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삼성이 제주사회에 주는 교훈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회사의 경영실적이 일취월장하고 있을 때도 ‘거안사위(居安思危)’를 곱씹으며 자만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노심초사로 오히려 몸을 낮추며 겸허하게 자아를 성찰했다. 이러한 겸손과 긴장의 자세가 오늘날 삼성을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우뚝 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한번쯤은 삼성이 국력 증진에 일조를 했다는 사실에 공감을 할 것이다. 물론 삼성이 가끔 보여 준 그늘진 모습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한국은 삼성에 의해서 잠을 깨고 삼성에 의해서 잠에  든다"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삼성의 일거수일투족이 한국 경제의 바로미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필자가 겪은 일련의 과정은 ‘도요타의 악몽’과 오버랩 되면서,"과연 이런 것이 삼성의 진면목인가?"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삼성에 대해 가졌던 무한신뢰가 실망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다.

# 하루에 '3초씩 틀리는' 태엽시계만도 못한 삼성 디지털 시계

그 사연은 이렇다.
1년 여 전 나는 삼성전자에서 만든 제품 몇 개를 사용하던 중 제품 속의 디지털 시계가 모두 하루에 3초 정도 빠르게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날로그 시계도 1년에 단 몇 초의 오차 밖에 발생하지 않는데, 명품 디지털 시계에서 이처럼 큰 오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납득이 안됐다.

하여, 삼성A/S센터를 통해 사실을 문의한 결과 어렵게 삼성전자 본사로부터 “프로그램 개발 시 하루 허용오차 기준이 5초로 설정돼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기억 속에나 남아있는 20세기 진자시계도 이러지 않았을 터인데,  21세기의 첨단 디지털 시계가 이렇다는 삼성의 '당당한 아이러니'에 느끼는 황당함이란…. 필자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내용을 제품 설명서의 어디에도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필자는 삼성전자 본사와 감사 부서, 심지어 삼성전자 최고위층에까지 우편과 이메일을 통해 제품과 마케팅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삼성이라는 거대한 철옹성에 안주해 있는 경영진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결국 1년여의 각고와 지루한 인내 끝에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어렵게 소통의 문을 열긴 했다. 그렇지만 삼성에서 해 준 답변은 제품의 품질 개선이 아니라 제품 설명서에 미비된 부분만을 보완하겠다는 상투적 내용뿐이었다.

아날로그는 커녕 흔들이 태엽시계에도 못 미치는 디지털 시계, 소비자와의 소통을 외면하고 해태하는 오만불손, 강자에 약하고 약자엔 강한 이중적 고객정책 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삼성이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올 디지털 삼성’은, 결국 몸은 첨단 정보통신으로 감싸고 있으나 사고는 석기시대 수준에 머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애당초부터 너무나 미약한 한 소비자가 계란을 가지고 거대한 바위를 치는 격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털고 상생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삼성의 공언을 믿었다. 그렇지만 그 기대는 너무 쉽게 무너졌다. 내 마음은 왠지 벌레를 씹은 듯 씁쓸하기만 했다.

# 애플의 질주,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사면초가'에 처한 삼성
 
최근 이건희 회장이 은둔 경영을 끝내고 출근 경영에 나선 것은 결국 삼성의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미국 애플의 2분기 매출액과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2%와 125%나 늘어났다. 스티브 잡스조차 “사상 최대의 분기 실적에 우리도 전율을 느꼈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애플의 성공은 ‘비즈니스 생태계’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이제 전 세계 IT 기업들은 애플의 질주 본능에 공포를 느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터에 애플은 특허 소송으로 삼성의 목줄을 조이고 있다. 게다가  영원한 우군(友軍)으로 생각됐던 구글마저 모토로라를 집어 삼켰다. 가뜩이나 치열한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적인 진검승부가 시작되면서 국내 IT제조업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놓일 수도 있게 되었다.

삼성이 이처럼 세계시장에서 경쟁력과 주도권 측면에서 위협을 받는 것은 넘치는 오만과 소통 부족으로 생태계의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 하에서 차별적인 부가가치의 창출은 협력 파트너들과의 시너지에서 나온다. 혼자서 모든 걸 틀어쥐고 있는 삼성의 폐쇄적 수직결합 구조는 산업성장 단계에서는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벤처기업인 출신 안철수 교수는 삼성을 '삼성 동물원'으로까지 비유한다. 우리나라 중소업체들은 대기업의 ‘예속적 하도급 동물원’에 편입돼 대기업이 주는 최소한의 먹이로 연명하다 끝내 절명하고 만다.

반면 애플은 중소협력업자들이 공생 발전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생태계 전략으로 질주하고 있다. 동물원이 갑(甲)과 을(乙)의 일방적'폐쇄적' 불평등 관계라면, 글로벌 기업 생태계는 상생공존의 동반자 관계이다.

애플 생태계의 끝없는 진화는 포용과 경쟁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존의 토양 제공을 통해 참여 협력업체들의 자발적인 혁신 노력을 유도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안 교수는 "삼성이 폐쇄적 수직결합 구조를 유지함으로써 이런 역동적·창의적인 생태계 혜택을 누리지 못해 지금의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유능한 협력업체들 또한 잠재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삼성 동물원'에 갇혀 서서히 질식해 죽어간다”고 지적한다. 애플의 신화는 결코 기적이 아니다. 공생을 추구하는 가장 기초적인 인류애의 발로일 뿐이다.

# '빈곤화성장'의 암초를 만난 제주...'제주형 생태계'를 구축하라!  

그렇다면 제주사회가 세계 굴지기업 삼성의 위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 제주도는 현재 인천경제자유구역 등 경쟁상대 지역의 약진과 한·유럽연합(EU) FTA 체결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나아가 이를 극복하고 특별자치도 체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선진 제주를 건설해야 하는 역사상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경제를 덮기 시작한 짙은 먹구름은 제주경제에도 상당기간 많은 어려움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3개월 전만 하더라도 세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 회복 국면에 들어선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더블딥의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저성장이 현실화되면 경제는 성장하는데 국민생활은 더 어려워지는 '빈곤화 성장'현상이 심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제주사회의 갈등과 대립 구조는 더욱 공고해 질 것이다. 특히 성장 동력을 수출에서 찾기 위해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제주 도정으로서는 암초를 만나는 셈이다.

제주 도정은 삼성의 위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자기성찰을 통한 겸손과 포용, 적극적인 소통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도정의 협력주체들과 함께 애플을 뛰어넘는 개성과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제주형(型) 사회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 안에서 이들과 같이 공생할 수 있을 때 제주사회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경쟁력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암시하는 것처럼, 지금 제주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도정 협력주체들과의 건전한 생태계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폐쇄적 특성에서 형성된 제주 특유의 강한 배타적 자주문화는 생태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또한 '자존'과 '자립'의 바탕이 될 수도 있는 이러한 자주문화는 나름대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경이 무너지는 ‘세계화’, ‘개방화’ 시대에서는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 "거시적안목과 화합이 바탕"..."사리를 쫒는 편협한 판단은 독"

도정이 '글로벌 생태계' 경쟁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 타성을 답습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제주 사회는 지구촌의 험악한 생존경쟁에서 밀려난다. 더 이상 진로를 찾지 못해 미로 속에서 헤매다 결국 도태될 수도 있다.

제주도의 정책은 도민 생활을 좌우하며, 후손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도정은 거시적인 안목과 화합을 바탕으로 한 소통으로 지속적인 성장 비전을 제시하는 도민사랑의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사리(私利)를 쫓고 편협한 판단과 인기에 영합하는 저급한 정책을 펴서는 안된다. 자신들의 책무를 남용하고 오도하는 근시적인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에서 벗어나야한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곧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지금 제주 사회에 진정 필요한 건 구색 맞추기와 생색내기, 분칠(粉漆)한 수사(修辭)로 포장된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상생번영으로 동반성장하는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과감한 선택과 실천만이 필요하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면 안된다. 바로 지금, 과감한 선택과 혁신을 놓치면 그 결과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70억의 세계인은 거침없이 새로운 성공신화를 창조해 가는 애플의 '질주'와 거대 공룡 삼성의 '위기'를 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삼성의 위기가 삼성만의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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