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특별위원회에 숙제를 떠넘긴 미의회

신용등급 강등 이후 기록적인 변동성을 경험했던 지난 한주간의 미국의 주식시장은 다우, 나스닥 및 S&P500이 1%에서 1.7% 사이의 하락을 보이며 마감되었는데 이 3대 지수 모두가 어제 하루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결정이라는 호재에 힘입어 말끔히 만회되었다.

신용등급 강등의 쇼크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단기적으로 그칠 것 같다. 그러나 이것으로 미국의 더블 딥 우려가 가시는 것은 아니며 유럽 여러 나라들의 재정위기도 그대로다. 안심할 수 없는 이유들은 여전하던가 사안에 따라서는 더 늘어나고 있다.

우선 은행 부문이 좋지 않다. 유럽 신용불량 국가의 국채에 대한 보험상품인 신용부도스왑(CDS)은 절반 이상이 미국의 대형은행들에 의해 상품화되었기 때문에 만일 이 국채들에 디폴트(비자발적 만기 연장 포함)가 발생하면 이들 미국은행들이 큰 손실을 뒤집어 쓸 것이라는 걱정이 나돌고 있는가 하면 뱅크 오브 어메리카는 과거에 AIG, 패니메이, 프레디맥 등에 매각했던 주택모기지 대출 서류에 허위 사실이 발견되어 이들로부터 거액의 소송을 당하고 있다.

위기의 와중에 메릴린치 증권사까지 인수하여 미국 최대은행의 하나로 커진 이 은행의 주가는 어제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연초 대비 45.7%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자산규모로 프랑스 제2의 은행 소시에테 제네랄의 주가도 연초 대비 반 토막이다. 그리스 등 신용불량 국가의 국채를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다.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 의회가 설치하기로 한 재정적자 감축 특별위원회(super-committee)에 있다. 채무한도를 인상하여 주는 조건으로 재정적자 감축을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으나 줄다리기 끝에 타결을 본 것은 2012년 세출 예산 3조7천억의 0.05%에 불과한 210억불을 삭감하기로 한 것이 고작이었고 정작 중요한 향후 10년간의 감축은 신설되는 특별위원회가 숙제를 떠안았다.

특별위원회에 숙제를 떠넘긴 미의회

정부지출이 가장 필요한 때에 재정적자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의회에서 매듭지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지난 주 이코노미스트 지의 지적이 정곡을 찌른다.

"미 의회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급한 대로 정부의 지출을 늘리고 그 대신 장기적으로 복지는 줄이고 세금은 늘리는 등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그랜드 바겐을 끌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단기적으로만 재정지출을 줄이는 데 급급했고 장기적인 적자감축의 숙제는 특별위원회에 미루었다. 순서를 그르쳤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만 키웠다."

핵심과제는 성장이다. 재정적자를 줄이는 근본적인 길은 성장을 통해서다. 그러나 성장 시나리오를 써나가는데 있어 정부와 시장이 어떻게 역할분담을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회보장(social security)이나 메디케어 지출에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민주당과 세금은 절대로 올려서는 안 된다는 공화당이 서로 겹쳐지는 부분이 없이 팽팽하게 대결하고 있다. 이쯤 되면 재정적자감축 특별위원회는 이데올로기 논쟁에 빠질 수밖에 없다.

2008년 글로벌 대침체의 촉발이 부실한 은행들에 의한 것이었다는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정책 수단도 바닥이 나고 있다. 초 저금리 등의 통화정책 일변도로는 위기탈출이 어려워 보인다.

화폐시장으로부터 실물시장으로 시야를 돌릴 때다. 여기야말로 시급하면서도 초당적이며 초 이데올로기적인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여러 분야들이 있다.

초당적 개선분야 많은데도

예를 들면 낡은 사회간접자본에 정부 재정으로 투자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가 최후의 고용주(employer of last resort)로서의 역할을 해 주는 것, 부자증세 또는 세율인상을 하지 않더라도 세제의 단순화와 탈세 방지로 전체 세수를 늘리는 것, 의료보험 창구 일원화를 통하여 의료보험 수가를 감독, 통제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하여 나라 전체의 의료비 지출 비중을 낮추는 것 등이다.

초 저금리 하에서는 은행은 이익을 내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한편에선 정부가 실물시장을 위한 조치들을 과감하게 추진하려 해도 온 나라가 이데올로기 논쟁에 몰입하면 여기에도 손이 닿기 힘들지 않겠는가.

최소한 차기 대선까지는 미국 경제의 눈에 띄는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만큼 세계경제의 회복은 늦어 진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 기사는 '내일신문'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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