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화 속에 표현된 '용'의 늠름한 모습. 출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흑룡의 해' 와 제주  

임진년(壬辰年) 새해가 밝았다. 임(壬)은 오행사상에서 물(水)에 해당하고, 색으로는 흑색을 상징해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온 ‘흑룡의 해’다.

용은 열두 간지 중 다섯 번째로 다른 짐승과 달리 상상의 동물이다. 머리엔 뿔이 나고 몸통은 뱀을 닮았으며 비늘이 있고, 입에선 불을 뿜는다. 우리말로는 ‘미르’라 불리는데 특히 흑룡은 비바람의 조화를 부린다고 한다.

농경이 주를 이루던 우리나라에서는 ‘용’과 '왕'을 동일시해왔다. 임금의 얼굴을 가리켜 용안, 옷은 용포, 정무를 볼 때 앉던 자리를 용상이라 불렀다. 또 임금이 즉위하는 것을 용비라고 해, 세종대왕이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는 여섯 선조의 행적과 공덕을 기린 책을 '용비어천가'라 이름 지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또한 예로부터 용은 사한 것을 물리친다고 해 집을 지어 상량할 때 한 쪽엔 ‘용(龍)’자를, 또 다른 한쪽에는 ‘구(龜)자’를 쓰는 풍습이 있다. 이 두 동물이 모두 물속에서 살기 때문에 불을 막는다는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주에도 ‘용’에 관련된 설화가 녹아든 지명이 꽤 많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제주시 용담(龍潭)동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에서 유래됐다.

용연은 말 그대로 용이 사는 연못이라 해 붙여진 이름이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빙 둘러진 계곡으로 그야말로 장관을 뽐낸다. 물이 짙푸른 색을 띠어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설화에는 거구의 설문대 할망 무릎 밖에 오지 않는 깊이라고 한다.

용은 비를 몰고 온다고 믿어 과거에는 이곳에서 기우제가 행해지기도 했다. 또한 용연에서의 밤 뱃놀이 경관이 일품이라 하며 용연야범(龍淵夜泛)은 영주12경 중 하나로 꼽혔다. 제주에 왔던 목사, 판관, 선비들이 주로 밤에 배를 띄우고 풍류를 즐겼다. 지난 1999년부터 이를 재현하는 축제가 매년 열려왔다.

▲ 기암괴석이 둘러진 용연계곡(왼쪽)과 용이 머리를 치켜든 모양인 용두암은 제주에서 손 꼽히는 용과 관련된 지명이다. <제주의소리 DB>

용연 근방에 있는 용두암은 용이 머리를 쳐든 모양의 바위의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용의 몸 전체가 섬의 땅 속으로 뻗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바다 속으로 잠겨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머리만 바닷가에 우뚝 높이 솟아 있다.

공항 가까이에 있어 용연과 더불어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며 지난 2001년 제주도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됐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용머리 해안은 기반암인 현무암이 노출되어 있는 암석 해안으로 산방산 끝자락이라 볼 수 있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해 '용머리'라는 지명이 붙었다.

사계리 해안을 따라 걷다보면 수천 만 년 층층이 쌓인 사암층 암벽이 나온다. 길이 600m, 높이 20m의 현무암력에 수평층리 풍화혈, 돌게구멍, 해식동굴, 수직절리단애, 소단층명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해안 오른쪽에는 반원형으로 부드러운 검은 모래사장이 펼쳐져있다.

이 곳 또한 용에 얽힌 재미난 설화가 전해진다. 중국 진나라 때, 제주도에서 장차 왕이 날 것이란 예언을 들은 시황제가 호종단이라는 인물을 보내 제주도의 혈을 끊으라고 명했다. 이에 황명을 받든 호종단이 제주 곳곳을 살피다 왕의 기운이 느껴지는 혈맥을 찾아낸 곳이 여기인데, 호종단이 용의 꼬리와 잔등 부분을 칼로 내리쳐 끊자 시뻘건 피가 솟아 주변을 물들였다고 한다.

용은 하늘과 땅, 그리고 물 어디든 자유로이 넘나든다고 해 변화무쌍을 상징한다. 그래서인지 역사 속에서 ‘임진년’은 유난히 변고가 많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그러하고, 1952년엔 독도 영유권을 놓고 일본과의 분쟁과 더불어 나라 안에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다.

올 임진년은 총선과 대선이 맞물려있어 그 어느 때 보다도 시끌벅적한 한 해가 예고된다. 게다가 재계에서는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빗대 먹구름 낀 경제전망을 발표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심심찮게 ‘2012년 지구멸망설’도 돌고 있다. 시답잖은 얘기라고 흘려듣기엔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에겐 저마다 제 몫의 삶이 주어진 것을. 그저 마음 단단히 먹고 내 삶에 충실하다보면 ‘비상’과 ‘승천’의 한 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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