 가슴에 와 닿겠나? 

하지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고 의기소침할 원순씨가 아니다. 원순씨가 자신을 소셜 다자이너(Social Designer)라 소개하며, 세계최초이며 유일한 직업이라고 했다. 하는 일이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때문에 "정부와 하는 일이 같은데, 다만 월급만 받지 않는다"고 했다. '유일한 직업'에 방점을 찍으며, 백수연대 대표 주덕한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주덕한씨는 남이 만들지 않은 '백수연대 대표'라는 명함을 만들고, 남이 만들지 않은 독도 모양의 쿠키(독도쿠키)를 만들어 백수에서 탈출했다는 거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일자리도 생기고 비전도 만들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자리', '비전', '용기', 이 세 가지가 강연의 핵심이다. 장애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일자리와 비전이란 걸 잘 아는 원순씨가 '용기'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내가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꿈을 함께 꾸어보자고 손을 내미는 자리다.

참여연대에서 일하던 시절의 경험을 말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시절에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정부와 '맞짱'도 뜰 수 있었다"고 했다. 법철학 서적에서 읽은 '법의 목적은 평화이고 그걸 이루는 과장은 투쟁'이라는 글귀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장애인들 스스로의 적극적인 투쟁과 노력이 없이는 이들의 권익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원순씨는 공익변호회사인 '공감'이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원순씨가 어느 날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서 "사법고시 합격하면 동네에 '축'이라는 현수막이 붙는데, 검사나 변호사 일이 축하할 일이 아니다. '근조'라는 현수막을 붙이는게 맞을 거다"고 말을했단다.

그런데 강연이 끝나자 한 연수생이 원순씨는 따라오면서 저도 박변호사님처럼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묻더란다. 논의 끝에, 원순씨가 후원금 월 200만원을 모집해주는 조건으로 그 연수생은 무료로 변호해주는 공익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이런 변호사들이 모여 만들어진 게 '공감'인데 지금은 변호사 8명이 사무실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금 '공감'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연수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고 했다.  

▲ 척수장애인들이 강의를 듣는 모습이다. 처음에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강연은 진지해졌다.

 

원순씨가 참여연대 일을 정리하고 아름다운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모두들 안되는 사업이라며 말렸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원순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객석에서 듣는 이들의 눈에 빛이 난다. 

"모두 안 된다고 할 때 해야 합니다. 지금 아름다운가게의 연 매출이 250억이에요. 제주도에만 가게 3개가 있고, 마산에서는 '경남여성장애인연대'와 가게를 함께 운영합니다. 수익의 절반은 여성장애인연대의 활동기금으로 쓰이고 있는데요, 서로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척수장애인협회도 함께하고 싶지 않으세요?"

원순씨는 "용기를 가지고 남이 가지 않는 일에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그런데 혼자 하지 말고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업에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다. 억지로라도 사람들 찾아가 고문도 맡기고, 은퇴한 선생님들 찾아가 후원인으로 만들면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했다.

원순씨는 사업이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라 "바로 발아래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발아래에서 찾아서 성공한 사례로 전북 완주의 '다듬이 오케스트라'를 소개했다. 아주머니들이 다듬이를 들고 만든 공연단인데, 세계에 유일한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에 전국을 돌며 공연을 다니기도 한단다.

장애인들이 주체가 되어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례들도 소개했다. 그중 하나가 일본의 '스완 베이커리(Swan Bakery)'다. 이 회사는 프랑스 최고 제과업자로부터 기술 지도를 받고, 일본의 야마모토운수회사와 결연을 맺어 사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역시 용기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라는 거다. 물론 이를 성공시킬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원순씨는 그 외에도 장애인들이 보면서 편한 길을 찾아다닐 수 있는 지도나 관광지 가이드북, 할머니들이 높낮이 조절을 할 수 있는 보행기', 모래밭이나 데를 다닐 수 논ㆍ밭을 다닐 수 있는 캐터필터가 달린 전동 휠체어 등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수많은 물건이 있다며,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런 것들을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 또,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서는 장애인 영화나 다큐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나,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구입하는 종합 편의점, 장애인을 위한 전문 여행사 등도 꼭 필요한 것이라며, 이런 사업들도 시작해보라고 권했다. 물론 목표는 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이다.

▲ 강연이 끝나고 질의와 응답이 오갔다. 장애인들은 사업의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 '아름다운가게'와 사업을 제휴하는 방법 등에 대해 물었다.

질의에 답하는 순서도 있었다. '장애와 빈곤은 함께 다닌다'고 했다. 장애인 협회의 고충은 역시 자금이다. 협회 기금을 잘 모금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원순씨의 대답이다.

"사업 하려면 자금이 고민 되잖아요. 정부기관이나 기업이나 재단을 찾아가서 요청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냥 우리단체 도와달라고 하면 잘 안도와줍니다. 구체적인 사업을 가지고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거든요. 왜 도와줘야하는지 이유가 확실해야 해요. 호소력 있는 사업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원순씨 자신도 '돈독'이 올랐다고 했다. 자신을 '왕 거지'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는 매일 매일 지속 가능한 사업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일이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해놓으면 점점 쉬워진다"고 했다. 강연을 마칠 때, 장애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