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읍 함덕리에는 ‘함덕 한모살 문화학교’가 있다면

조천읍 함덕리에 ‘함덕 한모살 문화학교’가 생긴다. 즉,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제주민예총이 기획과 운영을 책임지는 문화프로그램사업을 함덕리의 마을공동창고를 리모델링해서 만든 공간을 활용하여 운영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을 창작하고 감상할 수 있는 권리는 문화의 세기라 일컬어지는 오늘날, 어디에 살든 어떤 처지에 있든 이제는 시민 누구나 누려야 할 하나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주민이나 우리 아이들이 어느 지역 어떤 계층에 태어나서 어떤 사회 경제적 환경에서 살아가든 최소한의 보편적 수준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는 정부 혹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화기본권에 속한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이 직면하게 될 주5일제 수업제도는 학교밖 교육문화 활동공간과 프로그램의 확충을 전제로 하는데 아직 우리 현실은 그에 대한 준비가 충분치 못하다.

대신에 대부분 수익자 부담으로 진행될 문화예술활동 사교육시장이 왕성한 식욕으로 우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농어산촌이나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대를 이어 사회적으로 낙오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함덕 한모살 문화학교’사업은 시대적 의미로나 사업취지로나 시행과정이나 귀감이 될 만하다. 지역의 문화예술사업을,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고 지역의 문화예술단체가 시행하며, 지역주민들은 직접적으로 문화예술 창작과 감상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낡은 마을창고를 개수해서 공간을 마련한다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번에는 '마을도서관 문화예술학교'는 어떤가?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알차게 꾸며진 마을도서관은 농어촌의 문화생활의 구심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마을문고라는 이름의 마을도서관들은 대체적으로 그와 같은 구실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침체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재정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긴 하지만, 마을도서관들의 시설 및 자료와 운영프로그램 등이 시대적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하여 이용자가 줄어들고, 제대로 운영하자니 기획과 전문지도자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시나 군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규모있는 공공도서관들이 곳곳에 있긴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외곽지대에 자리잡고 있거나, 아니면 시험공부를 위한 독서실 정도로나 이용되고 있어서 도서관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접근성이다. 접근성이란 공간적 접근성과 내용적 유의미성을 함께 의미한다.

'마을도서관 문화예술학교'에 대한 구상은 이렇다.
즉,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학교 오가는 길에 쉽게 들를 수 있고, 가족들이 여가시간에 짬을 내어 부담없이 함께 방문할 수 있는 마을 가운데 자리한 마을도서관을 활성화시키고, 한걸음 더 나아가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다양한 문화예술 창작과 감상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곳은 함덕마을처럼 수천만원의 거금을 들여 리모델링을 할 필요도 없다. 마을문고를 그대로 활용하면 된다. 사람들을 동원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행사의 규모에 비추어 마을문고 공간이 좁으면 분명히 근처에 자리잡고 있을 마을회관이나 노인회관 청년회관을 이용하면 된다.

'마을도서관문화예술학교'는 말하자면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문화적으로 소박하면서도 알찬, 지역의 지식문화기반시설의 구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평일에는 도서관을 활용한 독서 및 교과학습활동을 하고, 주말과 방학에는 도서관 공간을 활용하여 문화예술체험 활동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기획과 운영을 담당할 전문인력이다. 거기에는 또 해결방안이 있다. 마을도서관들을 네트워크로 묶는 것이다. 중심도서관을 설정하여 그곳에서 본래의 도서관 기능을 포함하여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개발하며, 지도자를 교육하고 공급하는 주요기능을 맡고, 각 마을도서관들은 그것들을 활용하는 지역별 구심체가 되도록 함으로써 아이들과 지역주민들의 평생학습과 문화예술체험을 위한 경제적이고 안정적이며 실제적인 기회를 증가시켜낸다. 이때 민예총처럼 지역의 문화예술전문가나 단체들이 자원봉사나 실비수당으로 참여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재정문제 역시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을주민들이 “마을도서관문화예술학교” 지원위원회를 만들고 십시일반으로 규모가 크든 작든 종자돈을 만들어 낸 후에는 정부와 자치단체, 그리고 지역의 기업의 협찬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향리출신 외지 거주자들 중에서 좋은 명분이 있으면 협조를 마다하지 않을 독지가를 찾아내는 방법도 있다.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거, 되카이..” 하면서 미리 체념하기보다는 한번 부딪쳐 볼 일이다. “마을도서관문화예술학교”라고 하면 언론도 관심을 가질만한 거리가 될 것이다.

선행과제는 마을도서관을 활성화시키는 일이다. 마을도서관으로 사람들의 관심이모아지고 발걸음이 향하도록 만드는 게 급선무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당연히 닭이 먼저이다. 하느님이 달걀을 만들었겠는가? 달걀이 저 혼자 진화했겠는가? 하느님은 달걀이 아니라 닭을 만들었다. 달걀이 진화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마을도서관을 활성화시키는 일, 그것은 마을주민들 중 세 사람의 의지를 모으는 일,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 글은 이어도정보문화센터의 홈페이지 "우리는 이어도로 간다"에도 실려 있습니다.www.ieodo.net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