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렁다우렁' 사장님들, 내가 많이 애용하렵니다

사장님들 식당을 운영하는 결혼 이주민들이다. 오른쪽에서부터 리영옥씨(중국), 로즈마리씨(필리핀), 검로안씨(베트남), 티히엔씨(베트남), 제니퍼씨(필리핀) 순이다. ⓒ장태욱

근 한 달 동안 국수에 대한 책을 읽었다. 국수의 역사와 국수에 얽힌 이야기들을 발굴해서 기획기사를 쓰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런데 이웃이 이주민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베트남쌀국수를 먹었다고 자랑하며, 위치와 상호까지 알려줬다. 그렇게 해서 '어우렁다우렁'이라는 음식점을 찾아갈 결심을 했다.
 
'어우렁다우렁'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서귀포 시내에 있는 사회단체와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에 수소문을 해봤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게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까? 이 식당이 내가 7년 전 회원으로 가입해서 후원하고 있는 '외국인평화공동체'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라고 한다.
 
아내와 함께 식당을 찾아갔다. 우선 (사)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부설 '어우렁다우렁' 사업단의 김세철 단장을 만나 그간의 상황을 들었다.
 
"사회적기업으로 가능성 큰 일... 단기 매출로 판단해선 안돼"

김세철 단장 (사)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부설 '어우렁다우렁' 사업단의 김세철 단장이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장태욱

이 사업은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자립형지역공동체 사업에 선정되면서, 제주도의 재정지원을 받아 지난 2월 23일에 문을 열었다. 처음 함께 시작한 다섯 명의 결혼 이주민들이 지금까지도 사업의 주체다.
 
주방에서 세 명이 일하고, 홀에서 두 명이 손님들 시중을 든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리영옥씨(중국), 로즈마리씨(필리핀), 검로안씨(베트남) 등인데, 이들은 친정 나라가 서로 다르다. 이들의 친정국과 만들어내는 음식의 국적이 이 음식점으로 하여금 다문화 식당이 되게 하는 근거다.
 
"지난 2월, 가게를 개업하기 전에 2주 동안 음식을 만들고 약 500명을 대상으로 시식행사를 했습니다. 시식에 적잖은 돈이 들어갔어요. 음식을 드신 손님들에게 음식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를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자극적이라 우리 입맛에 맞지 않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객들을 위해 음식에 자극적인 맛을 낮추자고 제안을 했죠. 그랬더니 음식을 만드는 이주민들이 반발을 해요. 그럴 바엔 한국음식점을 하지, 뭐 하러 다문화식당을 하냐는 거예요. 논쟁도 심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이 일이 서비스업인지라 고객들의 요구를 듣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사업이다. 김 단장은 장부를 확인하는 일만 하고 재료구입, 메뉴선택에서부터 서빙까지 모든 일은 이주민들이 알아서 한다. 그래서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주민들이지만 한국 사람들과도 잘 소통하고 사업에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한국말도 한국어 강좌들 듣는 이들보다 훨씬 빨리 익힌다.
 
사업을 이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다 보니, 적적할 때마다 이 식당을 찾아오는 이주 여성들도 늘고 있다. "한국사회에 아직 적응이 덜된 이주민들에게 이 식당은 또 다른 친정"이라는 게 김 단장의 증언이다.
 
이 식당사업이 사회적기업인 만큼 설립목적은 결혼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 확고한 지위를 가지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여기서 훈련된 결혼이주민들이 가정에서든 새로운 일터에서든 아니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든 잘 적응할 수 있을 만큼 기술과 능력을 갖출 수만 있다면 사업단은 일단 목표를 달성한 셈이 된다. 식당의 영업 매출은 그 다음 목표다.
 
"이 사업은 사회적기업으로는 가능성이 매우 큰 사업입니다. 외부에서도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하면서 많은 이들이 벤치마킹하러 옵니다. 그런데 장기적이고 섬세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단기 매출을 근거로 사업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버티기 어렵다고 봅니다."
 
김세철 단장의 말이다. 현재 '어우렁다우렁' 사업단은 행안부에 1년 동안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을 받아 지원을 받은 상태다. 김 단장은 내년에 1년 더 연장해서 지원을 받고 싶은데, 업무를 맡은 공무원들은 자꾸 실적을 강조한다. 그때마다 사업 책임을 맡은 김세철 단장의 속이 상할 수밖에. 김 단장에겐 사회가 사회적기업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보는 안목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늘 있다.
 
단골 손님 "아이들이 좋아하고, 다른 문화 접할 수 있어서 찾아"

손님들 손님들이 식사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반응을 물었다. 이 중 한 손님은 이 음식점의 단골이라고 했다. ⓒ장태욱

김 단장과 인터뷰를 하는데, 옆 테이블에서 두 여성 손님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 도중에 끼어들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자주 오시냐"고 물었더니 오아무개 손님은 "단골"이라고 답했고, 김아무개 손님은 "처음 와봤다"고 했다.
 
오아무개 손님에게 자주 오는 이유가 있냐고 물었더니, "일단 이 식당 음식을 애들이 좋아하고, 와서 음식을 먹는 동안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음식 값이 저렴한 것도 좋은 점"이란다.
 
오아무개 손님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들이 주문한 음식을 그대로 주문해봤다. 베트남 쌀국수 두 그릇과 필리핀 만두인 '롬피아' 한 접시.
 
주문한 음식이 나올 동안 주방에서 필리핀 요리인 '바나나큐(바나나 튀김)'를 서비스로 내왔다. 바나나를 기름에 튀겨서 꿀을 입히고 참깨를 발랐는데, 우리나라의 고구마 맛탕과 요리법이 비슷하다. 주방에서 새로운 메뉴로 개발 중인 요리라고 했다.

롬피아 밀가루를 반죽해서 만든 전병 속에 채소와 당면을 가득 채워 넣고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필리핀 만두다. ⓒ장태욱

주문한 음식 중에서 롬피아가 먼저 나왔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만든 전병 속에 채소와 당면을 가득 채워 넣고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음식이다. 고소하고 음식의 뒷맛이 낯설지가 않았는데, 아내도 "맛이 괜찮다"고 했다. 오아무개 손님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한 조각씩만 먹고 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정말로 아이들 입맛에도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베트남 쌀국수가 나왔다. 국물 맛이 마치 우리나라 사리곰탕 육수와 비슷하다. 국수 외에 돼지고기 편육 한 점과 새우 두 마리가 들어 있다. 쌀국수는 처음 먹어보는 지라, 입에 들어가는 느낌이 다소 어색하다. 밀가루 국수는 입으로 '호르륵' 들어갈 때, 면의 탄력이 입술에 전해지는 반면, 쌀국수는 면의 탄력이나 쫄깃한 맛이 덜하다.
 
하지만 먹고 난 뒤의 느낌이란, 밀가루 국수는 배가 빨리 부르고 빨리 꺼지는 반면 쌀국수는 천천히 배가 부르고 오랫동안 속이 든든했다. 국물 맛 또한 일품이라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베트남 검로안씨 "한국인 입맛에 맞게 바꿨어요... 자신있고 재밌어요"

검로안씨 주방에서 베트남 요리를 맡고 있다. 베트남에서 3년 전에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결혼 전에는 요리를 거의 해보지 않았다가 한국에 오니 베트남 요리가 그리워서 조금씩 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요리에 재미와 자신감이 모두 붙었다. ⓒ장태욱

베트남 쌀국수를 만든 요리사 검로안씨에게 대화를 청했다.
 
검로안씨는 베트남 호치민시 남쪽에 있는 '킹상'이라는 도시에 살다가 3년 전에 결혼해서 한국으로 왔다. 남편과 생활하고 있고, 아직까지 자녀는 두고 있지 않다. 자신이 이 식당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남편은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결혼하기 전엔 요리하기 싫어서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만 먹었어요. 한국에 오기 전엔 음식을 만들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 한국음식에 적응이 안 되서 고향음식이 자꾸 생각난다 말입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미혼 여성들이 부모와 함께 살면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니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상황이 비슷한 모양이다. 그렇게 조금씩 해본 요리인데, 여기 와서 교육을 받고 반복적으로 훈련을 해서 이젠 어엿한 요리사가 되었다.

베트남 쌀국수 국물 맛이 마치 우리나라의 사리곰탕의 육수의 것과 비슷한데, 국수 외에 돼지고기 편육 한 점과 새우 두 마리가 들어 있다. 쌀국수는 밀가루 국수에 비해 면의 탄력이나 쫄깃한 맛이 덜하다. ⓒ장태욱

"이 일을 시작할 때 처음엔 걱정이 많았어요. 한국 손님들이 처음엔 향이 세다고 하고 입에 맞지 않다고 해서 음식 만드는 법을 자꾸 바꿨어요. 이젠 자신도 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고향에 전화했더니 엄마가 잘한다고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한국 손님들이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고 할 때마다 속이 상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라고 했다. 시집오고 처음 한국음식을 먹었을 때 입에 맞지 않았던 것과 매한가지 아니냐며, 문화적 차이에 대해 포용할 수 있는 여유도 보였다.
 
검로안씨는 매일 오후 9시에 퇴근하는데, 그 시간이 되면 남편이 아내를 '모셔가기 위해' 문밖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결혼 3년차인데 여전히 신혼의 달콤함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짠돌이 아내는 어우렁다우렁을 두고 "괜찮은 식당"이라며, "귀한 손님을 접대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식당에서 싸가지고 온 롬피아는 집에서 꺼내자마자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맛있다는 말은 다 먹고 난 뒤에 그 입에서 나온 말이다. 먹느라 입이 바빴을까?
 
국수 한 그릇과 롬피아 한 접시가 각각 5000원이다. 2만 원이면 우리식구 네 명이 외국의 문화도 맛볼 수 있고, 새롭게 우리의 이웃이 된 결혼 이주민들도 후원할 수 있으며, 괜찮은 사회적기업 하나 키워낼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당분간 외식 장소를 고르는 데 별 고민이 없지 않을까? / 장태욱 시민기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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