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77) 저지리오름허릿당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저지리 오름허릿당 ⓒ장혜련

제주의 일렛당은 육아와 치병을 다스리는 신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이곳 저지오름허릿당 역시 일렛당으로 제일은 매 7일인 셈이며 아이가 아팠을 때, 피부에 부스럼이 생겼을 때 당을 찾아가 기도하면 낳는다는 성소이다.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은 매 7일을 제외한 초사흘과 열사흘에도 당에 간다.

특히 ‘애기가 많이 못젼딘 사름덜(아기가 많이 아픈 사람들)’은 스무사흘에 가면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당에 다녔다는 임신생(1921년생,여)에 의하면 당에 갈 때는 메 2보시, 돌래떡 7~5개, 과일을 올리며, 생선이나 돼지고기는 준비되는 대로 올린다고 했다. 그러나 마마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는 마마손님을 대접할 몫으로 메 1기를 더 올렸다. 오름허릿당 당멘 심방은 ‘여병이 아방’이었는데 그가 죽자 요즘은 ‘여병이 큰어멍(형수)’이 맡아 있다.

당의 제단은 반원형의 자연석 돌담이 쌓아져 있으며 주변에 나무가 에워싼 형국이다. 원래 담 너머에 있는 큰 나무가 신목인데 지금은 그 앞으로 돌담이 둘러져 있으며 나뭇가지에 지전과 물색이 걸려 있고 당 주변에는 초를 켰던 흔적과 술병들이 널려 있다. 그 곳에는 당에 올 때 제물을 들고 왔던 것으로 보이는 구덕이며 돌 틈새에 똘똘 말려 꼽혀 있는 플라스틱 봉지들은 어디에 소용되는 물건인지 모르나 빼곡
히 돌틈에 꽂혀 있다. 청소를 하지 않은 것이라기보다는 뭔가에 쓰임이 있어 그렇게 둔 것으로 보이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바람막이로 쓰였을 당 입구의 천막들 또한 마을사람들의 필요에 의한 물건처럼 보였다. 성소의 모든 것이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또 그렇게 조화롭게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나름의 용도가 있어 보였다.

오름허릿당은 지금도 아이들이 아프거나 집안에 흉사가 있으면 구덕에 제물을 담아 수시로 드나드는 곳으로 마을사람들과 신의 의사소통 장소이다. 옛날 제주여성들은 의료시설이 충분치 못한 오지에서 아
이에게 병이 나거나 피부에 허물이 생기거나 집안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그 연유를 신에게 물었다. 그곳에서 현실의 적극적인 해결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삶의 고비를 해소하며 지혜롭게 살아왔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궁금증과 그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를 여러 가지 두려움으로 종교를 만들었으며, 그 문제들에 대한 답 혹은 일시적 해소를 통하여 삶을 영위해 왔다. 그러므로 본향당의 존재는 제주여성들의 현실의 모든 고민을 풀어 놓았던 현실문제의 상담소이자 정신의 해방구였던 셈이다. / 장혜련

* 찾아가는 길 - 저지리파출소 → 오름 가는 길 팻말 → 닥오름 표석 30m 좌회전 → 빈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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