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 교육 위기 새로운 돌파구

왜 우리에게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가? 우리 교육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위기에 빠져있다.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황폐화하고 악화되고 있다.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직접교육비와 기회비용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반면에 개인이 누려야 하는 교육의 질은 땅 낮은 줄 모른다.

획기적으로 교육의 비용을 줄이고 확실하게 교육의 질을 높여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바로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통해서 그 가능성을 실현해낼 수 있을 것으로 우리는 기대한다. 

<세상을 바꾸는 소비자의 힘>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1844년 12월 21일 영국 랭커셔 주 로치데일에서 28명의 노동자가 출자한 조그만 가게가 문을 열었다. 이게 바로 세계 최초의 ‘소비자협동조합’인 로치데일조합이었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당시 영국에서 노동자의 근로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소비환경이었다.

많은 공장주가 월급 대신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서만 쓸 수 있는 쿠폰을 지급했는데 이 가게의 식품은 질이 매우 낮고 값이 비쌌다. 밀가루에 잘게 부순 석회암을 섞었고 맥주에는 아편이 섞여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공장에 싸 가는 도시락은 식빵 한 조각에 동물 지방을 바른 게 전부였다.

자신과 가족들이 심각한 건강문제에 직면했다는 점을 깨달은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게 로치데일조합이다. 여기서는 유해물질을 섞지 않은 밀가루와 버터, 설탕, 오트밀을 공동구매해 지역노동자들에게 저렴하게 팔았다.”

 <협동조합의 도시 볼로냐를 가다>는 이탈리아의 형편을 알려준다. 이탈리아 최초의 협동조합은 로치데일보다 10년 후인 1854년, 토리노의 직공들에 의해 만들어진 작은 가게로부터 시작되었다.

영국의 로치데일조합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노동자들이 소비자협동조합을 통해 소비재를 시중보다 값싸게 사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악조건을 해결해나갔다. 적은 임금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협동조합이었기에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싸고 품질이 좋은 물품을 공정하게 거래하는 것’이었다.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무엇인가? 그 동안의 협동조합은, 로치데일이나 토리노의 협동조합이 그러했듯이 주로 먹거리나 생활필수품 등 ‘경제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교육소비자’라는 사실에 주목하는데, 교육소비자를 위한 협동조합이 긴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로치데일이나 토리노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생존환경을 타개해나가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만들어냈듯이, 날이 갈수록 비용은 높아지고 질은 낮아지고 있는 우리의 교육환경을 극복해내기 위해서는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로치데일이나 토리노 협동조합이 ‘싸고 품질이 좋은 생활물품을 공정하게 거래’하고자 했듯이, 조합을 통해서 우리들 스스로 ‘싸고 품질이 좋은 교육서비스’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급속도로 우리 사회가 부와 교육의 세습을 통해 ‘싸고 품질이 나쁜 교육’과 ‘비싸고 품질이 좋은 교육’으로 나누어지면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로부터 야기되는 분열과 갈등, 불화와 반목의 고통이 일상화되고 그것이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싸고 품질이 좋은 교육’을 위한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개인적 결단과 참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당면한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무엇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협동조합’이라는 형식이 주는 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유컨대, 내가 조합원이 되어 ‘푼돈’을 내면 그것들이 모여 조합의 주된 사업인 교육을 통해 ‘몫돈’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작은 힘으로 큰 꿈을 이루려면 그 작은 힘들이 한 데 모이면 된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입증된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력한, 사회적 경제적 약자인 일반시민들의 생존전략이다.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시나브로 우리 스스로와 아이들한테 ‘협동’이라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할 수 있다. 무한경쟁, 약육강식, 그리고 승자독식의 시대에 가진 것이 보잘 것 없는 힘 약한 이들이 ‘협동을 통해서 살아남을 수 있고 더 잘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속적인 ‘협동’의 결과를 통해서 ‘인간존중’의 실현에 이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이 과연 ‘잘게 부순 석회암이 섞인 밀가루와 아편이 섞인 맥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동물지방을 바른 빵 한 조각 도시락’을 먹으면서 자신과 이웃을 존중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협동조합의 힘으로 ‘유해물질을 섞지 않은 밀가루와 버터, 설탕, 오트밀’로 만든 빵을 먹으면서야 비로소 자존감을 회복하고 인간다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통해서 우리는 경쟁을 통한 승자독식이 아니라 ‘협동’을 통해서 ‘함께 선하고 함께 성취하는 삶’의 소중함을 실현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은, 무한경쟁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혹은 불가능한 것으로 이미 포기해버린 교육의 참목적이기도 하다.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모범은 로치데일과 토리노의 협동조합이 보여준다. 요컨대, 일반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작은 힘과 뜻을 한데 모으고 조합원이 되어, 다양하고 풍성한 교육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소박하면서도 숭고한 교육의 목적을 실현해나가자는 것이다.

일반 생협이 ‘매장’이라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면,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마을문고나 마을회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학습공동체’를 갖추면 된다. 마을출신의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나 다양한 경력자들로 교사진을 구성하여 교육의 질을 담보하며, 다양하고 질이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통해서 사교육을 흡수하는 동시에 공교육의 미흡함을 보완한다.

교사재교육과 프로그램 개발은 조합본부가 책임을 지고 지역의 대학과 각종 기관단체의 지원을 이끌어낸다. 조합원의 자녀인 교육프로그램 수혜자는 실비를 교육비로 부담하며, 조합은 다양한 수익사업을 벌임으로써 조합원의 부담을 경감시킨다. 이제 우리는 ‘싸고 품질이 좋은 교육’을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해물질을 섞지 않은 밀가루와 버터, 설탕, 오트밀’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사단법인 이어도교육문화센터 이사장 김학준

<교육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그 형식 자체와 운영 과정의 성과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의 교육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암담하기만 한 우리 현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극복해내고 인간다운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귀중한 씨앗이자 토대가 될 수 있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하기에 달려있지 않겠는가? 2012년 새봄 우리는 서귀포에서 그 작은 출발을 보게 될 것이다.  / 사단법인 이어도교육문화센터 이사장 김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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