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③ '이사장=선거 전리품' 인식은 4.3영령 모독행위
'우리끼리' 넘어 열린사고 필요...정부 기금출연 ‘감감’문제

제주4.3평화재단이 출범 4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재단을 이끌 선장은 없고, 선장 옆에서 조력해야 할 항해사, 갑판장도 없다. 이사진의 절반 정도는 공석이다. 이런 가운데 직원 채용에 따른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도민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일부에선 ‘초심’을 잃었다고까지 한다. 제3기 출범을 앞둔 4.3평화재단이 풀어야 할 숙제를 점검해본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껍데기는 ‘민간’ 재단인데…, 官주도 논란 ‘여전’
② 제3기 체제 출범 ‘코앞’, 이사진 구성 어떻게?
③ 4.3평화재단, ‘정치적 중립지대’로 만들자!

“제주4.3특별법에 따라 제주4.3의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인류평화의 증진과 인권신장을 도모함으로써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 2008년 10월 출범한 제주4.3평화재단이 존재하는 이유다.

10월21일은 4.3평화재단의 3번째 생일날이다. 생일잔치를 벌여야 하는 날이지만 찬바람만 쌩쌩 분다. 직원채용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일고 있는 데다, 이사장과 이사 4명이 임기를 마쳤지만 새롭게 선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 출범한 지 만 3년. 막 걸음마를 뗀 아이와도 같다고 하겠지만 슬슬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할 나이이기도 하다.

# ‘관’ 주도 논란 여전하지만, ‘홀로서기’ 준비 안 된 재단도 문제

그렇다면 출범 4년 차를 맞고 있는 4.3평화재단은 목적한 대로 제대로 가고 있는가. 혹여 ‘초심’을 잃고, 궤도이탈은 하지 않았는가.

최근 직원 채용 문제와 이사진 구성을 놓고 잡음이 일면서 4.3평화재단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민’과 ‘관’이라는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쌍두마차여야 할 4.3평화재단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빙빙 제자리를 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 주도 논란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제주도정의 과도한 개입이 문제로 꼽히지만, 재단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4.3평화재단은 ‘민·관 협력’ 체제를 지향한다. 하지만 체질은 여전히 허약하다. 돈(예산)과 사람(조직) 모두 ‘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제시된 4.3평화재단 설립·운영을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는 재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보고서는 재단 설립·운영자금 확보 방안으로 대한민국 과거사 청산의 모범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500억원 규모의 기금은 정부가 출연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제시했다. 연간 소요경비가 20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금조성은 3단계 목표를 설정하고, 1단계는 목표 기금액의 30%, 2단계는 60% 확보, 그리고 설립 4~5년차인 3단계에서 100%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조직 구성·운영과 관련해서는 민·관협력형으로 하고, 정원 20명으로 이사회, 사무처, 기획연구부, 기념사업부를 둬 운영토록 했다.

# 출범 4년차, 예산·인력 ‘관’의존도 심각…진정한 ‘민·관 협력’ 체제 요원?

4년차를 맞고 있는 재단의 실상은 어떠한가.

500억원을 목표로 잡았던 기금은 6억2500만원뿐이다. 당초 정부가 400억원 출연을 약속했지만, 국가 재정운영상 일시 출연이 어렵다며 매년 20억원(예상 이자수익)만 사업비로 지원하고 있다.

제주도 역시 별도의 기금을 출연할 형편이 안 된다며 매년 5억원을 운영비로 지원하고 있다.

사무처 직원도 계약직을 포함해 10명에 그치고 있다. 이 중 사무처장을 포함해 4명은 제주도에서 파견된 공무원이다.

예산에서, 조직(인력)에서 홀로 서기가 되지 않다보니 ‘관’의 입김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16일 장정언 전 이사장은 4.3유족 한마음대회에서 제주도의 간섭이 너무 심해 취임 초기 다짐한 일들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는 섭섭함을 토로했다.

“4.3평화재단은 4.3특별법에 의해 정부가 출연한 재단이고, 이사장도 행정안전부의 승인은 얻었지만, 제주도에서 파견된 직원이 모든 업무를 좌지우지했다. 지난 석 달 재단이사장으로서 피가 말랐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그는 “4.3평화재단은 어떤 정치적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제주도가 도와줘야 한다”며 에둘러 제주도의 간접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 이사장과 상임이사를 포함한 이사진 개편을 둘러싸고 ‘낙하산’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니 뗀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은 것처럼.

재단 주변에서는 제주도 고위공직자가 모 이사를 통해 ‘이사장 내정’ 사실을 흘렸고, 이 사실이 장 전 이사장 귀에 들어가면서 ‘퇴임’ 결심을 굳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또 임기가 남아 있음에도 상임이사 후임자 이름이 공공연하게 회자지면서 상임이사 역시 최근 사퇴 결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민·관 협력’ 체제의 재단이 제주도와 전혀 논의 없이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그렇다고 제주도가 이사 선임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기금 조성운동 통한 ‘돈의 노예’로부터 해방…외연확대→공신력 제고 ‘숙제’

4.3평화재단 이사장(상임이사)까지 ‘선거 전리품’으로 봐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사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그만큼 제주4.3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왔거나 그럴 능력의 소유자를 내세워 4.3문제해결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관’의 역할이다.

또한 4.3평화재단이 하루 빨리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도록 개입보다는 지원과 협력을, 불통이 아닌 소통이 절실하다.

우선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답은 ‘기금’ 조성이라고 이미 용역을 통해 제시된 상황. 최근 한나라당 제주도당이 자체 모금을 통해 기금을 출연한 사례는 모범으로 꼽힌다.

이를 재단과 제주도가 중심이 돼서 기금 모금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내년 총선·대선 정국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인적 구성도 단계적으로 민간 전문가를 충원하되 인건비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민간전문가와 공무원의 비율은 50:50 정도로 유지하는 게 ‘민·관 협력’의 이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외연을 확대하고, 재단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현재 4.3유족·관련 단체 일색인 이사회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반영해 제3기 이사회 구성부터 시도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재단 출범 초기는 그렇다쳐도 4.3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마당에 우물 안 개구리 처럼 '우리끼리'를 고집하는 사고는 시대에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5.18단체뿐 아니라 제주4.3, 부산민주화운동 단체, 심지어 민주화교수협의회(민교협)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인사들까지 이사로 참여시켜 공신력을 높이고 있는 광주 5.18기념재단 사례를 좋은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

4.3평화재단 설립 초기부터 관여했던 한 인사는 “일단은 4.3평화재단을 ‘선거 전리품’으로 여기는 사고부터 버리고 ‘정치적 중립지대’로 남겨두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번 이사장·상임이사·이사 선임 문제가 그러한 노력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4.3평화재단은 24일 오전 이사장 및 이사 선임을 위한 이사회를 개최한다. ‘누구’를 선임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재단을 바로 세울 것이냐가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한다. 재단을 바로 세우기 위한 출발점이자,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느냐, 아니며 여전히 끌려가느냐의 ‘바로미터’가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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