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국이 몰려온다]② “마치 중국에 온 것 같아요” 반색
중국인 쇼핑환경.상인 회화능력 과제…지나친 행정의존도 문제

  

중국 바오젠 유한공사가 1만1000여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인센티브 관광단을 제주로 보내는 등 최근 급증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이 화제다. 중국인들의 제주관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지난 1998년이다. 1995년 장쩌민 전 주석과 1998년 후진타오 현 주석 등의 방문이 계기가 됐고, 제주에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 찾기에 대한 전설이 남아 있어 더욱 가깝게 느끼고 있다. 중국인들은 제주도를 하와이, 몰디브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해외 관광지로 꼽을 만큼 사면이 푸른 바다인 점도 그들에겐 매력적 요소가 되고 있다.
지금 제주의 호텔과 음식점, 면세점, 주요 관광지에는 중국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중국인들은 현재 연간 200만명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고, 2020년엔 1000만명이 제주도 등 우리나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중국인 1억명이 해외여행에 나설 경우 이 중 10%만 국내로 불러와도 1000만명이 가능할 것이란 계산이다. 물론 아직은 '장밋빛'이다.  <제주의소리>가 중국 바오젠 유한공사의 사상 최대 인센티브 투어단 방문을 계기로 세 차례에 걸친 르포(현지 보고) 기사를 통해 중국 관광객 수용태세를 점검해 본다. <편집자 글>

"화장실 갈 때도 휴대전화를 꼭 쥐고 가요. 중국인 관광객들이 바오젠 거리에 밀려들면서 이 곳 저 곳 상가점포에서 도움을 청하는 통역 요청이 물밀듯 들어옵니다. 저희 통역원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에요”

19일 오후 제주시 연동 ‘바오젠 거리’에서 만난 중국어 통역사 중국동포 왕춘자 씨가 스포츠 용품 매장에서 통역을 막 마치고 나온 듯 이마에 땀을 쓸어내며 가쁜 숨을 달랜다.

지난 13일부터 29일까지 중국 바오젠 그룹 사원 1만1200여명이 제주를 찾고 있다. 추산되는 경제효과만도 914억 원에 이른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이에 화답하고자 거리 하나를 통째로 선물했다. 앞으로 5년간 제주시 연동의 ‘차 없는 거리’를 명예도로인 ‘바오젠 거리’로 명명한 것이다.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제주도와 제주시는 행.재정적 지원을 통해 시설 보수는 물론 관광안내소와 공공화장실을 새로 짓고 주변에 인공폭포와 돌하르방, 시계탑 같은 조형물과 공연용 무대를 설치하는 등 공들여 몸을 단장했다.

단일 단체여행객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만큼 점포마다 상용 회화 안내서를 비치해 물건을 사고파는 데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접대에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 '바오젠 거리'로 지정된 제주시 연동 차없는 거리엔 최근 바오젠 그룹 인센티브 투어단 등 중국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바오젠 거리 제막식 모습 ⓒ제주의소리
▲ '바오젠 거리'를 찾은 중국 바오젠 그룹 인센티브 투어단이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 바오젠 거리 중국어 통역사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판”

바오젠 거리에는 요즘 바오젠 인센티브투어단 외에도 해외여행 나온 중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 때문에 제주시는 ‘바오젠 거리’에 15㎡ 규모의 관광안내소를 설치하고 3명의 중국어 통역사들을 배치했다.

중국동포들로 구성된 통역사들은 바오젠 투어단 방문 일정 등으로 9월 한 달간 쉬는 날 없이 풀가동되고 있다. 매일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 다닌다. 어떤 날은 11시에 나와 12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갈 때도 있다. 

▲ 바오젠 거리에서 활동 중인 중국어 통역사 왕춘자씨. ⓒ 제주의소리
한 통역사는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도움 요청에 화장실을 갈 때도 손에서 놓지 못할 지경”이라며 “급할 땐 전화로도 통역을 해주기 때문에 24시간 휴대전화를 켜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점포마다 간단한 상용 회화 안내서가 비치되어 있지만 상인들은 활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한 옷가게 점원은 “중국인들의 성조 때문인지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통역사가 오지 못할 때는 손짓 몸짓 다 써가며 설명해보지만 아직은 대화가 쉽지 않아 돌아가 버리는 중국인도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일부 점포에선 중국인 직원을 고용하거나 아예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점주들도 더러 있지만 아직은 몰려드는 손님을 감당하기 버겁다.

#. 중국인 관광객들 “제주 속 중국 만난 듯” 반색

바오젠 그룹의 한 중국인 여성 관광객은 제주에 대한 높은 호감을 표했다.

30대라고 밝힌 이 여성은 “이렇게 작은 섬에 우리 회사 이름을 딴 ‘바오젠 거리’가 있다는 건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제주 속 중국에 온 듯 하다”며 “기대 이상이다. 거리 곳곳에 중국어로 된 환영 배너, 안내판, 음식점 메뉴판 등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들을 맞이하는 바오젠 거리의 상인들 표정은 어떨까. 아직은 ‘희비’가 엇갈렸다.

상품 구성이 다양한 중대형 슈퍼나 기업형 편의점은 매출이 크게 늘어 점주들 입이 귀에 걸렸다. 이밖에 화장품, 액세서리, 패션용품, 의류점, 숙박업소 등도 중국인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바오젠 거리에 위치한 모 쇼핑센터 내 슈퍼마켓엔 중국인들이 한 번 훑고 지나가면 진열대의 상품이 동날 정도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 속옷가게 점주도 “중국인들은 단체로 우르르 와서 한국산 양말과 스타킹을 싹 쓸어 담아 간다”며 “특히 상품을 꺼내주면 ‘made in korea’인지 반드시 확인하고 중국제품인 경우엔 사질 않는다”고 전했다.

반면 음식점들의 매출은 상대적으로 오름세가 낮았다. 주로 관광식당 등에서 점심 식사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쇼핑관광에 나서는 관광 일정 특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숙박, 교통, 음식이 여행의 필수적인 소비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먹거리’ 명소가 바오젠 거리에 자리 잡는다면 상황 역전은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중국인 관광객을 인솔하고 있는 한 여행 가이드는 “중국인들은 쇼핑하면서 ‘한국산 제품’을 더 선호하지 중국산 제품은 잘 사지 않는다”며 “상품 종류를 불문하고 중국산 상품이 워낙 많이 유통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지갑을 더욱 많이 열게 하려면 값 보단 상품 질에 더 많이 신경 써야 된다”고 조언했다. 

▲ '바오젠 거리'에서 쇼핑 중인 중국 관광객들 ⓒ제주의소리
▲ '바오젠 거리'에는 최근 야간에도 중국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제주의소리

#. 떡 더 달라 자꾸 보챈다?…바오젠 거리 '행정의존' 이제 그만!

중국인 관광객들은 다른 해외 관광객보다 쇼핑 욕구가 2~3배 높다는 것이 여행업계의 분석이다. 그만큼 중국 관광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쇼핑환경을 갖춘다면 얼마든지 더 많은 경비를 뿌릴 것이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1만2000명을 인솔하고 있는 중국 바오젠 그룹의 리다오 총재가 최근 기자들에게 한 말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번 제주 방문은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며 "인센티브 관광단의 제주 방문은 한·중 두 나라의 관광과 민간교류에 있어 하나의 역사를 써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오젠 거리가 향후 중국관광객 제주 유치의 성공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도록 행정과 민간의 협력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바오젠 거리 상인들의 적극적인 중국 관광객 수용태세가 시급하다.

상인들 스스로 관광객들의 눈높이에 맞게 거리 쇼핑환경을 조성해나가고, 물건을 사고파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기본적인 회화능력을 갖춰야 한다.

바오젠 거리에 공중화장실을 설치하는데 반대하고, 매주 주말 저녁에 열리는 거리공연이 시끄럽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일부 상인이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이래선 안 된다는 지적이 높다. 

제주도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행정은 명예도로인 ‘바오젠 거리’를 지정했고, 다양한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행정에서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때 상인들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하는데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달라는 듯 일부 상인들은 자꾸 행정에 의존하려고만 한다”면서 상가의 자발성 부족을 지적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행정적인 뒷받침이 탄탄해도 상인들 스스로가 생명력을 갖지 못하면 속빈 강정이 될 우려가 크다. 큰마음 먹고 선물한 ‘바오젠 거리’가 그저 그런 관광코스 중 하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바오젠 거리상인들 스스로 적극적인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인턴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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