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벌을 왜 아이들이 뒤집어 써야 하나"

<제주도교육청은 교육감 불법선거 관련자를 가담 및 비위 정도에 따라 '구속' '상' '중' '하' '기타'로 분류한 인사조치안을 24일 공개했다.

인사조치안은 오는 3월1일자로 단행되는 교원 정기인사에 반영된다.
인사조치안에 따르면 구속 또는 구속기소돼 재판에 계류중인 교원('구속')은 직위를 해제하고 금품 50만원 이상 수수 교원('상')은 구속전까지 비경합지역(외곽지역) 전보 또는 경합지역(제주시) 전입 불가, 승진 보류 등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요컨대 “우수교사는 제주시로, 문제교사는 외곽지역으로”라는 이야기인가? 한 마디로 말해 언어도단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이 결정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정설이다. 하기는 우리의 경우에는 교육의 질은 시설의 화려함이 결정한다고 믿었던 인물이 교육감을 8년씩이나 하기도 했으니 교육환경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교육재정의 태반을 학교시설과 자재 교체와 설치 비용으로 부어넣음으로써 이번 교육감 불법선거의 단초를 마련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각설하고, 왜 법을 어긴 문제교사 징계의 대상이 외곽지역인가? 해당교사에게는 그게 벌의 효과일 수 있다. 징계에 의한 외곽지역 전보라는 심리적 부담, 통근의 불편, 비용 증가 등등...

그렇다면 물어보자. 그럼 문제교사의 벌을 왜 우리 아이들이 나눠받아야 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그 제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문제교사가 외곽지대로 오면 그 교사는 회개하는 심정으로 온갖 열과 성을 다하여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아이들 교육에 일대 전기를 가져올 것인가?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일상적으로 부임해온 것처럼 직무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교사로서 쫓겨난 자로서 처신할 것인가?

이미 그곳에서 성심을 다하던 동료교사들의 심정은 어쩔 것인가? 학부모들의 교사들에 대한 신뢰도는 어쩔 것인가? 그게 어떻게 나타나든, 징계방법으로 채택된 외곽전보가 교사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가 없으며 당연히 교육에 끼치게 되는 영향도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일반공무원이나 기업체들의 경우에는 징계의 방법으로 지방전보라는 것을 왕왕 사용하고 그게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물이나 일이 아닌 인간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계의 경우 '문제교사'라는 이유로 외곽지역으로 전보시키는 것은 다만 행정편의를 위한 것일 뿐 아이들 교육이라는 본래의 가치판단과는 관계없다.

교원전보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적 영향을 전제로 해야 한다. 교원인사의 판단기준은 교원이 아니라 학교현장에 있는 아이들이라야 한다. 왜 벌을 아이들이 뒤집어써야 하는가?

징계교사의 외곽전보가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효과의 예를 우리가 갖고 있기는 하다. 과거 조선시대, 유배자들 중 일부가 제주의 문화와 학문을 진흥시키는 한알의 밀알이 되었던 경우가 그것이다. 최근에는 전교조 관련교사나 교장에게 밉보여 본의와는 상관 없이 외곽지로 나가게 된 교사들 중에도 그런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그들로 인해서 시골학교가 아연 활력을 찾게 된 경우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불법선거 개입교사를 포함해서 평소 근무평정고과를 반영하는 교원인사는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우수교사는 제주시로, 문제교사는 시골로... 그런 식으로 교사가 중심이었지, 시골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판단의 기준은 되지 못했지 않은가? 바로 눈앞의 징계교원 인사가 그렇게 진행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시설은 허술할지언정 교사가 바르면 아이들 교육은 저절로 된다. 그런데 하는 걸 보면 교육행정은 시골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게 아닌가? 불법교원에 대한 징계방안을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번 교육감선거에 본의든 아니든 개입되었던 교사들 모두의 교원으로서의 품성이나 자격 자체를 논하는 게 아니다.

문제교원을 외곽지역으로 전보시키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행정편의주의에 대한 일침을 주장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