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남의 집에 화재보험 드는 격

영국의 에클렉티카 크레딧(Eclectica Credit)펀드는 불황 와중에 이익을 내고 있다. 이 펀드는 중국 및 중국 관련 CDS(Credit Default Swap)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이 잘못되던가 최소한 중국의 장래 전망이 어두워져야 돈을 버는 펀드다.

어제(10월 10일) 중국 국채의 CDS 가격은 156 베이시스 포인트로 마감되어 작년 12월 말의 67에 비해 2배 이상 올랐다.

CDS는 기본적으로 스왑(Swap) 계약이다. 정해진 채무에 사건(credit event)이 발생할 경우 그 채무증서와 교환해 액면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약정이다.

CDS를 매입한 고객은 매년 소정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수수료의 크기가 곧 그 CDS의 가격이 된다.

스왑을 이행할 때 꼭 그 채무증서로 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 채무증서의 시장가격에 해당하는 금액을 스왑 결제금액에서 차감하면 된다.

이 장치, 즉 실제 손해를 입었다는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CDS를 널리 상품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사고가 나면 보상해 준다는 면에서 보험의 성격을 띠지만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남의 집에 화재보험을 들고 보험료도 대신 내주다가 언젠가 화재가 나면 보험금을 챙길 수 있는 것이 CDS의 장점(?)이다.

2003년에 전세계적으로 3조7000억달러에 불과했던 CDS 계약 잔액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해인 2007년에는 62조달러로 급증했다.

여기에는 이러한 투기 목적의 CDS('Naked CDS')가 큰 몫을 했다. 아직도 전체의 80% 이상이 이러한 투기적 거래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CDS 매입자의 입장에서는 부도가 빨리 날수록 좋지만 꼭 부도가 나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CDS의 가격은 시시각각 변하므로 중도에 차익을 남기고 처분할 수도 있다. 앞의 에클렉티카 펀드의 이익 실현도 중국의 어떤 채권이 부도가 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시가변동에 의한 것이다.

남의 집에 화재보험 드는 격

CDS 판매자도 시장이 불안해지는 것을 바란다. 그래야 CDS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가격도 오른다. 그러나 부도가 나면 그 때는 큰 손해를 본다. 그러나 이들은 최종 부도율이 연평균 0.2%에 불과했다는 과거의 통계를 내심 믿고 있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 상황은 이러한 CDS 장사에 '딱' 이다. 불안은 계속 커지면서도 부도는 모면하고 있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돌아가며 동일한 대상에 대해 신용등급 강등발표를 해대면서 시장의 불안을 키우는 데 협조하고 있다.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절실한 국면임에도 오히려 불안의 확대를 기대하며 이에 기대 먹고 사는 금융상품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상품이 성업 중이라는 사실은 심한 부조리가 아닐 수 없다.

작년의 미국 금융개혁 논의에서도 CDS 규제, 특히 투기적 CDS를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이것이 규제에서 빠지게 된 것은 투기적 거래와 순수한 헤지를 위한 거래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와 효율적 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참여자가 많아야 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투기적이라는 수식은 CDS 매입자에 해당되는 것일 뿐, CDS를 매도(write)하는 측이 수수료를 취하는 것을 투기적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억지 논리가 통했던 것은 투기적 거래를 금지함으로써 상실될 80%의 시장 규모가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주변국가의 부실이 중심 국가부실로, 그리고 이들의 위험에 노출된 은행들의 부실이 다시 이들 은행들이 속한 국가의 부실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유럽 재정위기의 현주소다.

그러나 부실이 전염되는 속도를 불안이 전염되는 속도가 앞지르고 있다. 아직 국가 신용등급이 트리플 A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국채 CDS 가격이 177 베이시스 포인트에 달해 우리나라의 187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부실을 앞지르고 있는 '불안'

지난 일요일(10월 9일) 프랑스와 독일의 정상이 은행의 자본금 확충과 유동성 지원을 강력히 지원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그러나 이는 호재일 수 없다. 오히려 그리스 디폴트의 충격을 최소화할 방파제가 시급해졌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앞으로 수개월 또는 수년 간 국제금융 및 자본시장의 변동성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불안의 위력이 희망의 불씨를 쉽게 끌 수 있다.

경제회복이 더 늦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 김국주 제주은행장

*이 기사는 '내일신문'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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