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립선암 절제술 후 조직검사에서 다른 부위로 전이된 흔적이 없다

지난 번 [환란과 소망 그리고 소명]을 통해서 나의 근황을 알려드렸듯이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집도의 소견대로 수술을 잘 받았습니다.

수술하면서 떼어낸 조직을 병리학 실험실에 의뢰해서 검사(biopsy)한 결과 '암'은 "전립선내에서만 자라고 있었고 다른 부위로 전이되지 않았다"는 통보를 전화상으로 어제 집도의로부터 받았습니다.

양쪽 손과 발 그리고 목에 메였던 '사슬'이 일순간에 벗겨지는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집행유예!" "Thank God!"

그간에도 '수술을 할 수 없다'는 나의 기존 주치의와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집도의 간에 눈에 띄지 않는 실겡이가 있어서 나는 좀 곤욕을 치뤄야 했습니다.

수술을 끝내면서 방광을 거쳐 요도로 해서 밖으로 연결해 놓은 고무호스(catheter)를 제거하는 문제였습니다.

집도의는 일주일째 되는 날 나의 집가까이에 있는 '주치의'에게 가서 뽑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주치의 사무실에 약속을 해 놓고 지난 11일에 찾아 갔습니다. 주치의는 내가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펙스로만 받은 상태였습니다.

나의 상태를 보더니만, "일주일만에 뽑는 것은 무리다." "만약 무리하게 뽑아내다가 중간에서 요도가 터져서 출혈하는 경우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일주일 후에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났습니다. 집도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의 집도의는 "무슨 소리하는거요, 나를 화나게 만드네..."하면서 "내일 당장 나에게 오라. 제거해 줄 것이다"하는 것입니다.

왕복 6시간이 넘는 거리를 아내와 함께 소풍삼아 갔다왔습니다. 쉽게 아무탈도 없이 제거되는 사안이었습니다.

만약 1주일을 더 지체하다가 이곳 가까운 곳에서 했더라면 업무복귀가 더 연장되는 사태를 맞습니다. 고역도 더 치뤄야 하고...

산너머 또 산이 있고 물건너 또 물이 있듯이, 카데터를 제거하고 나니 '요실금' 현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집도의로부터 수술전에 상세히 설명을 들은 바가 있었습니다.

남성들은 전립선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전립선은 방광(오줌통) 바로 밑에 있는 기관으로 소변을 통제하는 기능을 하며 또한 정액을 사정하는 기능을 합니다.

여성은 전립선이 없어도 소변 통제가 그 주변 근육들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가능하답니다.

전립선 절제술을 받은 사람들은 퇴화된 근육들을 다시 강화시켜서 그 기능을 대치해야 하니까 상당히 힘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답니다. 수개월에서 1년 걸리며 또는 영원히 기능을 회복 못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성기가 발기되지 않을 수도 있고...

미국 이민생활에서 오래전에 뉴욕시내 한가한 동네에 문닫기 직전의 한 세탁소를 헐값에 사서 6개월정도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양복 상하의를 한 벌로 가지고 오는 경우는 퍽 드물었습니다. 바지만 한짝 달랑 들고 오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전표를 끊어주는 일은 양복 10벌을 두고 끊거나 바지 한짝을 갖고 끊거나 일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참 짜증이 났습니다. 더욱 짜증나게 만드는 것은 바지에서 풍기는 악취가 내코를 찌릅니다.

그것은 드라이클리닝 대상물이 아닙니다. 그냥 물세탁기에 넣어서 비누도 독하게 넣어서 세척해야 냄새가 가십니다. 나에게 가져 오지 않고 동네 '런더리'(laundromat,물빨래터)에 가져가는 게 오히려 낫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때 그 할아버지들이 당하는 고충이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역지사지'라고 하던가요. 미국인들은 "Put yourself in his/her shoes"(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서 봐라)라고 아주 쉽게 표현합니다. 그래야 남의 사정을 안다는 것이지요.

나의 어머님은 "너, 나 돼 봤나?"라고 하시더군요. 어머님은 폐암이 뇌로 전이되어서 아무런 손도 못 써보고 1996년 6월 6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암은 유전된다"고 하는 표현은 잘 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암은 유전인자(들)의 발현이다"라는 게 정설로 굳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암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즉, 유전자들이 어떤 악조건을 만나면 '암'으로 돌변하여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악조건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악조건이란 것은 바로 환경(음식, 공기 등)이요 생활습관(스트레스, 끽연, 음주) 같은 것입니다.

나의 경우는 아무래도 '스트레스'였지 않나 곰곰히 반추하고 있습니다. 미국 이민생활이 순탄치가 않습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의사분은 자연식을 하고 좋은 공기를 마시고 햇볕을 쪼이면서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살면 암도 치료되고 예방이 된다고...

자연식이란 비싼 음식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번 일로 인해서 기름진 음식은 일체 '구축'이 되었습니다. 주로 채식 위주의 식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이제 '스트레스' 받는 일을 줄이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게 가장 힘든 일입니다. 내 전공이 '역사학'이 아니고 '상담심리'인데도 말입니다. 남의 스트레스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 일가견이 있는데 나의 스트레스는 그렇게 쉽게 컨트롤이 안됩니다. 그래서 '신은 공평하다'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다음 주중으로 맡은 '소명'으로 복귀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Slow and Steady!"라고 자신에게 말하면서...

엊그제 스위스에 30년을 살던 동창분이 나주에서 황토집을 짓고 1년을 살 것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오는 9월 1일부터 입주한답니다. 그래서 답장하기를 "황톳집에서 달팽이 같은 삶을 살고프다"고 했습니다. 나더러 '왕방강 고르라'(=와서 보고 가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전라도 길은 황톳길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황톳길.' 상상만해도 살맛나는 집같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집짓고 내 아내와 오손도손 소꿉장난하듯 살리라....

[제주의 소리] 네티즌님들의 건안과 건투 그리고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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