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선거운동 허용 '그림의 떡'…당리당략 폐해 '덤터기'

총선 예비후보 A씨(제주시선거구)는 요즘들어 마른 침을 삼키는 일이 잦아졌다. '결전의 날'이 다가오는데도 손을 놓고 있으려니 초조함을 감출 수 없다. 그러니 침만 삼킬뿐이다.

명함을 돌릴수 있나, "도와달라"는 얘기를 할 수 있나. "총선에 출마한다"는 말도 꺼낼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입도 다문 채' 얼굴을 내미는 것이 고작. 그저 남들이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다급해진 이 후보는 한때 행사장에서 명함을 돌렸다가 선관위로부터 제지를 당하곤 할말을 잃어버렸다. '정치신인'의 설움을 톡톡히 맛본 것이다.

북제주군선거구의 B씨는 속이 더 탄다. 자신의 선거구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손발이 묶인 것도 서럽지만 도대체 어디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알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경선 방식이 결정된 것도 아니다. 설사 경선을 치르더라도 본선에 대비하려면 시일이 촉박하다. B씨의 요즘 일과는 당과 관련된 행사에 얼굴을 내밀거나 '미디어 선거'에 대비해 정책을 다듬고 지인을 만나는 게 전부다.

B씨는 "다른 것은 몰라도 '게임의 룰'은 정해져야 하는데 (정치권이)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답답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적어도 '게임의 룰'은 정해져야 하지 않느냐" 볼멘소리

D-50. 선거일이 5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신인들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손발이 꽁꽁 묶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현역의원들은 의정보고회다 출판기념회다 하면서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개정 선거법 대로라면 허용되지 않을 것들이다.

이 때문에 정치신인들은 "현역 의원들이 불공정 게임을 위해 의도적으로 선거법 처리를 늦추는 게 아니냐"고 드러내 놓고 불평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신인들은 정치권의 선거법 개정 움직임에 잔뜩 기대를 걸어왔다.

정치신인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제한적 사전선거운동을 허용키로 오래전에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예비후보자 제도가 도입돼 선거일 전 120일부터 총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은 관할 선관위에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면 경력이 기재된 명함배부, 선거사무소 설치, e-메일을 통한 정책 홍보등 제한적이나마 사전 선거운동이 허용되게 한 것이다.

또 예비후보자도 후원회를 결성, 후원금을 모금할수 있게 했다. 반면 지금까지 선거기간에만 금지됐던 현역의원 의정보고회와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90일 전부터 금지돼 현역의원과 정치신인간 선거운동 불공정성을 상당부분 개선하게 했다.

인지도 제고에 부심했던 정치신인들로서는 고맙기 그지없는 파격적 조치들이다.

제주도선관위 관계자조차 "현행법은 현역의원에게 유리하지만 개정 선거법은 신인들의 운신의 폭을 대폭 넓혔다는 점에서 불공정성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할 정도.

정치신인 '운신의 폭' 넓힌 개혁적 조치들도 결국은 '빛좋은 개살구'?

그러나 이런 개혁적 조치들이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몰두하느라 선거법 처리가 미뤄지고 있는 것. 이러다간 역대 선거법 처리시점 중 가장 늦은 기록을 세우게 될 게 분명하다.

이 때문에 사전선거운동이 가능한 '120일'의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다. 개정 법안이 곧 통과된다 하더라도 '사전선거운동'이 의미를 갖기에는 시일이 너무 짧다. 결국 이번에도 현역의원들만 '특혜'를 누리게 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선관위에 적발되는 사람은 주로 정치신인들이다. 인터넷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새해인사를 하거나 당원 및 지인들에게 명함을 배포한 정치 신인들이 주의 또는 경고를 받았다. 여론조사를 통해 예비후보를 홍보한 업체 대표와 후보 측근이 수사의뢰를 당하기도 했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정치신인들로서는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정치권의 관심은 여전히 당리당략에 쏠려 있다. 선거구 획정에만 매달려 있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정치개혁 특위가 결국 무산되자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자민련등 여야 4당은 24일에는 총무회담을 갖고 선거구획정 관련 미타결 쟁점에 대한 막바지 절충에 나섰지만 끝내 합의에 실패했다.

'제주지역 3석 유지', 선거구 조정 여부등 '최종 결론' 불투명

이에 따라 선거법 개정안은 빨라야 이번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다음 달 2일 통과될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각 당의 공천후보 결정 및 경선일정 등 선거준비작업이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이날 회담에서 4당 총무들은 국회의원 정수, 지역구 및 비례대표 의원수 등 선거구획정을 위한 가이드 라인에 대해 조율했으나 첨예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역구 수를 14개 늘리고 비례대표의원 수를 현행 46명으로 동결, 전체 국회의원 정수를 287명으로 늘릴 것을 주장했으나, 열린우리당은 지역구수 13개 및 비례대표 의원수 13명 증가를 주장했다가 수용되지 않자 지역구수 227개 및 비례대표 의원수 46명 등 전체 의원정수 273명 동결로 맞섰다.

이에 따라 4당 총무들은 국회 선거구획정위에 두 개의 안에 대한 각각의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표결처리한다는데 의견을 모았지만 이 또한 불투명한 상태다. 3당이 밝힌대로 제주지역 3개선거구가 유지될지, 3석이 유지된다면 종전대로 될지, 존폐기로에 선 북제주군선거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종잡을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선관위 "정치권 잦은 합의 번복…우리도 답답하다"

속을 태우기는 선관위도 마찬가지.

개정 선거법이 통과된 후 바로 시행해야 할 것만 예비후보자 등록, 예비후보 후원회 개최 안내, 방송토론위 구성, 사이버선거부정 감시단 발족 등 산적해 있지만 지금은 내부적으로 준비만 할 뿐 문서시행 조차 못하고 있다.

제주도선관위 관계자는 "법이 확정돼야 바뀐 제도를 안내도 하고 실무적인 준비도 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그렇다고 개정안 대로 준비하자니 정치권이 워낙 자주 합의를 번복하는 바람에 불안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 관계자는 제한적 사전선거운동에 대해서도 "정치신인들은 개정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는 현행법상 할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개정 법안의 의미 퇴색을 우려했다.

정치권의 정쟁으로 각 당의 총선준비가 차질을 빚는거야 똑같은 상황이지만 정치신인들은 아무말도 못하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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