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73) 신창리 싱게물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싱게물 여탕 내부 ⓒ장혜련

‘싱계물공원’은 신창리 바닷가 포구에 있는 공원이다. 풍력기가 윙윙 돌아가 그 소리가 위압적이긴 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이국적인 풍경이라 생각하면 봐 줄만 하다.

공원 들어오는 입구에 싱게물이 자리해 있다. 바닷가에서 새로 발견한 ‘갯물’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 물의 이름으로 ‘신게물(한경면 역사문화지)’, ‘싱계물(표지판)’, ‘신갯물, 싱게물(북제주군 지명총람)’ 등이 혼용되고 있어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지금 이곳은 여성들의 빨래터와 목욕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나 한마디로 노천목욕탕인 셈이다. 목욕탕 주변은 자연석으로 아늑하고 아담하게 돌담이 둘러져 있으며 수질과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싱게물이 위치한 곳에서 보는 해변은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풍광이 무척 아름답다. 그 뒤 북쪽으로 20m 거리를 두고 사선으로 남성용 목욕탕이 절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목욕탕의 위치와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이야기가 막 전개되기 시작한다. 동네 처녀들이 끼리끼리 목욕할 용품들을 챙겨 구덕에 담아 옆구리에 끼고선 삼삼오오 짝을 이뤄 조잘대며 그곳으로 향한다. 만약에 동네에 마음에 둔 총각이라도 있을 양이면 그 발길이 더욱 설레일 것이고 조심스러워진다.

 그런가하면 엉덩이를 실룩대며 걷는 처녀의 뒤태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 뒷모습에선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과 로맨스를 꿈꾸는 달콤함을 담은 발걸음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여성목욕탕을 지나야만 남성목욕탕에 갈 수 있었던 동네 총각들은 괜스러이 이곳을 지날 때면 발걸음이 느려진다. 행여 목욕탕 담 너머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자신이 연모하는 처녀의 웃음소리가 섞여있지 않을까 하여 귀를 쫑긋 세울 것이다.

이렇게 한여름 밤 해질녘 여성들이 이곳에 모여 일탈을 꿈꾸거나 부추겼던 장소가 바로 이런 야외 목욕탕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실현되지 않은 욕망이거나 로맨스면 어떠랴. 그저 또래의 친구들과 그런 얘기와 사건을 모의하면서 눈에서 도발이 피어났으면 그뿐이다. 한여름 밤 잠시나마 이렇게 마을의 공동의 장소에서 그런 꿈들을 맘껏 누리고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갈 만큼 까르르……. 그렇게 그 곳에서 일상
의 탈출을 꿈꿔 보고 친구들과 웃음을 맘껏 웃었으면 그뿐인 것이다.

제주 해안가 지역에 있는 용천수 중에는 식수로 사용되는 곳도 있었지만 이렇게 노천목욕탕으로 적합한 곳도 많았다. 목욕탕은 굉장히 사적인 공간인 듯하나 가식적인 옷을 벗고나면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나 담론이 형성될 수 있었던 공간이다. 이곳 싱게물은 한여름 해질녘 여성들의 일탈을 꿈꾸던 장소로 안성맞춤 조건을 갖춘 공간이다. 이곳에서 노을이 진다. 서서히 목욕탕을 나와서 집으로 향하는
청춘남녀의 어슴프레한 실루엣도 사라진다. / 장혜련

*찾아가는 길 - 신창리 해안도로 풍력발전기 → 싱게물공원 → 공원 내 우측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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