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칼럼] 인맥의 정치학에서 벗어나는 길

 서울시장 선거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는 하루에도 수백 개씩의 관련기사가 쏟아진다. ‘서울’ 시장을 뽑는 일에 온 나라가 관심을 기울이는 형국이다. 요즘 잘나간다는 ‘나꼼수’ 식으로 말하자면 ‘서울시장’ 깔때기가 온 나라를 빨아들이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라는 ‘지역이슈’가 메인 뉴스로 도배되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우리사회의 중앙 집중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방증이다. 내 중학교 동창인 제주 수산시장의 좌 사장에게 서울 시장 선거는 사실 남의 일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론은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수많은 장삼이사들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의 이야기를 우리들이 자칫 듣지 못할까봐 친절하게도 매일 확성기를 틀어대듯 반복한다. 기실 수도권 변두리인 용인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는 나는, 서울시장 선거보다, 5000억 원의 세금을 물어주게 된 용인시의 재정난이, 내 고향 제주의 해군기지 문제가, 서울시장보다 더 절실하다. 

누구는 이런 나를 보고 정치의식이 어떻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중요한 정치적 이슈를 바라보는 정치적 감각이 어떻고 비판한다면 그런 비판쯤은 받아들인다. 하지만 말이다. 이런 질문쯤은 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중앙 방송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해군기지가 건설되든, 말든 대한민국 1% 인구도 안 되는, 강정마을 인구로만 보자면 0.1%도 안되는 지역의 문제쯤이야, 그냥 없는 셈 치는, 이런 중앙의 태도는 과연 바람직한가.

언제부터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서울 시민이라도 되는 양, 온 언론이 나서서 선거를 보도하는가. 왜 지역은 이러한 중앙의 프레임을 ‘찍소리 못하고’ 받아들이는가.

서울시장이 누가 되든 제주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서울시장이 차기 대선 정국에 중요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이고, 차기 대선에서 누가 권력을 차지하는가가 지방의 사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질문은 그야말로 우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소박한 의문 하나. 왜 우리는 굳이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그것도 저명인사를 알고 있다는 이 인맥의 정치학이라는 촌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건 솔직히 자존심의 문제다. 정치판에서 중앙의 유력 정치인을 알고 있다는 것이 그 사람의 능력으로, 정치력으로 인정받는 현실. 하다못해 시정의 이익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는 문학판에서도 중앙의 잘 나간다는 문인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깨에 힘을 주는 지방의 문인들이 있다. 생전 글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누구를 알고 있다는 사실로 술자리 주권(酒權)이라도 잡으려는 사람들.

언론도 마찬가지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지방의 어떤 인사가 중앙권력과 가까운 사이인가를 수사하듯이 보도하고, 행여 중앙 모처의 기관장이라도 지낸 사람이 끈 떨어진 신세라도 될라치면 ‘청와대 제주 인맥’이니 ‘이명박 정부 제주인맥 부재’니 하면서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을 쏟아낸다.

이건 지방의 존심문제다. 왜 ‘나’라는 개인은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그 존재의의를 갖지 못하고 굳이 다른 권력자의 힘을 빌어서만 존재의의를 확인받으려 하는가. 이쯤 되면 세 살 짜리 아이들이 우리 아빠가 힘이 세다며 서로 자랑을 하는 유아기적 치졸과 유치한 힘자랑의 반복이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문제로 청와대 김인종 경호실장 경질설이 보도되자 제주 지역 언론들은 ‘이명박 정부 제주인맥 전무’ 등의 기사를 생산했다. 솔직히 기사를 보고 낯이 뜨거웠다. 그렇게라도 중앙에 기대서, 살아야만 하는 지역의 존재가 서글펐고, 그런 기사가 버젓이 등장하는 제주언론의 여전한 촌스러움이 부끄러웠다. 왜 우리는 ‘나’라는 존재만으로도 당당하지 못하는가. 자존심이 상했다. 아마 언론의 관행적 보도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청와대에 제주 출신들이 등용되자 언론들은 제주출신 인사들의 약진을 주요 기사로 쏟아낸 적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자리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 제주출신인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이 대북강경책으로 남북 관계 경색에 모종의 역할(?)을 한 것이나, 김인종 경호실장이 사실상 토지 편법 증여라는 ‘꼼수’의 책임자 역할을 한 것이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그런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에게 제주인맥의 실종이니, 하는 타이틀을 갖다 대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움과 무사고의 극치다.

   
▲ 김동현
제주출신이라고 비판받아서도 안 되겠지만 제주출신이라고 무조건적으로 감싸 안아도 안 되는 것이다. 중앙 부처에 제주 인맥이 없으면 어떠한가. 예산 딸 일이 걱정되는가. 경상도, 전라도는 되는 일이, 제주도는 안 된다고 한탄만 하는 시간에 설득과 논리의 계발에 노력하는 것이 나은 일이다. 그도 안 되면서 촌스럽게 내가 아는 누가 서울시장에 출마했다고 술자리에서 떠벌리지 말자. 서울시장이 문제가 아니고 서울시장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중앙의 무신경에 그야말로 무신경한(?) 지방권력의 식민지 근성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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