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건설 반대가 "종북 좌파 세력의 활동"이라고요?

 

▲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는 지면 한 면을 할애해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다뤘다. 신문은 사회단체 회원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종북 좌파 세력의 활동'이라고 규정했다.  ⓒ 장태욱  강정마을

<조선일보>는 7월 20일 자 신문에 강정마을 해군기지 특집기사를 실었다. 신문은 '표류하는 국가사업' 기획 기사 네 번째로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다루면서 A5면 전체를 기사에 할애했다.

이날 <조선>은 '해군기지 부지가 좌파단체 해방구로… 30명 때문에 공사 중단'이라는 제목의 기사 등 총 세 편으로 나눠 강정마을을 보도했다. 오아무개 기자는 해군기지 공사 진행상황, 유아무개 기자는 해군기지 필요성에 대한 글을 썼다. 더불어 김아무개 기자는 공안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하며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주도하는 세력을 분석했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을 설명한 기사의 한 부분을 보자.

"제주해군기지는 1993년 해군본부 합동참모회의에서 처음 필요성이 제기된 뒤 후보지 선정을 둘러싼 찬반논란이 거듭됐다. 2007년 주민총회를 통해 뜻을 모은 강정마을의 유치 신청과 제주도 여론조사(제주도민 54.3%, 강정마을 주민 56.0%)를 거치면서 건설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 <조선일보> 기자, 뭘 잘 모르시는군요

기사를 보면 마치 해군기지 건설 결정 과정이 주민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사를 쓴 기자가 모르는 사실이 있는 것 같아 가까이서 지켜본 제주도민으로서 설명을 해줘야할 듯하다.

기사가 거론한 주민총회는 2007년 4월 26일에 있었던 마을 임시총회를 말한다. 이날 임시총회에서 당시 마을회장이었던 윤아무개씨가 "해군기지 장소 선정이 4월 말까지라 시급하다. 이런 기회가 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한 일"이라며 주민을 설득하였고 "조건이 맞지 않으면 나중에 반대할 수도 있다"고 하여 회의에 참석한 주민 86명은 만장일치로 기지 유치안을 가결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주민 대부분은 총회에서 해군기지 문제가 논의되는지조차 몰랐다는 사실이다. 주민 1500여 명 가운데 이날 회의에 참석한 86명의 의사(다음날인 4월 27일 도청 기자회견에서는 150명으로 부풀려 발표되었다)가 '주민의 총의'로 둔갑됐는데, 이때부터 비극의 싹은 자라기 시작했다.

그해 6월 19일에 열린 마을총회, 비로소 해군기지 문제가 주민 간의 심각한 갈등 문제로 커졌다. 이날 해군기지 건설 찬반을 묻는 주민 투표가 예정됐고, 투표장에는 주민 70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하지만 해군기지 유치를 찬성하는 주민이 기표소를 부수고 투표함을 탈취하는 바람에 이날 투표는 무산되었다.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주민은 이날 현장에서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하는 서명용지에 이름을 올렸는데, 당일 서명한 인원이 400명에 이른다.

다시 이어지는 기사를 보자.

"작년 말 공사가 본격 시작되면서 반대 운동이 수그러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난 3월부터 타 지역 반대세력이 강정마을로 몰려들면서 갈등이 커졌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과 '개척자들''생명평화결사'가 반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 공사는 지난해 12월 27일 시작됐다. 성탄절 연휴가 끝나고 시작된 월요일이었다. 현장에서 공사 개시를 반대하는 천주교 신부, 개신교 목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 30여 명을 강제로 경찰서에 연행한 이후 공사가 시작됐다. 공사가 이렇게 시작됐는데, 반대운동이 수그러들 줄 알았다고? 기자와 신문의 상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 도보순례 2009년 여름,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 반대를 주장하며 5일 동안 걸어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해군기지 유치 결정이 발표되고 난 이후 4년 동안 주민들 삶은 한없이 피폐해졌다. 그런데 이 주민들도 모두 '종북 좌파 세력'일까?  ⓒ 장태욱  강정마을
 
물론 지난 4년 동안 해군기지를 반대해온 주민의 심신이 피폐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중앙정부의 횡포와 지난 김태환 도정의 기만에 시달렸는데, 새로 출범한 도정에게는 배신까지 당했다. 정부는 공권력까지 동원해 군사기지를 강행하려 했다. 이런 '막장' 현실에서 사면초가에 내몰린 주민은 뭘 선택할 수 있을까. 자살? 테러?

오아무개 기자가 거론한 단체는 나도 강정마을에서 처음 접했다. 그래서 그들의 이념적 성향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시대에 가장 억압 받는 이들과 아픔을 함께하고자 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진정성과 '성인의 자세' 같은 걸 느꼈다.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주도하는 세력을 분석한 김아무개 기자의 기사는 더욱 가관이다. 독자에게 괴로움을 안겨드리는 결례를 무릅쓰고 첫 대목을 옮겨보겠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은 북한에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면 기를 쓰고 반대하는 종북 좌파 세력 활동의 연장이라고 공안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종북 좌파 성향 122개 단체가 제주도 환경보전 등을 명분으로 내걸고 있지만, 사실 광우병 사태 이후 별다른 이슈가 없던 차에 강정마을을 정치투쟁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이 종북 좌파 세력 활동의 연장이라고 주장하고 싶은데, '종북'과도 '좌파'와도 연결지점을 찾을 수 없으니 익명의 전문가 의견이라고 밝힌 모양이다. 참으로 편리한 글쓰기 습관이다.

김 기자는 유모 연구관의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도 반핵 평화투쟁으로 위장했지만 사실은 국방력 강화를 막아 대한민국의 국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라는 주장을 인용하며 기사를 마무리 했다. 역시 김 기자가 모르는 내용이 많은 것 같아 필자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해야겠다.

# 강정마을이 친북·좌파 정치투쟁장이라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개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크게 '민주주의' '환경보전' '국제평화'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이 가능하다.

강정마을 주민은 지난 몇 해 동안 "현 시기 대한민국에 해군기지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제주도에 지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제주도에 지어야 한다면 왜 하필 강정마을인가?"에 대해 줄기차게 물어왔다.

그런데 정부와 도정은 주민의 질문에는 한 차례의 대답도 없이 '안보'와 '지역경제 활성화'만 외쳤다. 주민이 "주민설명회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주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해도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이 문제를 두고 "국민주권 원리, 정당한 절차의 원리, 행복추구권 등 어느 것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7년에 한라산, 일출봉, 검은오름 용암동굴계 등을 묶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그에 앞서 2002년에는 강정 앞바다에 있는 범섬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지난 2006년 환경부는 강정마을을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한 바 있다. 강정마을 앞바다에는 천연기념물 제442호로 지정된 연산호 군락지가 있고,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는 현장에는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된 붉은발말똥게와 맹꽁이가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지역 환경이 보호받아야 할 이유가 무수히 많은데, 모두 무시하고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 한 일인지, 환경보호를 위해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친북' 혹은 '좌파'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정부가 제주에 건설하고자 하는 군사기지의 성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다. 나는 군사 전문가가 아니라서 깊은 얘기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해상교통로와 제주남쪽 해역의 해양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기지를 건설해야한다"는 명분은 너무 궁색하다.(유아무개 군사전문기자는 해상교통로와 제주남방 해양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해야한다는 군 당국의 주장을 받아 적고 있다.)

해상교통로 확보나 해양자원 보호를 위해 군사기지를 짓는다고 하지만, 그일은 어느 나라나 해양경찰(Coast Guard)이 맡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공해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국 관계 관료들 공조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금도 "바다를 제패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지만, 현대의 대양은 일국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이 평화롭게 공유하고 관리하는 대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 천주교 미사 천주교 제주교구에 속한 사제와 신도들은 매주 목요일 강정마을 해안에서 평화의 미사를 드린다. 그리고 개신교 목회자들도 매주 월요일 이곳에서 평화의 기도를 드린다.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마음이 언제면 제대로 전달될까?  ⓒ 장태욱  강정마을
 
이렇듯 해군기지 추진 과정에 문제가 많고, 그래서 잘못을 지적하고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해서 "대한민국 국력을 약화시킨다"고 비난하거나, '친북' 혹은 '좌파'라고 쉽게 낙인찍는 일은 언론이 할 짓이 아니다.

김아무개 기자는 "광우병 사태 이후 별다른 이슈가 없던 차에 강정마을을 정치투쟁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썼지만, 대한민국에 광우병 사태 이후 별다른 이슈가 없었다는데 동의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배추파동, 4대강 사업, 한진중공업 사태,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등에서 사회가 곪아 터지는 소리가 진동하는데 말이다.<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