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이 김홍구, 오름속으로] 남소로기, 그대 진정 변방에 있는가!

월림-신평곶자왈 중심에 남소로기가 있었다. 

지금 남소로기 남쪽 길건너편에는 거대한 공사가 진행중이다. 제주의 신화역사공원과 제주영어교육도시가 그것이다.  합쳐서 대강 240만평에 이른단다.  땅 100평씩 24,000명에게 집을 지어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땅덩어리다.  하지만 그 울창한 곶자왈은 완벽하게 파헤쳐져 있다.

▲ 신화역사공원의 공사 전과 후 ⓒ김홍구

"곶자왈사람들"에 보면 곶자왈이란 "화산분출시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암괴로 쪼개지면서  분출되어 요철지형을 이루며 쌓여있기 때문에 지하수 함양은 물론, 보온·보습효과를 일으켜 열대식물이 북쪽 한계지점에 자라는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식물이 남쪽 한계지점에 자라는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을 말한다라고 써있다.

예전엔 제주사람에게 곶자왈이란 아무런 쓸모없는 땅이었다.  그저 돌덩이가 있는 빌레에 불과하여 농사도 지을 수 없어 목장으로 활용하거나 헐값에 팔아버리곤 했다.  제주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곳은 제주의 목숨을 움켜진 지하수를 만드는 곳이며 인간의 내뱉는 숨을 정화하여 살이가는데 꼭 필요한 들이쉬는 신선한 공기를 만들며 제주의 자연을 이루는 근간이 되는 곳이다.  또한  온갖 식물이 자라며 숲을 이루고 온갖 새가 서식하며  온갖 곤충들이 공존하는곳이다.  제주사람들이 애써 키우는 소와 말의 방목지가 되고  어렵던 제주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 도너리방향 곶자왈 ⓒ김홍구

이러한 제주사람들의 무지를 이용하여 개발하는 사람들은 싼값에 곶자왈을 사들여 아무런 자연에 대한 의식도 없이 땅을 마구 파헤치고 있다.  이 개발의 중심에 신화역사공원이 있는 것이다.

남소로기는  해발 339m, 비고 139m 이다.  남소로기 뜻의 유래는 여러가지다.  남소로기에 소나무가 많다고 하여 한문으로 남송악,  풍수적으로  저지에 있는 새오름에 견주어 남쪽에 있는 이 오름이 솔개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남소로기(소레기, 소로기는 솔개의 제주어), 호랑가시나무를 제주어로 남소욍이라하는데  이를 두고 불리워졌다고 하는 설도 있다. 

▲ 남소로기와 도너리-한라산 방향 ⓒ김홍구

남소로기는 남쪽의 정상을 기점으로 깔대기 모양의 원형굼부리와 반원형의 말굽형 분화구가 있으며 북쪽에 조그마한 알오름을 가지고 있다.  오름을 오르는 길에 녹차밭이 조성되어 있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그 녹차밭 너머에 널개오름과 산방산, 바굼지, 멀리 절울이, 그리고 모슬개와 그옆에 가시오름까지도 멋드러지게 보인다.

▲ 군산-다래오름-널개오름-산방산-바굼지-모슬개-가시오름 ⓒ김홍구

정상에서 바라보는 오름은 더없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도너리를 비롯하여 원물오름, 믜오름, 골른오름, 그리고  북오름과 거린오름, 군산과 다래오름,  널개오름, 산방산, 바굼지, 절울이, 모슬개, 가시오름, 문도지, 새오름이 보이며 날이 좋으면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한라산에서 부터 제주의 남서쪽까지 모두 보이는 조망이 좋은 오름이다.

▲ 남소로기 정상에서 바라본 오름들 ⓒ김홍구

이 조망이 좋은 오름에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 신화역사공원 현장이다.  쳐다볼 수록 가슴이 막막해지는 것이 너무나도 답답한 현실이다.  제주의 신화와 역사를 간직한 진정 제주다운 공원이 들어서나 했더니 이 소중한 제주의  허파 곶자왈을  깡그리 들어내고 들어서는 것이 관광리조트다.  영상테마파크, 워터파크, 숙박시설, 우주항공박물관 등 이런 것이 제주의 신화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이는 1만8천여명의 신들이 있다는 제주의 땅에 일제시대에나 있었던 말뚝을 박는 일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어찌보면 그리스로마신화보다 더 웅장한 "여신의 나라"  제주를 폄하하는 일이다.

▲ 신화역사공원 안내간판 ⓒ김홍구

남소로기에서 도너리까지 걸어가 보라.  제주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인간에게 필요한 것인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알 수가 있다.  고운잔디에 방목하는 말과 소, 오름과 곶자왈이 함께 어우러져 그 자체가 자연이 된다.  한무더기의 돌마저도 태초에 자연이 이곳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은 바람불면 웅크리고 앉아  돌이 되고  야생의 들판 곶자왈에는 원시로 향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  오면 또 오고 싶고 보면 또 보고 싶은 곳, 아득한 한라산은 자연의 어멍이며 그곳을 휘돌아 감는 바람은 제주의 아방이다.

▲ 말과 사람들 ⓒ김홍구

남소로기에는 북쪽에 조그마한 알오름이 있는데 "소로기촐리"라 부른다.  "촐리"는 제주어로 꼬리 또는
끝부분을 말하는데 멘주기촐리라고 하면 올챙이꼬리를 뜻한다.   정상과  소로기촐리 사이에 깔대기형
분화구가 자리잡고 있으며 지금은 굼부리로 내려갈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 있다.

▲ 남소로기촐리와 굼부리 ⓒ김홍구

남소로기에 주홍서나물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한해살이풀인 주홍서나물은 꽃이 아래를 향해서 피고 붉은서나물은 꽃이 위를 향해 피는 것이 다르다.  닭의장풀(달개비)도 보인다.  칡꽃도 피기 시작하고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도 나비를 보듬고 모습을 내밀었다.  이 모든 것이 남소로기에 있다.

▲ 주홍서나물-칡꽃-코스모스 ⓒ김홍구

하지만 이러한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은 이제 아쉽게도 사라지고 있다.  남소로기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언젠가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되어 신화로 이어지겠지만 남소로기에서 바라보던  웅장한 곶자왈은 이제 개발이라는 거대한 힘앞에 속수무책으로 망가져 없어져 가고 있다. 강정마을이 그렇게 힘없이 스러지듯
곶자왈도 인간의 탐욕속에 사라져 갈 것이다.  이곳에서 제주의 신화와 역사는 변질되고 죽어 버렸다.

▲ 남소로기 ⓒ김홍구

곶자왈의 중심에 있던 남소로기는 이제 곶자왈의 변방에 서서 우짖는 새가 되었다.  아마 피를 토하며 울부짖을 것이다. 지금 여느 사람의 귀에 그 소리가 들리랴마는 언젠가  곶자왈도 오름도 모두가 사라지고 없어질 때 그 울음소리마저도 그칠 것이다.  소로기는 날고 싶어 오늘도 나래짓을 한다.  오름을 품에 안고 곶자왈의 바람에 몸을 실어도 아직 떠나지 못함은 누구를 향하는 미련인가. / 김홍구 제주오름보전연구회 대표

▲ 신화역사공원현장의 용암석 ⓒ김홍구

▲ 남소로기 ⓒ김홍구

▲ 곶자왈에서 바라본 도너리 ⓒ김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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