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아파트 실종어린이 찾는 방송조차 ‘거부’
'시끄럽다' 항의전화에 절박한 부모심정 외면

제주시 연동 A아파트에 사는 김모씨(35)는 최근 너무나 어이없는 일을 겪었다.

아파트 단지내 놀이터에서 놀던 다섯 살 난 막내딸이 한 눈을 파는 사이에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느 쪽으로 갔나?'하는 생각에 공원주변을 돌아 봤으나 딸을 찾지 못한 김씨는 집에 있던 부인에게 연락을 해 아파트 단지를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딸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급해진 김씨는 아파트관리사무소를 찾아 전후사정을 이야기 하고 미아찾기 방송을 한 번만 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측의 답변은 "그런 일로 방송하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관리사무소측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을 하면 입주민들로부터 항의전화가 와 미아찾기 방송은 하지 않기로 했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김씨는 "다섯 살 난 아인데 혹시나 놀다가 또래네 집에 들어 갈 수도 있지 않느냐. 방송해도 없다면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느냐. 제발 한 번만 방송해 달라. 입주민의 그런 부탁도 들어주지 못하느냐"며 사정을 했지만 결국 방송을 하지 못했다.

너무나 분한 김씨 부부는 말싸움 할 정신도 없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주변에서 놀고 있는 애들 하나하나를 붙잡아 인상착의를 알려주고 "혹시 그런 꼬마 애를 본 적이 없느냐"며 묻고 다녔다. 그러기를 3시간여. 한 어린학생이 "0동 0호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 아파트에서 겨우 어린 딸을 찾을 수 있었으나 아파트관리사무소측를 생각하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세상살이가 시멘트로 가로막힌 아파트 벽만큼이나 각박해지고 있다. 타 지방에서 실종된 어린이를 찾아달라는 방송을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제주에서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이 상대적으로 잘 보장되는 아파트 문화가 도내에서도 일반화되면서 실종어린이를 찾기 위한 방송조차 하지 않는 아파트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방송을 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나 방송을 했다 하면 즉시 입주민들의 항의전화가 이어져 아파트관리사무실에서 아예 '미아 찾기 방송'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A아파트 옆에 있는 B아파트도 간혹 사정이 딱한 경우는 방송을 하지만 입주민들로부터 욕을 먹기는 마찬가지다.

B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솔직히 말해 우리도 딱해 죽겠다. 관리사무실 입장에서는 주민편의을 위해 방송을 해 줘야 하는데 방송을 하면 '뭐 그따위 내용으로 시끄럽게 방송을 해서 잠을 깨우느냐'는 항의전화가 이어진다"며 고충을 털어 놓았다.

이 직원은 "얼마전에도 어린이를 잃어버린 부모가 찾아와 방송을 해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방송을 하기는 했지만 A아파트에서는 안 해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방송을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방송을 하면 꼭 시비를 걸고 전화로 욕을 해대는 주민들이 있어 우리도 방송을 하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직원은 "간혹 가다가 학원갈 시간이 돼도 나타나지 않은 자녀를 찾아달라는 부탁도 있으나 그런 경우는 제외하고, 정말로 급한 경우다 싶으면 욕먹을 각오를 하고 방송을 한다"면서 "그러나 방송을 하면 어김없이 딴지를 거는 주민들이 몇 몇 씩은 꼭 나타난다"면서 관리사무실측의 애로사항도 전했다.

제주시 C아파트인 경우 아예 미아찾기 방송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대부분 항의 전화를 하는 주민들을 보면 밤근무를 하고 난 후 낮에야 집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렇다보니 미아찾기 전화를 하면 어떤 때는 10여통의 항의전화가 쏟아져 이제는 전체 주민들에게 전해줘야 할 내용이 아니면 아예 마이크를 잡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의 A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방송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방송은 실내에 하는 게 아니냐. 어린애가 잃어버렸다면 실외에도 있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방송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아니냐"면서 "그런 이유로 방송을 하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또 "어린이들은 방송을 해도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하지 않느냐"면서 "주민들의 항의도 부담스럽고 해서 물탱크 청소나 정전예고, 소독 등의 문제가 아니면 그 외에는 방송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막내딸을 잃어버렸던 김씨는 "물론 시도 때도 없이 방송을 해 댄다면 짜증나는 것은 사실일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잃어버린 아무것도 모르는 다섯 살 난 어린애를 찾기 위해 방송을 해달라는 것 까지 거부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 자식을 잃어버렸을 때 부모의 심정을 안다면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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