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문제는 상상력이다

세상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몇 있다. 자기 삶의 경험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가 흔히 자수성가형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범인들의 신망과 환호의 박수 소리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우리들도 우수한(우수함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이런 사람들이 조금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중앙-변방에서의 성공의 기준은 누가 더 중앙과 더 밀접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진출에 성공했다. 제주 천년을 지탱해온 생각 중 하나는 뭍으로 진출한 사람은 똑똑하고, 영리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허무이며 편견이며 하나의 몰이해다. 제헌의회 이후, 멀리 갈 것도 없다. 유신 체제 이후의 제주도 국회의원이 누구인가를. 그들은 대개 제주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제주를 떠나, 뭍의 대학에 진출한 사람들이다.(제주대학교 출신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까지 정부수립 이후 몇 년이 걸렸는가를 상기해보라.) 뭍의 아이들이 유능해서, 섬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무능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막연하게 뭍을 벗어난 이들이 위너라는 생각, 섬에 남아있는 이들은 루저라는 자괴감.

이른바 엘리트주의. 모든 것이 중앙으로 수렴되는 한국 근대 자본주의를 거치면서 지방은 누구 누가 더 중앙과 가까운 가를 내기하는, 이른바 지방 정치의 중앙 정치의 가면 쓰기가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만다. 지금도 이러한 뿌리는 우리의 삶 곳곳을 옥죄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누구는 여당 최고 위원의 가면을 쓰고, 누구는 야당의 유력한 정치인의 가면을 쓴다. 그리고 도의원들은 가면 쓴 그들의 가면을 다시 얻어 쓴다. 가면 위의 가면, 가면 속의 가면. 지금 이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중앙을 향하는 가면을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최근 한라산 관리권을 중앙에 귀속하느냐 아니면 제주에 존속하느냐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라산 관리권을 지방에 두고자 하는 지방 분권주의자들이 왜 그렇게 철저히 중앙 엘리트의 해바라기가 되고 싶어 안달했는가. 마치 한라산 관리권이 중앙에 환원되면 지역의 생존권이, 지역의 자존심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생각해보자. 도지사가 되기 위해 여당 지도부를 은밀히 만나고, 흠결 있는 사람이 공천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기를 쓰고 반대하는 일들이 선거철마다 되풀이 되는 것이 제주 지역 정치의 모습이다. 모든 사람들이 중앙에 기대고, 중앙의 판단에 목매고, 중앙의 기준에 목숨을 건다.

우리가 아니라 그들의 기준이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 우리들은 단 한번도 우리들의 삶을 긍정하지 못했다. 중앙이 인정하고, 중앙에서 인정받은 존재이어야 우리의 삶이 비로소 숨을 쉬었다. 생각해보자.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러한 수동적 삶을 물러줄 것인가.

 출륙 금지령의 그 순간부터 왜 우리들은 뭍에 기대지 않고는 우리를 긍정하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예속, 코리안 자본주의의 예속을 거부하고 우리식의 삶을 상상하고, 긍정하지 못하는가. 세계 7대 경관이 마치 우리들의 삶을 로또 복권처럼 세상을 바꿔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수십 억원의 혈세를 쏟아부으며 그들의 평가에 목 매는가. 왜 우리가 아니라 그들인가. 왜 제주의 정치인들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을 긍정하는 삶의 상상력을 갖지 못하는가. 현실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일. 현실의 허무를 인정하고, 허무의 힘으로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뭍의 가치가 아니라 섬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망치의 정치를 그들은 왜 실천하지 않는가.

국가가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하면, 국책 사업이니까, 국가가 하는 일이니 어찌 할 수 없다는 사람들, 이미 국가가 결정한 일이니, 우리는 최대한 현 상황에서 지역 이익의 최대치를 생각해야 한다는 사람들. 그들이 왜 우리의 정치를, 우리의 삶을 쪼그라들게 만드는가. 시쳇말로 ‘쪽팔리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섬의 상상력을, 섬의 가치,  섬의 능력을 잃어버린 이들이다. 

상상력의 고갈. 상상력의 빈곤. 오로지 중앙을 향해 눈을 부릅뜬 채 중앙의 가치에 목매는 사람들. 이런 국회의원과 도의원을 뽑은 우리들은 우리의 손으로 그들의 머리 위에 망치를 내리쳐야 한다. 평범한 이들의 상상력보다 못한 그들을, 중앙을 욕하면서, 끊임없이 중앙의 일원이고자 하는 그들에게 우리라도 망치를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배지를 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그들보다 탐라 독립이며 입도세며, 이런 허무맹랑 해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의 상상력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질료가 될 것이다. 이들의 상상력의 반도 따라 가지 못하는 정치인이라면 우리는 그들을 보이콧해야 한다. 그들의 정치가 아닌 우리들의 정치, 시민들의 정치가 필요하다.

▲ 김동현
이러한 시민 정치의 시작이 소셜이고, 희망버스고, 강정을 찾는 수많은 연대의 몸짓들이다. 그런데도 자기와 다른 생각은 전혀 듣지 않으려는 고집불통 늙은이가 둘 있다. 한 명은 해병대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을 체벌에 부적응한 사병들의 문제라고 쓴소리를 한 정력적인 늙은이고, 또 한명은 세계 7대 경관이라는 완장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어버린 지방의 촌로이다. 과연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김동현 국민대 대학원 박사과정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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