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밥상 다른 세상] 고용석 생명사랑 채식실천협회 대표

지구상에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10억 명을 훨씬 넘어 서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한 해 600만 명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생존한 아이들 가운데 3억 명이 ‘만성기아상태’, 즉 며칠 동안 밥을 먹지 못하고 잠자리에 든다. 최근 식량 가격 폭등으로 굶주린 아이들과 사람들이 더욱 심각한 기아와 영양실조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오죽하면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이른바 ‘재스민 혁명’의 원인 중 하나도 식량위기 때문일까.
 
여기에는 분명 식량이 상품으로 거래되고 투기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반면 굶주린 사람들은 그 식량을 살 돈이 없는 구조적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010년 러시아 열파나  올해 태국 대홍수 같은 극단적인 기후로 인한 흉작이 세계 식량공급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각한 것은 지구온난화는 물론이고 대수층고갈 토양상실 등 앞으로 그 위기의 정도가 가속화 될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연구에 따르면 기후가 1℃만 상승하더라도 작황이 10%나 감소된다고 한다.

# 곡물 수요, 크게 늘면 늘지 줄어들진 않아

또한 식량을 놓고 가축들과 자동차 그리고 굶주린 아이들이 경쟁해야 하는 식량수요도 더욱 첨예화 될 실정이다. 2008년 기준으로 세계 곡물의 48% 만이 사람이 먹고 나머지는 가축(37%)과 바이오 연료(5%) 등에 사용되었다. 문제는 매년 2배로 늘어나는 곡물의 바이오 연료 생산에서 보듯 그 수요가 크게 늘면 늘지 줄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 위기가 식량의 공급과 수요 양쪽을 동시에 압박한다. 게다가 세계 인구도 계속 급증하고 있다. 기후의 파행적 변화 속에 물 부족, 값비싼 석유의 폭풍도 휘몰아친다. 그 한 가운데서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하는 식량문제는 정말 급박한 인류의 당면 과제이다.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다르지만 두 개의 큰 흐름이 있다. 하나는 거대기업이 지배하는 현존의 ‘세계 식량시스템’ 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농업 유기농업 등 지역식품을 더욱 활용하는 ‘지역 식량시스템’ 이다. 

세계 시스템은 식량을 무한히, 그리고 언제나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공급할 것이라 약속한다. 세계화와 대량생산을 통해 급증하는 세계 인구를 부양할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는데 나름 성공한 것 같지만 그에 못지않게 엄청난 부작용을 드러낸다. 비만과 기아를 비롯하여 조류독감 등의 전염병, 식품안전, 치명적 환경파괴와 자연의 생산능력 고갈 등이 그것이다. 사실 이 하나하나만도 매우 파괴적이다. 그럼에도  지지자들은 이 시스템의 숱한 이점에 비하면 그 부작용은 사소한 대가일 뿐이고 세계 시스템 외는 인류를 먹여 살릴 다른 대안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수확률(경지면적당 수확량)을 올릴 때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견딜 수 있는 GMO(유전자 조작 식품)를 통해 앞으로 20년간 수확률을 두 배로 올리는 것이 가능하며, 그렇게 되면 식량의 가용성과 가격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 기후, 물, 에너지 모두 불안하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현재 이 세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가능케 한 3 가지 요인 즉 안정된 기후와 풍요로운 물, 값 싼 에너지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과 기후 에너지, 이런 조건들이 아예 공기처럼 무한하고 항상 우리를 돕는다고 생각했고 이런 전제하에 세계 시스템은 가능했다. 그러나 인간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자연과 환경의 역습이 시스템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제 세계 시스템은 부작용을 넘어 시스템 자체의 한계에 도달했고 붕괴에 직면해 있다. 이는 명백한 현실이다.

설사 이를 아직 인정 못한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인정 안할 수 없겠지만) 연구에 따르면  GMO 개발에 예상을 뛰어넘어 노벨상을 받을만한 약진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1인당 육류소비와 그 추세를 상당히 줄이지 않으면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가 힘들다고 한다. 엄청난 자원부담과 외부효과도 그렇지만 세계 인구가 해마다 8천만 명씩 증가하고 그 와중에 중국 인도 등 약 30억 명이 먹이사슬의 더 위로 올라가서 더 곡물 집약적인 육류를 소비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방향은 지역 식품을 더욱 활용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텃밭 등 유기농과 도시농업을 활성화하고 거대 산업농이 생산하는 세계 식량의 몫을 소농들과 중간규모의 농민들이  대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유엔도 올해 7월 새로운 보고서를 내고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농업으로 식량 생산시스템을 대폭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며 소규모 농가를 지원하고 친환경 농업에 매년 2조 달러를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만약 식품 소비의 지역화와 식품 시스템의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높여 간다면 이 시스템 역시 똑같은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육류소비를 상당부분 줄여야 하는 현실 말이다. 이는 마찬가지로 단순히 현재 생산 활동의 외부비용을 효과적으로 낮추는 일만이 아니라 20-40억 명의 새로운 인구를 먹여 살리는 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 식량위기, 과연 탄광속의 카나리아인가?

미국 프레스콧대학교의 팀 크루즈 교수와 호주 과학산업연구소(CSIRO) 마크 피플스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매우 생산적인 혼작 농업과 양식업을 대거 확산하고, 지속 가능한 대안체제를 통해 효율적인 증가목표를 달성하려면 미국의 경우 고기수요를 현재보다 1/8수준으로 약 90% 수준까지 줄이지 않으면 불가능 하다고 한다. 네델란드에서 돼지고기를 유기적 방법으로 현행의 비율(연간 1650만 톤)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전체 영토의 75%가 필요하다는 일례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월드워치 매거진에 발표한 세계은행 수석 환경자문위원인 로버트 굿랜드 박사에 따르면 인류가 축산품의 25%를 대체품으로 바꾸기만 해도  5-10년 내에 기후변화를 예방하며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릴 국가간 기후변화 협상의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세계 곡물 생산량의 40%를 다른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고 한다. 이 수치는 대략 30억 인구에게 충분한 칼로리와 영양분을 제공할 뿐더러, 2050년까지 세계 인구가 90억에서 100억으로 증가될 것으로 예상한다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결국 식량 시스템의 현 위치와 지향점 사이에 놓인 근본적인 걸림돌은 식량공급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식품 수요 그 중에서도 육류 수요를 그것도 상당부분 줄이는 일인 것이다.  이 근본적인 걸림돌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식량시스템의 개선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소비자 차원에서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근본적으로 현재의 시장가격은 식량생산의 환경이나 건강비용을 반영하지 못한다. 정부는 외부효과가 큰 제품에 대해 정당한 가격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시장의 합리적 기준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축산업을 비롯한 일반 농업 방식에 대한 보조금을 유기농업이나 지역농업을 활성화 하는 데 전환해야 한다.

 둘째, 동시에 주류소비자들은 당분간 외부비용을 메우기 위해 식품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므로 싼 가격보다는 정당한 가격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지속가능한 식품체제를 위해 육류같이 즐기던 대상을 상당히 줄여야 한다.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식량생산을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바꾸는 작업은 사실 경제학이 아니라 사고방식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식량은 문명의 가장 약한 고리일 수 있다. 비유하자면 탄광속의 카나리아와 같다. 우리가 이러한 전환에 주저하거나 실패한다면 문명의 탄광이 붕괴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 고용석 생명사랑 채식실천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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