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제주4.3평화재단 이사진 개편, ‘누가’ 대신 ‘어떻게’가 중요
4.3단체 역할 감안한 거중조정-전국화·세계화 위한 외연확대 필요

제주4.3평화재단이 출범 4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재단을 이끌 선장은 없고, 선장 옆에서 조력해야 할 항해사, 갑판장도 없다. 이사진의 절반 정도는 공석이다. 이런 가운데 직원 채용에 따른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도민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일부에선 ‘초심’을 잃었다고까지 한다. 제3기 출범을 앞둔 4.3평화재단이 풀어야 할 숙제를 점검해본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껍데기는 ‘민간’ 재단인데…, 官주도 논란 ‘여전’
② 제3기 체제 출범 ‘코앞’, 이사진 구성 어떻게?
③ 4.3평화재단, ‘정치적 중립지대’로 만들자!


4.3평화기념관과 4.3평화공원의 운영·관리, 추가 진상조사 등을 목적으로 2008년 11월 출범한 제주4.3평화재단은 ‘民’과 ‘官’이라는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쌍두마차 형식이다.

출범 전 시행한 기본계획 용역에서는 재단 성격과 관련해 ‘민·관 협력형’으로 가야한다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관’주도 논란이 여전하지만, 그렇다고 ‘관’을 완전 배제하고서는 아직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게 현실이기도 하다.

# 후임 이사장 선임 ‘밀실’서 쑥덕쑥덕…차라리 추천위원회 구성해서 공론화해라!

이러한 ‘민’과 ‘관’의 입장을 잘 조율하고, ‘거중조정’하는 역할이 이사회의 몫이다.

최근 직원 채용 문제로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4.3평화재단이 풀어야 할 또 하나의 숙제가 바로 장정언 전 이사장의 후임을 비롯한 제3기 이사회 개편 문제다.

항간에는 벌써부터 ‘○○○이사장, ○○○상임이사’ 내정설이 파다할 정도로, 후임 이사장 선임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우선은 장 전 이사장을 비롯해 지난 9월28일자로 임기가 만료된 이사 4명(김영범·박찬식·양동윤·허영선)을 합쳐 5명 정도가 개편 대상이다.

이사회는 다음 주 24일 이사회 소집을 예고해 놓고 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임기(2년)가 만료된 이사 4명의 후임자 선임 문제를 포함해 도민사회의 최대 관심사인 후임 이사장 선임 문제까지 회의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문제는 현재의 이사진 개편 논의가 ‘누구를’ 선임할 것이냐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어떻게’ 선임할 것이냐는 뒷전으로 밀리면서 도민사회와 불통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특히 이사장 선임과 관련해서는 ‘官’이 지나치게 개입한다거나, ‘낙하산’ 인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단이 제주도와 전혀 논의없이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문제거니와, 그렇다고 제주도가 이사 선임을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재단 주변에서는 제주도 관계자가 한 이사를 통해 ‘이사장 내정’ 사실을 흘렸고, 이 사실이 장 전 이사장 귀에 들어가면서 ‘퇴임’ 결심을 굳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임기가 남아 있는 상임이사 후임자 이름이 공공연하게 회자지면서 상임이사 역시 최근 사퇴 결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4.3단체 관계자는 “민관협력형을 표방하고 있는 재단 성격상 제주도와의 소통은 반드시 필요하다. 상임이사와 사무처장 간 소통구조가 있는 만큼 불협화음을 낼 정도가 아닌 선까지는 충분히 대화하면서 이 문제를 매끄럽게 풀고 나가야 한다”며 재단과 제주도정 양측 모두에 유연성을 주문했다.

이사장 선임 문제가 ‘밀실’ 논의가 아닌 이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도민사회 공론에 붙이는 방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 이사회 도지사 몫·4.3단체 T.O 없다…그렇다고 무조건 배제? ‘솔로몬 지혜’ 필요

이사회 개편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4.3평화재단 정관은 이사수를 ‘15명 이내’(당연직 5명 포함)로만 규정하고 있다. 도지사 추천 몫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지도, 또 4.3관련단체 몫으로 배정된 T.O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선임직의 경우도 ‘유족대표 및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 중에서 이사회가 선출하도록’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퇴임한 장정언 전 이사장이 4.3관련단체의 대표가 바뀌었음에도 앞서 선임된 이사의 임기를 보장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그렇다고 4.3단체를 무조건 배제하는 식의 ‘역주행’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장 전 이사장이 지난 16일 열린 4.3유족 한마음대회에서 언급했다는 “4.3단체들이 지난 기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너무 많이 고생한 것을 잘 알지만 이게 기득권이 돼선 안 된다”는 대목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4.3단체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재단 설립 추진위원회 당시에 4.3단체 몫이 배정되긴 했지만, 재단 출범과 함께 모든 기득권을 내놓았다. 임기가 만료된 4명의 이사들도 4.3단체 대표자격이 아니라 추천 형식을 통해 선임됐다.

남아 있는 이사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이날 이사회에서는 ‘정관’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가다듬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오고갈 것으로 보인다.

한 이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재단이 해야 할 사업들을 보면 4.3관련단체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도내 4.3관련단체는 물론 전국적인 인사 1~2명 정도를 영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사회는 무조건 4.3식구여야 한다?…외연확대→공신력 확보 과제

이사진 개편과 관련해서는 광주 5.18기념재단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관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사회 구성을 다양화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5.18관련 단체뿐만 아니라 ‘동련상련’처지에 있는 제주4.3, 부산민주화 관련 단체에서도 추천을 받아 선임하고 있다. 또 민주화교수협의회(민교협)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도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은 곧 재단의 ‘공신력’으로 이어진다.

재단의 공신력을 높이고, 4.3문제의 전국화·세계화라는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4.3평화재단 역시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4.3평화재단 설립에 깊게 관여했던 한 인사는 “재단 자체가 ‘민·관협력형’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관’ 주도 논란이 없을 수는 없다”면서도 “4.3평화재단이 추가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라는 설립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개입이 아닌 협력을, 이사장·상임이사 ‘내정’이 아닌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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