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밥상 다른 세상] 고용석 생명사랑 채식실천협회 대표

우리나라 초등학교 6학년 국어교과서는 '식탁위의 작은 변화'(89~94쪽)란 내용을 통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채식은 밥상에서 부터 지구환경과 건강 생명을 생각하는 깨어있는 소비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인 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식생활임을 가르치고 있다. 채식으로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건강한 사회를 꿈꿀 수 있고 그 출발을 밥상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단순히 ‘육체’만으로 정의될 수 없는 존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나 증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완전히 안녕(wellbeing)한 상태’라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끔 현실과 어긋날 정도로 음식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완전히 자신의 건강을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완벽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도 가끔 암에 걸린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10대 때 햇볕에 탄 것이 원인이 돼서 50세에 피부암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엄마들이 먹은 음식과 생활환경에 있는 화학물질이 원인이 되어 암에 걸릴 수 있다. 어떤 질병들은 전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생활방식과 아무 상관없이 사람들을 덮친다. 삶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예측하기 힘들고 신비롭다. 중요한 것은 삶의 속성을 이해하고 사랑과 용기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순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삶이라면 소모적인 삶이 아니라 도움 되는 삶.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연유로  ‘깨어있는 소비’가 중요한 것이며 채식이 그 대표적 예다.

‘깨어있는 소비’란 첫째 투명성을 원칙으로 삼는다. 맛과 가격에 대한 고려에서 더 나아가 음식이 어떻게 오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과정과 맥락을 자각해야 한다.  둘째는 공정성이다. 비용이 어느 한쪽에 일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육류나 정크 푸드는 시장가격에 환경이나 건강 등의 간접비용이 반영돼 있지 않다. 또한 각종 보조금을 고려하면 육식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먹을거리이다.

그 예로 인도에서 숲을 파괴하면서 햄버거 하나를 생산하는 비용은, 보조금이 아닌 실질 생산비를 포함하면, 무려 200달러에 달한다. 셋째는 인도주의다. 육류생산의 주 대상은 상품이 아닌 생명이다. 동물에 관한 한 인간은 이중적이다. 소위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사랑하면서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동물들에 가하는 자신의 행위를 깨닫지 못한다. 넷째는 확장성인데 이는 우리의 내적 성장이나 삶의 질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은 단지 내 한 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보다는 일상의 매 끼 밥상에서 생명과 지구, 굶주린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한다. 이것이 채식은 채식 이상이고 채식주의자의 삶이 대부분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이유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공감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며 이러한 ‘공감’이 인류의 문명을 진화시켜왔다고 주장한다. 이는 역사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여성, 동성연애자, 장애인, 흑인 등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뀌고, 타 민족, 타 인종에 대해서도 서로 인정하는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는 것이 그 방증이다. 심지어 독일은 2002년 세계 최초로 헌법에서 “국가는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생명의 자연적 기반과 동물을 보호할 책임을 갖는다.”는 동물의 권리까지 보장하게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2008년 9월 에콰도르는 “생명이 재생산되고 존재하는 자연 또는 어머니 지구는 존재하고 존속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모든 개인, 공동체, 국가는 공적인 제도 이전에 자연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일종의 생물권이라 할 수 있는 조항을 헌법에 명시하였다. 더 놀랍게도 이러한 정신은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에 잘 드러나 있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 에서 인간은 동물과 식물, 무생물까지 포함하고 있다.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 하지 않았는가. 사람 속에 하늘과 땅이 하나다.

▲ 고용석 생명사랑 채식실천협회 대표 ⓒ제주의소리
사실 오늘날 지구 온난화에 대한 세계적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인간의 본성, 공감능력을 확신하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다. 생물권 의식과 범세계적인 공감의 확장을 통해서만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촌 붕괴를 피하고 불안한 인류의 미래를 구제할 수 있다. 채식은 종차별을 넘어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한 가족이라는 확장된 인도주의를 지향하며 인류 내지는 인간의 본성에 공감적 특성의 씨앗을 발현한다. 우리의 타고난 천성의 관점에서 볼 때 채식은 결코 극단적이지 않다. 우리의 천성은 공감과 사랑, 창조력, 영적 계발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철학자들이 채식을 선호했으며 불교를 비롯해 많은 종교에서도 수행자들에게 채식을 권유했다.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보편적 윤리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채식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진정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채식은 이 세상과, 인류, 다음 세대, 동물,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 중 하나이다. 우리 삶이 다른 사람들도 채식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 <다른 밥상 다른 세상> 건강 칼럼은 이번 원고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관심 가져주신 독자 여러분과 필진 고용석·김란영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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