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제주옹기굴제'가 14일부터 17일까지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에서 열린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제주도지정 무형문화재 옹기장들과 허은숙 제주전통옹기전승보존회장이 인사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제가 끝난 뒤 굴밥을 나눠 먹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제가 끝난 뒤 굴밥을 나눠 먹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사흘밤 나흘낮' 동안 노랑굴 안에서 옹기들은 12000도가 넘는 고열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제주옹기로 탄생한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제주도지정 무형문화재 강신원(80)씨는 불대장으로 50여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를 후대에 물려 주고자 교육에 힘쓰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고달순(78)씨는 굴대장 역할을 맡아 가마를 만든다. 이번 노랑굴 만드는데는 열흘 정도 소요됐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현장] 대정읍 신평리 '제주옹기굴제' 를 가다
철저한 분업과 협업 과정은 제주인의 삶 그 자체 

▲ '2011 제주옹기굴제'가 14일부터 17일까지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제주의 참 모습이 담긴 옹기가 뜨거운 불 속에서 ‘사흘밤 나흘낮’ 견뎌내고 있는 현장.

1년간 빚은 옹기를 굽는 ‘2011 제주옹기굴제’가 14일부터 17일까지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에서 열리고 있다. 15일 둘째 날 방문한 신평리는 마을 입구부터 불 지피는 향으로 가득했다.

▲ '사흘밤 나흘낮' 동안 노랑굴 안에서 옹기들은 12000도가 넘는 고열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제주옹기로 탄생한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신평리는 옹기 만드는 흙과 노랑굴이 유명하다. 옹기가 노랗게 구워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노랑굴.

일반적으로 가마를 만드는 데 흙별돌을 사용하지만 제주는 화산돌로 만든 ‘돌가마’이다. 현무암은 다공질로 불에 견디는 힘이 강해 가마 벽으로 제격이다.

제주어인 ‘굴’은 옹기를 굽는 가마다. 그래서 ‘굴제’는 가마에 제를 지낸다는 뜻이다.

첫째 날은 바짝 말린 옹기들을 가마에 넣는 ‘굴 재임’과 연기로 가마 안을 데우는 ‘피움불’이 진행됐다. 본격적인 불을 피우는 ‘족은불’은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제주도지정 무형문화재 옹기장들과 허은숙(맨 오른쪽) 제주전통옹기전승보존회장이 인사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본격적 불을 붙이기 전. 가마를 지키는 ‘굴 할망’(할머니)에게 “그릇 잘 구워지게 해 줍써(해 주세요)”라며 제를 올린다. 정성을 다해 올린 제가 끝나 제에 쓰였던 음식 ’굴 밥’을 나눠 먹었다. 이는 옹기가 잘 구워지길 기원하는 마음을 나누는 의미라고 한다.

▲ 제가 끝난 뒤 굴밥을 나눠 먹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김창선 향토문화조사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예전에는 손바닥에 음식을 받아 손가락으로 먹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기에는 그릇과 젓가락이 모자랐기 때문.

▲ 제가 끝난 뒤 굴밥을 나눠 먹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굴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처음 먹는 굴 밥이 어색하지만 저마다 즐기는 표정이었다.

참가자들이 굴 밥을 나눠먹는 사이, 제주도 지정 무형문화재 강신원(80.불대장), 고원수(80.도공장), 이윤옥(73.질대장)씨와 옹기장들은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 어색한지 슬쩍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서로 도울 일 없는지 확인했다.

옹기를 만들 때, 철저한 분업화로 각자의 업무가 정해져 있다. 불지피는 불대장, 가마를 만드는 굴대장, 흙을 구하고 가공하는 질대장, 옹기를 만드는 도공장이다. 각자의 일이 끝나면 서로의 일을 돕고 함께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이는 제주의 ‘수눌음(공동 작업)’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 고달순(78)씨는 굴대장 역할을 맡아 가마를 만든다. 이번 노랑굴 만드는데는 열흘 정도 소요됐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11월에는 굴대장(故 고신길)이 별세해 그 자리를 옹기장 고달순(78)씨가 이어가고 있다. 

“옛날엔 옹기의 인기가 좋으난 900개 넘는 옹기를 한번에 굽젠허난 15일썩 걸리멍 굴 만들었주….” (옛날에는 옹기의 인기의 좋아서 900개 넘는 옹기를 한번에 구우려고 15일씩이나 들여가며 굴을 만들었다)이번 굴제에 이용한 가마는 작은 크기라며 아쉬워 했다.

그가 굴을 만들기 시작했던 50년대는 집집마다 옹기를 사용해 옹기의 전성기였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옹기가 잊혀져 가는 것이 아쉬워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고씨는 “옹기 만드는 일을 젊은 사람들이 배워서 옹기를 지켜줘시면 좋으크라(좋겠다)” 젊은이들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 제주도지정 무형문화재 강신원(80)씨는 불대장으로 50여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를 후대에 물려 주고자 교육에 힘쓰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70년대 플라스틱 제품 때문에 옹기의 판로가 없어져 아쉽다는 불대장 강신원(80)씨.

옹기 만드는 기술과 이를 젊은 세대들에게 전달 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가장 시급한 건 ‘진짜’제주가 잊혀져 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금전적인 지원보다는 행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제주 옹기를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판로 개척을 통해 실 생활 속 옹기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제주전통옹기전승회 허은숙 회장은 “옹기만큼 제주의 문화를 표현 하는 건 없다”며 “제주의 흙, 돌로 옹기를 만들고, 수눌음 정신도 담겨 있다”고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제주도 지정 문화재로 장인들의 연세가 많아 하루 빨리 원천 기술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제주 옹기를 발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2011 제주옹기굴제' 는 마지막날인 17일 큰불에서 옹기를 꺼내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제주의소리>

<오연주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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