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80) 동명리 개명물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개명물 입구 ⓒ장혜련

여름 한나절 답사에 지친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는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어디서 들려온다.

제주는 강수량이 1,500mm 이상 되는 다우지역이다. 땅이 화산회토로 되어 있어 비가 내리면 거의 땅 아래로 스며들어 지하를 흐르다가 해안가에 이르러 솟아오른다. 이 물을 흔히 용천수라 하는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이 물이고 그러다 보니 제주의 마을은 식수가 나오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 비옥한 토지가 있는 중산간 지역으로 생활터전이 옮겨지는데 그곳에서는 물이 고일 만한 곳을 선택하여 그 곳에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이용하였다. 이것을 봉천수라 하였다. 제주는 용천수와 봉천수에 의지하여 삶을 영위하였다.

동명리는 위치상으로 보면 중산간에 속했는데 여기서 드물게 기운차게 흐르는 용천수를 만날 수 있다. 황룡사 앞으로 비스듬히 마주보는 자리에 위치해 있는 개명물이 그것이다. 마을사람들은 ‘개명물’ 또는 ‘가명물’이라 부른다. 물 입구에는 시멘트 구조물로 둘러져 있는데 ‘새마을 가꾸기공동빨래터 1972. 4. 8’이라고 새겨져 있다.

개명물 입구에 들어서면 물소리가 기운차 청각적으로 시원해지기 시작한다. 이 물소리가 왜 이렇게 기운찬가 하여 살펴보니 빨래터 위쪽은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고 물은 풍부한데 수로가 좁으니 그 압력으로 소리가 더 힘차게 들려왔던 것이다. 빨래터라면 여성들의 공간이고 그러다보면 동네에서 떠도는 소문과 사건의 진상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웃어야 하는 일, 슬픈 일 등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느라 소리도 높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다 이 힘찬 물소리가 막아주었던 건 아닐까? 힘찬 물소리는 비밀을 지켜주는 방어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었다.

지금도 빨래의 양이 많을 때는 이곳에 와서 바지를 둘둘 걷어 올려 이 물가에 퍼질러 앉아 빨래 방망이로 옷감을 힘차게 내리치며 시원하게 빨래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오면 동네의 소식과 정보를 얻어갈 수 있으니 오늘날의 사우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인 셈이다. 삶의 고비고비에서 복병처럼 슬픔을 만나고 그때마다 차랑차랑 소리치며 흐르는 이 물을 찾아와 흘러가라 슬픔이
여! 마음 속 말을 실어보냈을 것이다.

이곳 동명리의 물은 지금도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수질이 좋고 수량이 풍부하여 마을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 장혜련

* 찾아가는 길 - 명월리 방향 → 동명리 황룡사 맞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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