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양돈축협 사태해결보다 '윗분 눈치 보기' 급급

제주지방노동사무소가 경찰에 의해 점거(?) 당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27일 오후2시 제주지방노동사무소에 전경과 사복경찰 등 200여명이 출동에 노동사무소 출입을 봉쇄하고 민간인들의 출입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찰로부터 집회허가를 받고 노동사무소 옆 인도에서 집회를 벌이던 제주양돈축협노동조합 제주지부 조합원들로부터 혹시나 있을지 모를 노동사무소의 점거 사태를 막기 위해 경찰이 먼저 선수를 쳐 '점거'해 버린 것이다.

파업 130일째를 맞은 양돈축협노조는 이날 오후2시 파업사태해결에 미온적인 제주지방노동사무소를 항의하기 위해 노동사무소 옆 인도에서 항의 집회를 벌였다.

양돈축협 노조는 집회를 끝내고 이날 오후3시 임기환 지부장을 비롯한 노조대표 3명이 김덕호 제주지방노동사무소장과 면담을 갖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후3시에 우근민 도지사 주재로 제주도청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회의가 갑자기 마련되면서 면담 약속은 30분 앞당겨 졌고 노조는 이에 맞춰 오후2시부터 항의집회를 갖기시작했다.

그러나 갑자기 전투경찰을 태운 일명 '닭장차'가 노동부 사무소로 들어서고 200여명의 전투경찰과 사복경찰이 노동사무소 출입을 원천봉쇄하면서 사태가 꼬여들었다.

경찰은 노동부 정문에 길게 늘어서 조합원들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노동사무소를 찾은 민간인들까지 용무를 일일이 확인하고 난 후에야 들어 보냈다.

경찰은 노동사무소 정문만을 막은 게 아니라 청사 현관은 물론, 심지어 청사안 1층 로비까지 전경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날 경찰의 노동사무소 진입은 노동사무소가 청사보호를 위해 경찰진입을 요청한 게 아니었다. 경찰 스스로 '공공기관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판단 하에 일방적으로 노동사무소에 진입한 것이었다.

갑자기 경찰이 몰려들어 노동사무소 출입을 원천봉쇄하자 이에 격분한 양돈축협노조는 "이런 상태에서는 노동사무소장과 면담을 할 수 없다"며 경찰철수를 요구했다.

사태가 이상하게 꼬여 들어가자 당황하기 시작한 것은 노동사무소였다.
노동사무소가 마치 경찰진입을 요청한 것처럼 비쳐질까 바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몇몇 간부들은 경찰을 만나 "노동사무소장과 노조원의 면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경찰을 철수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노동조합 간부들이 면담을 갖게다 해 놓고서 노동사무소를 점거해 버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게 이유였다. 공공기관이 점거 당할 경우 그 책임이 관할 경찰서장(제주경찰서장)에게 돌아가게 돼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제주본부 간부가 나서 "130일간 계속되는 파업사태 해결을 위해 노조와 노동사무소장가 면담을 하기로 사전에 약속까지 돼 있는 것을 경찰이 이렇게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어떻게 면담이 이뤄지겠느냐"면서 "사태해결에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노동사무소출입을 원천 봉쇄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어떻게 되느냐"며 항의반 호소반으로 경찰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양돈축협 노조원들이 노조대표와 노동사무소장 면담시간에 노동무 청사안 로비에 들어오겠다고 밝히고 있어 도저히 이는 수락할 수 없는 조건"이라며 철수불가 입장을 강조했다.

이렇게 험악한 사태가 흐르기 50분. 감정적 대립보다는 사태해결을 위해 노동사무소장을 면담하는 게 급선무라는 양돈축협노조 집행부의 판단에 따라 집회를 자신해산하고 난 후에야 경찰은 노동사무소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임기환 노조지부장을 비롯한 노조간부 4명은 김덕호 노동사무소장과 그리 길지 않은 면담을 갖고 파업사태해결에 노동사무소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답변을 들은 후 노동사무소를 떠났다.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조합을 거부당해 130일째 파업을 벌이는 양돈축협 조합원들은 "혹시나 잘못된 사태가 벌어져 그 책임이 윗분에게 돌아가면 어쩌나"며 전전긍긍하는 경찰로부터도 외면당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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