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도 항만개발과 김성민

제주외항건설공사가 지난 달에 준공됨에 따라 제주항은 명실상부한 국제관광미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27년에 최초로 개항(開港.국제무역항)하였으나 당시는 일정(日政)시대였으므로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에는 사실상 제2의 개항을 맞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주항은 탐라국 시대에 ‘건입포(建入浦)’라 하여 일명 ‘건들개’라 불려져 왔으며 이후 조선시대인 1730년에는 산지항(山地港)으로 개칭되어 군항으로 이용하였었다.

우리나라 본토 및 외국과의 교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탐라국의 고후왕(高厚王)이 신라의 탐진(眈津)(지금의 강진(江津))에 이르러 신라왕에게 입조(入朝)한 후 ’건들게‘로 귀국하여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외국과의 교류는 1928년 8월 제주항 축조공사때 돌산(突山.졸락코지, 지금의 제주시수협 동쪽)에서 전한시대(前漢時代)의 거울(漢鏡)과 신(新)나라때 엽전(貨泉) 등 중국 금속문화유물이 다량 발굴된 것으로 보아 서기 15~20년경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1920년대 제주항.

제주항은 이렇듯 1948년 우리도에 민간항공기가 취항하기 전까지 유일한 관문역활을 해왔으나 외해에 노출된 해안지형상 인공적인 항만건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조건을 안고 있었다.

최초의 항만건설은 1735년에 김정(金政) 목사(牧使)가 전 도민을 부역하게하여 산지항 방파제 80간(間)과 내제(內堤)를 쌓았으며, 정부예산이 최초로 투입된 것은 1926년 일정예산(日政豫算)으로 총사업비 30만엔을 투자하여 서방파제 310m를 건설하였다.

지난해 제주항의 물동량은 약 740만톤으로 항공기를 포함한 우리도 전체 물동량의 70%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가히 지역경제의 중추혈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일제시대 국제여객선인 기미가요마루호(君代丸)가 최초 운항한 이래 가장 많은 5만5천명의 외국인 크루즈 관광객과, 국내 관광객 160만명 정도가 여객선을 이용하여 제주항을 다녀갔다.

제주항은 매년 이용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항만시설도 괄목할 만한 신장을 계속해왔다.

이번에 준공된 제주외항건설공사는 총 공사비 3,700억원을 투자하여 1999년부터 1. 2단계로 나누어 건설되었다.

▲ 제주외항 조감도.

8만톤급 국제크루즈선 1척, 2만톤급 여객선과 화물선 각 1척이 동시에 접안 할 수 있는 제주외항은 첨단

▲ 제주도 항만개발과 김성민. ⓒ제주의소리
친환경공법과 다양한 친수공간 등 종전의 물류중심기능에서 시민의 여가와 국제크루즈선의 관광수요를 동시에 총족할 수 있는 친환경 녹색항만(Green Port)으로 건설되었다.

제주자치도에서는 오는 9월 21일 제주외항 개장식을 갖기로하고 해양수산국장(오익철)을 단장으로 추진기획단을 구성하여 제2의 개항에 걸맞는 야심찬 개장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주항이 세계가 찾는, 세계로 가는 명실상부한 국제자유도시의 관광미항으로 비상하길 기대해 본다. / 제주도 항만개발과 김성민

<제주의소리/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 외부기고는 <제주의소리> 보도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