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km에 숨어있는 맑고 푸른 가을길
18.8km에 숨어있는 맑고 푸른 가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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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 훌-훌 날리며 올레길 걷자

 

 얼마나  기다렸던 가을길이었던가?  9월 24일 10시, 제주올레 19코스가 가을길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역사적으로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제주시 조천읍 만세동산에는 600여명의 올레꾼들이 모여 들었다.  맑고, 높고, 풍성한 가을을 기다려온 사람들에게 제주올레 19코스 개장은 설렘으로 가득한 길이 아닌가 싶었다. 애타게 기다려온 가을길, 그 길은 어떤 길이 펼쳐졌을까.

 지인 5명과 함께 찾은 제주시 조천읍 만세동산 잔디밭에 9월의 햇빛이 반짝였다. 걷기에 너무 좋은 가을날씨, 많은 사람들이 날씨에 감사하고, 길을 터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제주올레 19코스는 마을길과 들녘, 함덕해수욕장을 지나 서우봉에서 숨고르기를 한다. 그리고 다시 북촌포구를 지나 동복 곶자왈과 가을들녁을 지나 김녕포구까지 장장 18.8km로 이어졌다.

 

 

 흙룡장성이라 일컫는 제주 돌담길, 제주의 여느길이 돌담길이지만, 이날 걷는 돌담길은 특별했다. 찌들었던 지난여름의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적하던 시골마을은 올레꾼들의 발자국과 이야기 소리로 왁자지껄했다. 겨울준비를 하는 마늘밭과 배추밭이 여유롭다 못해 쓸쓸하다. 느릿느릿걷는게 제주올레라는데, 흥분된 마음은 자꾸만 발걸음을 빨라지게 만든다.

 

 

 신흥리 동산에 올라서니, 제주시 조천의 푸른 바다가 오롯이 펼쳐졌다. 승용차로 이길을 몇백번은 달렸건만 조천의 신흥 바다는 왜 그리도 푸르른가. 

 관곶 해안도로에 이르렀다.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걷는 해안도로는 온 세상이 쪽빛,  땅끝 마을인 해남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관곶, 관곶 아래 갯바위는 속살이 드러내보였다. 파란 수평선, 가을 바다, 참으로 오랜만에 바라보는 바다가 아닌가 싶었다. 이날 만큼 푸른 바다가 또 어디 있었을까?

 신흥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돌담아래 오롯이 피어있는 쑥부쟁이가 올레꾼들을 맞이한다. 잡초처럼 피어난 쑥부쟁이에도 두근거리는 가슴.

 

 

 

 

 

 1시간쯤 걸었을까. 서우봉이 오롯이 보이는 정자에 주저앉았다. 물소 같은 서우봉이 전설처럼 바다위에 떠 있었다. 함덕 바다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번 해 본다. 정자에 주저앉아 마시는 진한 커피맛, 쉼없이 걷는 올레꾼들의 행렬에 삶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쪽빛 바다로 불야성을 이뤘던 함덕해수욕장을 지나니 서우봉 가는 길.  다소 비탈길인 서우봉 등반로에서 많은 올레꾼들이 숨고르기를 한다. 뒤돌아보니 아스라이 펼쳐지는 하얀 백사장, 올여름 저 백사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쌓았을까.

 길은 다시 서우봉의 허리 숲길로 이어졌다. 소나무 숲을 지나니 가까스로 조그만 북촌마을이 보인다, 서우봉 내리막길에서 보는 달여도가 환상이다. 척박하지만 다져진 서우봉 허리 올레에서 보는  북촌 바다는 왠지 끈적끈적 하다.

 

 

 

 

 북촌, 말만 들어도 안타깝고 애석한 이름이 아니던가. 그 이름을 달래듯 4.3의 성지인 너븐숭이 위령탑 앞으로 길이 나 있었다. 구부러진 내리막길을 따라 다다른 곳은 북촌 등명대, 포구를 지키는 도댓불 아래로 통하는 길은 바로 북촌 포구로 통했다.

 북촌포구, 현기영의 순이삼촌에서 들었던 이름 같다. 그런데 이 포구에 멸치국수를 먹는 올레꾼들은 그 아픈 사연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포구에 떠 있는 배 한척이 북촌 마을사람들의 마음인 양 고독하다. 

 만세동산에서부터 북촌포구까지는 9.8km, 북촌 바다를 등지고 포구를 바라보며  멸치국수를 단숨에 삼켰다. 이날 먹었던 멸치국물의 시원함은 가을하늘 만큼이나 맑다. 2시간정도를 걸어온 올레꾼들에게 북촌새마을부녀회에서 마련한 멸치국수는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북촌포구의 아치형 다리를 벗어나자, 빌레길이다. 제주올레 19코스 중에서 가장 고독하고 쓸쓸한 길을 꼽으라면 북촌동굴에서 난시빌레를 지나 벌러진동산까지 이어지는 올레가 아닌가 싶다. 3km, 즉 1시간정도를 걷는 이 고독한 길은 몇 채 되지 않는 민가, 그리고 제주의 척박한 땅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길이었다. 난시빌레, '냉이가 자란다'는 '너럭바위'라는 의미의 난시빌레 올레길은  혼자 걸으면 호젓해서 눈물나는 길이다. 바람마져 숨어버린 이 길은 정말이지 간세다리가 되어 걸어야 제맛이다.

 

 

 인적이 드문 빌레에서 만나는 교회당, 그곳이 바로 동복교회. 이런 빌레에 교회가 있다는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동복교회 신도들이 따뜻한 관심은 잠시 쉬어가는 길이 되었다.교회당 앞에서 먹는 쑥떡과 조릿대차는 또 하나의 시골인심.

 소나무 숲길은 꽤나 운치 있었다. 아스팔트길을 걷는 냉정한 사람들에게 다소 포근한 느낌과 전율을 느낀다고나 할까. 벌러진동산이 암벽 위를 걷는 기분 또한 알싸하다. 산길을 걷는 느낌이랄까.

 

 

 

 

 김녕농로는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돌담 안에 조가 익어가는 풍경을 보니  '아 가을인가'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18km를 걷다보니 길위에 주저 앉아 휴식을 갖는 올레꾼들도 볼 수 있었다. 그 아픈 다리를 치유시켜주는 곳이 바로 김녕포구, 그리 넓지 않은 포구는 행정구역상으로 제주시 구좌읍 소속이다.

 18.8km의 가을길, 제주올레 19코스는 그동안 기다려온 가을길이 아닌가 싶었다. 덧붙여, 지난 여름 쌓였던 고뇌와 답답함을 훌-훌 떹쳐 버리기에 충분했던 풍요로은 가을길이 아닌가 싶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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