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내년 3월까지 험난한 고비

국제신용평가사 S&P는 지난 주 유럽정상회담에 때맞춰 독일을 포함한 유로 존 대다수의 회원국들을 부정적 관찰(negative watch)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신용디폴트 스왑(CDS)은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하여 체결하는 계약인데 그리스에 투자한 채권자들의 경우는 원금의 절반씩이나 잃어버리고도 CDS 계약에 따른 손실보전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채권자들이 원금의 탕감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도록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유럽 자본시장 전체의 신뢰를 훼손하는 데 기여했다. 그뿐 아니라 과거 2년 동안 유럽 정치인들이 보여준 위기 대처 방법은 매우 느리고 미온적이었으므로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우리의 기대도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설명의 요지였다.

유럽 정상들 사이에서는 재정위기의 원인에 접근하려는 이상주의와 급한 불부터 끄려는 현실주의가 대립하였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이상주의에 해당된다. 유로화 사용국의 국가 채무는 곧 유로 존 전체의 공동 책임이라는 공식이 점점 더 굳어지고 있는 마당에 그 책임을 가장 크게 떠 맡게 될 나라는 재정이 튼튼한 독일이다.

따라서 독일의 입장에서는 될 수 있는 한 다른 회원국들의 재정 상태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고 또한 이를 감독하기 위한 장치를 보다 엄격하게 만들자고 주장했을 터이다.

반면에 EU 집행위원회 의장,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은 현실주의에 속했다. 이들의 주장은 유럽이 죽고 나서 100점짜리 규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반론으로 요약된다. EU 조약의 대폭수정은 의회 비준이나 국민투표 등의 절차에 장기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반드시 통과된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여러 공적 기구들이 국채시장에 적극 개입하여 이태리나 스페인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매입하여 주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해야만 이들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는 유럽 주요 은행들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독일의 이상주의는 소수파

이상주의가 원했던 것은 EU 27개국 전 회원이 참여한 EU 조약의 대폭 수정이었으나 유로존 17개국을 통제할 수 있는 재정협정에 그쳤다. 각 회원국은 자국의 헌법 또는 이에 준하는 법률에 정부의 균형재정 의무를 명시하는 조항을 삽입하기로 했으며 균형재정의 기준도 연간 재정적자의 폭이 GDP의 0.5%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명확하게 정의했다.

또한 재정적자가 최대허용치인 GDP의 3%를 초과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데 그 결정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했다. 즉 과거처럼 다른 기관의 심의 절차를 기다리며 유야무야되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현실주의가 달성한 것은 재정위기에 처한 회원국을 지원하는 베일아웃(bail out) 전담 기구로 가칭 "유럽안정기구(ESM)"를 조기 설립하기로 한 것, 그리고 IMF를 유럽 국채시장에 개입하는 공적 기구의 하나로 끌어들인 것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고비는 이 재정협정의 세칙이 확정되고 각국 의회의 비준을 받기로 한 내년 3월까지다.

현재 유로존 국가 중에 재정적자가 GDP의 3% 이내인 나라는 핀란드와 룩셈부르크뿐이다. 이를 0.5%로 낮추라고 하면 거의 모든 회원국들이 EU 집행부의 간섭을 받게 된다.

이들은 예산책정 및 주요 차입행위에 대해 사전 신고 및 동의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것은 회원국 국회의 비준을 어렵게 만드는 소지가 될 수 있다.

IMF의 유럽 자본시장 개입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EU 규약에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자국 정부의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기 위하여 제3자를 동원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각국 중앙은행들은 IMF 앞으로 2000억유로를 빌려주기로 했는데 IMF가 이것을 유럽 국채 매입에 "중점적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합법을 가장하기 위한 술수라는 지적이 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내년 3월까지 험난한 고비

끝으로, 향후 구제금융 취급 시에는 일반 채권자들의 손실 분담을 강요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약속은 과연 진실한 것일까? 공적자금으로 한 나라를 구제하는 마당에 높은 금리를 보고 투자하였던 일반 채권자들도 자기의 결정에 대한 금전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독일식 주장은 크게 사리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정상들은 이태리와 스페인의 국채 금리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뛰는 것을 보며 "그리스의 경우는 특이하고도 예외적인 것이었다"라고 말하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시장의 압박에 굴복하는 것과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은 다른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 기사는 '내일신문'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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