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칼럼] ‘민족시인’과 ‘지방의원’은 양립불가능한가?

   
요즘 제주도 문화계에 회자되고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최근 발간된 ‘제주작가'에 실린 김경훈 시인의 ‘오승국에 대한 보고서’가 그것.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가 발간한 문예지 ‘제주작가'14호에 김경훈 시인은 ‘오승국에 대한 보고서’, ‘수재단란주점 도우미 이정하’, 제주4·3유족회 부회장 이중흥씨를 주제로 한 ‘제삿날’ 등 세편의 시를 올렸다.

이 중 현재 4·3연구소 사무처장인 오씨를 소재로 한 ‘오승국에 대한 보고서’가 단연 세간의 화제다.

오해 마시라. 세간의 입방아라면 보통 은밀하게 쑤군대는 얘기로 받아들일 터, 이건 경우가 다르다.

한번 이 시를 읽어본 사람들은 박장대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지게(전적인 동의를 표하는) 되는 바, 필자 또한 다르지 않다.

평소 문학과는 거리가 먼 문외한이라 김경훈의 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지만, 이 시(詩)야 말로 정말 문학적 해석이 필요없이, ‘가슴깊이 다가오는(?)’ ‘사실주의적 묘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필요 없다. 한번 전문을 읽어 보시라.

오승국에 대한 보고서

제주도 남제주군 태흥리 오씨 집안에 굴러도 안 깨질 것같이
얼굴이며 몸매며 하물며 손가락까지 잠지까지 먹돌 닮은 놈 하나 있어
먹돌도 뚫다 보면 구멍이 난다는데
이놈은 구멍은커녕 오히려 잘만 굴러다니는구나
88년 민주화 데모 때 양복 입고 태극기 든 채 시위대의 맨 앞에 섰다가
팔다리 하나씩 붙들려 잡혀가면서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는
이놈 넉살 하나는 정말로 남 주기 아까울 정도인데
타고난 낙천성 하나로 이놈은 절대 암도 안 걸리고
절대로 남들보다 먼저 죽지 않는다는 그런 의학적 견해도 있더라
헌데 이놈이 아직 정치 미련을 접지 않고 있으니 어이할꼬
이미 제주4.3도백이 다 된 마당에 그까짓 지방의원 정도야 무슨 대수랴
오히려 자타가 공인하는 민족시인이 되어 이 나라 이 민족을 노래함이 옳지 않은가
사람 사는 세상, 이웃들의 아픔과 기쁨을 온몸으로 발산함이 옳지 않은가
낙천도 분노의 한 표현이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으니
그래, 굴러라 구르다 보면 먹돌도 더 단단해지고 더 윤기가 나고
그래, 굴러라 자갈길 흙먼지 길도 반듯해지리니 그래 더 먼 길을 굴러라
굴러서 삼팔선 가시철망도 깔아뭉개고
분단의 사슬, 제국의 야욕도 먹돌로 압사시켜 버리면
민족의 탄탄대로도 보란 듯이 뚫리지 않으랴
언젠가 먹돌에 구멍이 나는 날
정녕 제주4.3의 핵탄두, 통일의 깃발 들고 다시 행렬의 선두에 서지 않으랴

최소한 오승국 처장을 한번만이라도 만나보았던 사람들이라면, 김경훈의 표현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 김경훈 시인
‘태흥리 오씨집안의 먹돌같은 놈’에서부터 시작하여, 88년 태극기 들고 시위대 맨 앞에 섰다가 잡혀가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넉살, “죽어도 암에 걸리지 않으며 남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는 표현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시를 계속 읽지 못하게 한다.

급기야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구절에 눈을 돌린 순간, 이미 4·3도백이 된 오처장에게 지방의원 꿈을 접으라고 넌지시 조언하는 김경훈의 익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가히 압권이 아닐 수 없어, 포복절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부분은 몰라도 지방의원의 꿈을 접고 ‘자타가 공인하는 민족시인이 되라’는 김경훈의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 “민족시인과 지방의원은 양립할 수 없는가" 하는 말이다.  오히려 ‘민족시인이 지방의원이 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혹자의 얘기대로 ‘4·3비례대표’라도 가능하다면 오처장을 지방의회에 진출시켜 ‘민족시인 1호 지방의원’을 탄생시켜 보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지 않은가.

어쨌든 이 시를 보며, ‘오승국은 행복하다’는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그에게는 김경훈이라는 후배 겸 친구가 있으니 말이다.

▲ 지난 4월4일 강창일.문학진.임종인 의원 등 국회 과거사 모임 국회의원들이 4.3유적지를 방문할 때 오승국 4.3연구소 사무처장이 선흘곳 묵시굴에 대한 설명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겨우 추스리며 이어진 그의 시를 본다.

‘제삿날’

제주4·3유족회 부회장 이중흥씨를 소재로 한 시다.

이제 김경훈은 앞의 시와는 달리,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아버지 때문에 인생 조졌다며 제사상을 차버린, 연좌제 때문에 육사진학이 거부당했던 이중흥 씨의 아픈 가족사를 보며 다시금 4·3의 절절한 역사를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경훈 그는, 우리를 웃기게도 하고 울리는 연출자이자 연극배우다.

“참, 그는 수눌음에서 잔뼈가 굵은 마당극 배우였지...”

제삿날 - 제주 4·3유족회 부회장 이중흥

아버지 때문이라고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 조졌다고
아버지 제사상 발로 차버리고 나는 울었다
아버지 몰래 어머니 몰래
누가 볼세랴 남몰래 나는 울었다

육사에 합격해도 못 들어간 게
연좌제 때문이라고 아버지를 저주하며 살았다
죽은 날 몰라 생일날 제사상에 오시는 아버지
나는 그날 끝내 제사에 가지 않았다

제사상 엎어지면 아버지 안 오시랴
안 오시는 아버지 그리며
어머닌 그예 울며 다시 상 차리고
어머니 죽기 전까지 나는 사과하지 못했다

못난 아들 원망 한번 했으랴만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는 또 그렇게 혼자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 제사상을 차리며

아버지 때문이 아니우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수다
나는 목놓아 울었다 눈물 콧물 줄줄 질질 흘리며
불초한 이 자식은 평생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아버지 어머니 부르며 대놓고 울었다

제사상 옆에서
장성한 자식놈들이 날 민망하게 바라봐도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